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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단독] "후보 되려면 범죄경력 조회서 내라"

대한체육회 불법 서류 제출 요구 파문

[취재파일][단독] "후보 되려면 범죄경력 조회서 내라"
최근 중-고등학교 탁구연맹 회장에 출마한 한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후보 등록을 위해서는 각종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범죄경력 회보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범죄경력 조회서와 같은 것입니다. 후보자가 범죄 경력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서류로 관할 경찰서에서 발급을 해줍니다.
위의 사진은 중-고 탁구연맹 회장 등록을 위한 필수 구비 서류 항목입니다. ‘마’항을 보면 ‘임원의 결격사유가 없음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범죄경력 회보서) 1부’라고 돼 있습니다. 이 서류를 중-고 탁구연맹에 내지 않으면 회장 후보로 등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후보자는 ‘범죄경력 회보서’를 발급받기 위해 경찰서를 방문했는데 한 경찰관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범죄경력 회보서는 본인확인용으로만 써야 한다. 만약 이 서류를 중-고 탁구연맹에 제출하면 제출자와 연맹 모두 범죄자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경찰서에 설치된 안내문입니다. 내용은 이렇게 돼 있습니다.
1. 발급되는 회보서는 외국 입국 체류 허가용과 수사자료표 내용 확인용, 국제결혼 제출용입니다.

2. 수사자료표 내용 확인용은 본인확인 용도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회사 등 기타 제출용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행정기관에서 범죄경력 조회 요청시 해당법률을 근거로 공문으로
   경찰서에 요청-경찰서에서 회신하오니 개인발급은 실정법 위반으로 발급하지 않습니다.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위반 : 사용자-취득자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

*담당 공무원은 목적 외 사용자 고발 조치 및 발급 거부할 수 있음.


현재 대한체육회 산하 50개가 넘는 경기단체는 새 회장 선출이 한창입니다. 오는 10월5일 신임 대한체육회장을 선출하기 위해서는 각 경기단체에서 대의원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늦어도 7월말까지는 각 가맹 경기단체의 수장을 선출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한축구협회, 대한사격연맹, 대한빙상경기연맹 등의 회장이 되기 위해서는 후보 등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국내 모든 경기단체는 회장 후보자에게 '범죄 경력 유무‘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서류는 결국 ’범죄경력 회보서‘ 밖에 없습니다. 

’범죄경력 회보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후보가 될 수 없으니까 현재 출마한 회장 후보나 각 경기단체는 사실상 모두 법을 위반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 왜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대한체육회 산하 한 경기 단체 관계자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우리도 범죄경력 회보서를 주고받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상급 단체인 대한체육회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회장 선거를 앞두고 대한체육회가 선거 가이드라인(지침)을 전달했는데 거기에 범죄경력 유무를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도록 명시돼 있다. 대한체육회 지시를 어길 경우에 회장 선출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회장 선거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 감독과 코치를 뽑을 때도 체육회가 범죄경력 유무를 확인하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그럼 대한체육회는 왜 모든 후보를 범법자로 만드는 이런 서류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것일까요? 대한체육회에서 오랜 근무한 한 전문가는 SBS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체육회는 이미 몇 년 전에 이런 서류를 요구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해 범죄경력을 조회할 수 있는 권한을 포함시킬 것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요청했지만 문체부는 지금까지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범죄경력 회보서 제출을 하지 않을 경우에도 문제가 많다. 잘못하면 전과 10범이 경기단체장으로 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 욕을 누가 먹겠는가? 당연히 대한체육회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서류의 제출을 요구하는 것이다.”

제가 아는 지인은 현재 엄청난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내일(15일)이 후보 등록 마감일인데 ‘범죄경력 회보서’를 제출하면 법을 위반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제출하지 않으면 후보 등록이 무효가 되기 때문에 한마디로 진퇴양난이기 때문입니다.

불법적인 서류 제출을 요구하는 대한체육회나, 문제의 심각성을 여전히 간파하지 못한 채 수수방관하는 문화체육관광부나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비정상적인 기관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경기단체와 후보자를 범법자로 만드는 현행 법률과 규정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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