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근대유산…'구산성당'을 아시나요?

[취재파일]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근대유산…'구산성당'을 아시나요?
예전에 '미사리’라 불렸던 지역은 요즘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나게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하남 강변미사지구 개발이 한창 진행되면서 거대한 아파트촌이 들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신축 아파트들의 숲 사이, 개발예정지역의 황폐한 공터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성당이 외롭게 서있습니다. 성당의 이름은 구산성당.

구산성당과 그 주변지역은 한국 천주교사는 물론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한국 근대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장소이기도 합니다. 교수형을 당하면서도 끝내 자신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순교 성인 김성우의 생가터인 동시에 김성우가 한국 최초의 서양인 신부인 모방 신부를 은신하도록 했던 곳입니다.

모방 신부는 김성우 성인의 도움으로 이곳에서 은거하며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웠습니다. 김대건을 교육시키고 마카오 신학교로 보내 한국 최초의 신부로 만든 분입니다. 구산성당을 중심으로 그 주변지역은 한국에선 매우 유례가 드물게 신앙 공동체인 동시에 마을 공동체가 200년 간 유지됐던, 도시역사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구산성당은 원래 180년 전 구산공소(公所)로 시작됩니다. ‘공소’란 성당보다 작은 단위를 뜻하는데, 주임 신부 없이 신도들만으로 운영되는 곳을 뜻합니다. 사실 한국 천주교 역사 200년 가운데 절반 이상은 성당 없이 공소로만 운영된 공소시대였기에, 한국 천주교 역사의 모태는 공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공소’의 역사가 길다는 것은 성직자의 도움 없이 평범한 신자들이 자신들 노력으로 종교의 자유를 지켜낸 기간이 그만큼 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산성당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바로 180년 전 공소로 시작해서 구한말 갖은 종교박해를 꿋꿋이 이겨낸 마을 주민들이 직접 돌을 나르고 벽돌을 만들어 꼭 60년 전인 1956년에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전문적인 건축가가 아닌, 그 공간을 실제로 향유할 이들이 직접 공공의 종교적 건축물을 짓고, 또 그 건축물이 온전하게 반세기 이상 남아있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구산성당을 직접 지은 주민들은 구산성당을 짓기 전에 명동성당과 서소문 약현 성당 건립까지 직접 도운 이들입니다.

근대건축전문가인 경기대 건축대학원 안창모 교수는 구산성당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합니다.  

“구산성당은 마을 주민들이 돌 하나, 모래 한 사발을 직접 비벼서 벽을 쌓고 지붕을 세워 만든 굉장히 진정성 높은 근대유산입니다. 명동성당을 짓는데 구산성당 사람들이 직접 가서 일을 하셨고, 그 다음에 약현성당을 비롯해서 천호동 성당 등 (구산성당 신도들이 성당 건설에 직접 참여하면서) 우리나라의 도시화 전 과정을 이 성당이 체험한 거죠.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천주교史(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도시歷史(역사)’ 측면에서 의미 있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라면 환갑이라고 축하를 받아야 할 올해, 이 성당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하남시  미사강변지구 개발권에 포함되면서 철거가 확정됐기 때문입니다. 순교성인들의 묘소가 있는 인근의 구산성지는 미리 문화재 지정신청을 해 화를 피했지만, 구산성당은 문화재 지정을 머뭇거리는 사이 개발의 직격탄을 맞은 겁니다.

60년 전 직접 한강에서 채취한 모래와 자갈을 시멘트로 비벼 자신의 손으로 성당을 지은 구산성당 신자 79살 박병순씨는 언제 헐릴지 모르는 성당 걱정에 요즘은 아예 성당 앞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고...속이 그냥 아주 무너지는 것 같죠. 그냥 가슴이....어떻게 성당을 옮겼으면 좋은데 이걸 만약에 허물게 되면 이걸 어떻게 보나 내가 잠도 설치고....아주 그냥 일생의 내 추억이 다 그냥 무너지는 것 같고....”

이미 개발권자인 LH는 이곳에 아파트형 공장 건설을 확정한 상황.

단 하나 희망은, 구산성당의 역사 문화적 가치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성당을 등록문화재로 선정해 보존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 성당을 허물지 않고 새로운 장소에 그대로 이축해 이전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장 구산성당의 역사적 가치를 지키는 방법은 그 공간에 그대로 남겨놓는 것이 최선이지만, 불가피하다면 이축을 하더라고 성당의 철거나 훼손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정상급 건축가인 승효상씨는 구산성당 사례야 말로 우리 사회가 근대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수준과 시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합니다.

“구산성당은 단순한 종교건축물이 아닙니다. 인간의 기본 권리인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던 시기에 한국 민중들이 스스로 종교의 자유를 일궈낸 숭고한 업적을 증명하는 동시에, 6. 25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가장 어려운 시기에 공동체의식으로 정신적 구심점이 되는 건축물을 민중 스스로 만든, 근대 역사에 있어서 자랑스런 이정표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당을 그냥 철거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마디로 얘기하면 ‘무식의 소치’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구산성당을 그대로 두고 새롭게 대형 아파트촌이 들어선다면 옛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되면서 더 큰 건축적 공간적 보물을 가질 수 있는건데, 결국 성당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사람들의 어리석음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미사강변지구 개발은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지켜내야할 우리의 소중한 근대건축 구산성당, 구산성당은 보존될 수 있을까요? 또 하나의 아름다운 근대유산이 우리 앞에서 영영 사라지지 않도록 각계의 관심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가톨릭인터넷 굿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