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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세월호특조위의 진실…정부의 거짓말

<2014년 5월19일 청와대 춘추관>
"(세월호 참사) 최종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또 다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사회전반의 부패를 척결해 나갈 것입니다.(중략)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도 제안합니다.(중략)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개혁과 대변혁을 만들어 가는 것이 남은 우리들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중략)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명운을 걸 것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 담화문: 전문 보기)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재작년 5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의 일부다. 이런 대통령의 제안을 토대로 '다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지 않기 위해' 꾸려진 게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그리고 함께 고통 받은 국민을 위해 모든 걸 하겠다던 대통령의 담화는 2년 뒤 현재 어떻게 됐을까. 

<2016년 4월 26일 청와대 충무실>
“(세월호 특조위에)그동안 재정이 150억 원 정도 들어갔고, 또 그것을 정리해서 서류를 만들어서 해 나가려면 거기에 보태서 재정이 들어가겠죠. 인건비도 거기에서 한 50억 정도 썼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조위 연장엔) 또 국민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이기도 하고...”(박근혜 대통령-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中)

‘비즈니스석을 타고 호화출장 특조위…특조위 예산 369억 원 요구’ (보수언론 보도)

팩트는 틀렸고, 정정보도도 이뤄졌다. 하지만 사실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정부와 보수 언론이 세금문제를 거론하자, 보수시민단체는 특조위의 결산내역을 분석했다며 특조위에 '세금도둑' 프레임을 씌우는데 동참했다. 국민에게 가장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세금을 건드린 이유는 자명하다. '내 지갑에서 나온 돈이 허투루 쓰였다'는 인상을 심어주면, 특조위 목적과 출범 배경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내가, 내 가족이, 내 친구가' 참사 희생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억만금도 아깝지 않은 게 인지상정이지만, 특조위는 지난해 출범부터 지금까지 '돈'에 시달려 왔다. 필요한 예산과 인력조차 받지 못한 채 활동을 시작했지만, '세금도둑'이라는 공격을 받으며 이젠 예산 때문에 조사 활동도 가로 막혀 있다. 그렇다면 정부와 보수진영이 주장하는 예산 낭비 주장은 합당한 것일까. 이들 주장대로 특조위는 필요 이상의 예산과 인력을 지원 받았고, 활동시한도 충분했을까. SBS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지난해 정부가 제출한 2016년 예산안과 과거 사례를 토대로 이를 분석했다.

●  예산 삭감으로 시작해 정원조차 채우지 못한 특조위

특조위는 지난해 출범해 같은 해 8월, 89억 원의 예산을 정부로부터 받았다. "지난 1일로 특조위의 조사 활동(보고서 및 백서 발간 활동만 가능)이 끝났다"는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지난해 1월1일 특조위는 구성됐지만, 8개월이나 지나서야 예산을 배정한 것'이 된다. 당시 특조위는 ‘2015년도 진상조사 비용과 운영비’ 등으로 159억 원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44%를 삭감한 89억 원만 지급했다. 올 초 상반기 진상조사비 등 예산 62억 원을 받은 걸 포함하면 특조위가 현재까지 받은 예산은 모두 151억 원이다.
이달(7월)부터 시작한 하반기 예산으로 특조위는 지난달 중순 104억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특조위의 조사 활동 시한이 끝났다"며 예산 배정을 거부했다. 특조위는 하반기 예산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특조위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소재와 진상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건설을 목적으로 활동(특별법 1조)'해야 하고, '외부의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해 직무를 수행(특별법 9조)'해야 한다. 하지만, 예산 편성과 집행에 대한 전권을 가진 정부 앞에 달리 방법은 없다.

인력 지원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언론에선 특조위 인원이 120명이라고 보도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120명 정원을 채운 적은 없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2조’엔 120명이라고 명시돼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 글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11일까지 공무원 19명을 추가로 파견하기로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또 세월호 참사 조사 활동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진상규명국장'은 지난해 9월 선발됐지만, 아직 정부의 임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까지 특조위의 최대 인원은 100명은 고사하고 98명에 불과했다. 법에 명시된 정원조차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정부는 지난 1일 “특조위의 진상 조사 활동시한은 종료됐다”며 일방적으로 파견 공무원 12명을 복귀시키고, 일부 직원은 떠나면서 특조위의 현재 인원은 78명으로 줄어들었다. 또 하반기 예산을 받지 못해 2주 뒤로 다가온 특조위 직원 월급도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조위는 제대로 된 예산 지원도, 법에 명시된 인력도 채우지 못한 상황에서 활동을 해 왔지만, 한쪽에선 ‘인력낭비, 세금도둑’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진짜 문제 예산엔 눈감는 정부

일각에선 “애당초 특조위가 필요 이상의 인력과 예산을 요청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뜩이나 부족한 예산에서 요구한대로 어떻게 다 줄 수 있느냐”는 뜻이다. 앞서 대통령이 나서 명운을 걸겠다는 각오까지 천명했는데, 특조위 예산보다 시급한 게 있었던 것일까.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차치하더라도, 특조위의 출범 목적을 고려할 때 적극적인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사회는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누군가에겐 마을 초입의 다리, 누군가에겐 부처 홍보 사업비가 절실할 수도 있다. 결국 예산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건 정부의 판단과 의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SBS<마부작침>은 지난해 11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확정 전 예산)을 토대로 ‘특조위에 지급할 예산은 부족했고, 이보다 더 시급한 예산이 있었는지’를 파악해 봤다.

이를 위해 SBS<마부작침>은 전문성과 운영의 독립성을 인정받는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분석한 ‘2016년도 정부 부처별 예산안’을 근거로 삼았다. 특히 이 중 예산정책처가 ‘2015년도 대비 30% 이상 또는 100억원 이상 증액된 정부 사업’과 ‘정부의 신규 사업’ 중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예산을 따로 분석했다. 그 결과 예산정책처가 문제 삼은 정부 사업은 41개(83조9,942억6천만원)로 집계됐다. 예산정책처는 “이들 사업에 소요되는 금액 중 일부를 줄여야 된다”고 밝혔고, 일부에 대해선 추진 자체에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다.

대표적으로 정부는 국고채 원금 상환 명목으로 64조2천억원 상당의 예산을 책정했지만, 예산정책처는 “국고채를 과다 편성했다며 절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특조위와 갈등 관계에 있는 해양수산부는 ‘차세대 통신 기술 연구’ 목적으로 2015년 대비 70% 증가한 699억 원 예산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예산정책처는 “해당 연구는 타부처에서 진행하는 ‘기가 코리아(GIGA KOREA 사람과 모든 사물을 통신망으로 연결 사업)’와 목적이 유사하다”며 중복 우려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외에도 정부가 신규 예산으로 책정한 ‘대구권 광역철도 사업비 168억원’, ‘할랄산업식품산업 육성비 95억원’ 등에 대해서도 근거법과 집행실적을 볼 때 문제가 있는 예산으로 파악했다. 특히 예산정책처가 지적한 예산은 전년 대비 ‘30%(또는 100억원 이상) 증액 사업과 신규 사업’으로 한정했다는 점에서 과다 책정된 예산은 더 늘어날 수 있다.

● ‘특조위 예산 없다’던 정부…‘감액 가능 예산만 1.8조원’ 정부의 민낯

예산정책처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6년 예산안’ 중 감액 가능한 규모도 따로 파악했다. <마부작침>은 예산정책처가 지난해 11월 공개한 ‘2016년도 정부 예산안 종합 보고서’ 중 ‘감액 가능하다’고 제시한 예산 목록과 금액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정부 예산안 중 감액 가능한 사업으로 분류한 건 모두 92개로 집계됐다.

대표적으로 정부의 취업성공패키지 사업 예산에 대해 예산정책처는 “집행 실적을 고려할 때 300억 원을 감액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언급한 국고채 이자상환액도 8,188억 원을 감액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산업통상자원부의 예산 중 4천5백억 원, 국방부가 ‘군자녀 졸업 축하금’으로 책정한 예산 중 36억2천8백만원도 줄여야 된다고 분석했다. 이 외에도 인건비 산정을 잘못해 부풀려진 방위사업청 예산 19억 원, 중복 편성 우려가 있는 ‘군간부 전세자금 지원금’ 36억 원, 학군사관후보생 부교재비 예산 중 20억7천만 원, 미래창조부의 우표 발행 예산 중 7억6천만 원, 통계청의 중고교생용 통계 소프트웨어 개발비 4억 원 등도 감액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부작침>이 이런 방식으로 예산정책처의 보고서를 종합해 본 결과, 정부 예산안 중 감액 가능한 액수는 모두 1조 8,252억 6,800만 원으로 분석됐다. 한마디로 정부가 과다 책정한 예산이 무려 2조 원에 가까운데, 정부는 특조위에 대해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라고 판단한 것이다. 산술적으로 국고채 상환액, 군 자녀 졸업 축하금, 우표 발생 금액만 줄여도 특조위가 요구한 예산의 100배 규모를 지원할 수 있다. 애당초 정부는 특조위에 대한 지원 의지도 없었고, 예산 순위를 정할 때 ‘진상 규명, 피해자 지원책 마련,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특별법 입법 목적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 특조위 활동기간이 길다? 방산비리조사보다 짧은 특조위 활동

활동 시한을 두고도 정부는 특별법 취지와 특조위 의견은 무시한 채 강압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말(6월30일)로 ‘특조위의 조사활동 기간’은 끝났다는 입장이다. 활동시한을 규정한 세월호 특별법 7조1항(위원회는 구성을 마친 날로부터 1년 이내 활동 종료, 6개월 이내 연장 가능)하다는 걸 근거로 밝히고 있다. 특별법이 지난해 1월1일에 시행됐으니, 연장 가능한 시점은 지난달 30일까지였다는 것이다. 또 같은 법 7조2항(종합보고서 작성 및 백서 작성을 위해선 3개월 이내 연장 가능)에 따라 앞으로 특조위는 9월까지 3개월 간 백서 발간 등 업무만 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따라서 백서 발간에 필요한 예산만 지원할 수 있고, 파견 공무원도 줄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해석에 대해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의견이 상당하다. 세월호 특조위의 상임위원이 임명장을 받은 날은 지난해 3월5일, 특조위 예산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날은 지난해 8월4일이다. 예산이 없는 상황에선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특별법상 ‘구성이 완료된 날’은 8월5일이라는 것이다. 즉, 진상 규명이 가능한 조사 시한은 내년 2월까지이고, 백서 발간은 그 후 3개월 안에 하면 된다는 뜻이다. 이재승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구성이 완료된 시점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친 날로 해석해야 한다”며 “따라서 기산점은 지난해 8월5일”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어 “정부 주장대로 라면 정부가 조사 대상이 되는 마뜩치 않은 위원회가 구성되면, 관련법만 통과시켜 놓고 활동 기간이 임박할 때까지 예산이나 인력 지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된다”고 지적했다. 법관 출신 변호사는 “법 해석을 아무리 보수적으로 하더라도 기산점은 적어도 임명장을 받은 지난해 3월”이라며 “정부의 일방적 조사활동 종료 통보는 위법하다”고 밝혔다.

특조위의 활동 시한 논란은 예견된 일이었다. 특별법 제정 당시부터 최대 활동 시한을 1년9개월(백서 발간 포함)로 제한한 것을 두고 지나치게 짧았다는 지적이 많았다. 304명이 희생된 사건인데다, 조사의 핵심인 선체 인양이 기약 없는 상황에서 활동 시한을 제한한 건 진상 규명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세월호 참사는 전례를 찾기 힘든 사안이라 비교는 어렵지만,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뒤 꾸려진 다른 조직들에 비해서도 활동 시한이 짧다는 의견도 많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0년 12월 출범한 ‘6.25전쟁 납북피해자 진상규명위원회’는 시한 연장을 통해 내년 6월까지 활동할 예정이다. 또 저축은행 사태 이후 꾸려진 저축은행합동수사단은 2011년 9월 출범했고, 검찰 경찰 국세청 예금보험공사 등에서 인력 158명을 받아 17개월 간 활동했다. 이 외에도 범정부적 차원에서 인력 105명으로 구성된 방위사업비리합동수사단은 지난 2014년 11월 출범한 뒤, 올 초 검사만 15명에 달하는 서울중앙지검 최대 부서인 방위사업수사부로 상설화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돈보다 중요한 생명이 희생된 사건에 대해 활동 시간을 제약하는 게 ‘정의와 인도를 공고히 하고, 우리와 자손의 안전과 자유를 영원히 확보 한다’고 선언한 헌법의 수호자 대통령의 역할이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재승 건국대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두고 ‘두 번의 국가범죄’가 저질러졌다”며 “참사 당시 제대로 된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게 첫 번째고, 특조위의 진상 규명 활동을 제약하는 게 두 번째로, 이는 심각한 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로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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