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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어떻게 죽을 것인가?…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취재파일] 어떻게 죽을 것인가?…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편안한 얼굴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세상 모든 사람이 바라는 ‘마지막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병원에서 홀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들은 집에서, 혹은 회사에서 뒤늦게 연락을 받고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기도 합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입장에서도 본인의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 없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이어가다가 쓸쓸히 차가운 병원에서 죽음을 맞기도 합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계획해 나가는 것처럼 ‘마지막 작별’도 조금은 능동적으로 준비할 순 없는 걸까요?

87살 김복단 할머니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분입니다. 김 할머니의 남편은 7년 전 갑작스럽게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상태가 악화되자 남편은 “집으로 가고 싶다”는 바람을 계속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병원을 떠나기가 무서웠던 김 할머니는 여느 사람들처럼 계속 남편이 회복되길 기도하며 열심히 간호했습니다.

남편은 입원한 지 석 달만에 결국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 할머니는 남편의 간절한 마지막 바람을 들어주지 못한게 가슴 한구석에 한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던 지난 4월 김 할머니는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남편의 마지막 순간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김 할머니는 집을 고집했습니다. 병원에 갔다가 다신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까 봐 입원치료를 거부했습니다.

김 할머니의 자식들은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을 받아들여 가정 호스피스를 신청했습니다. 다행히 지난 3월부터 시작된 가정 호스피스 시범사업 서비스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호스피스 전담 의사와 간호사 등으로 구성된 팀이 일주일에 평균 2회 정도 김 할머니 집을 방문해 증상을 살핍니다. 함께 온 자원봉사자에게 발 마사지도 받고, 음악치료사와 70년 만에 ‘고향의 봄’ 노래도 불러봅니다.

26년째 살고 있는 익숙한 집에서 아침을 맞고, 할머니의 손때 묻은 물건들은 눈을 감고도 찾을 수 있는 공간에 놓여 있습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집 앞 마당에 나가 손수 가꾼 작은 텃밭에 물도 줍니다. 김 할머니와 가족들은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을 때보다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진 기분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가정 호스피스를 하려면 환자를 24시간 곁에서 돌볼 사람이 필요합니다. 만약 가족들이 생업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정 호스피스가 여의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간병인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병원 호스피스와 달리 가정 호스피스는 별도의 간병인 고용 시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김 할머니의 경우 오형제와 며느리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습니다.

아직은 시범사업 기간이기 때문에 가정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 전국에 21에 불과합니다. 서울에 4곳, 경기도에 7곳(국립암센터 포함), 인천 2곳, 대구 2곳인데 반해, 부산과 충남 전북, 전남, 울산, 경북은 1곳뿐입니다. 충북과 제주 등은 아예 없습니다. 물리적으로 의료기관이 1시간 이내 거리에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가정 호스피스를 신청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겁니다.

복지부는 내년 8월 본 사업이 시행되면 의료기관을 대폭 늘린다는 계획입니다. 시범사업은 말기 암 환자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본 사업 때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과 만성간경화, 만성폐쇄성호흡기 질환 환자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김 할머니는 요즘 아들에게 부탁해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만나고 있습니다. 아들 문준호 씨는 어머니가 병원에 있었다면 엄두도 못냈을 일이라고 말합니다. 크게 웃고 떠들어도 되고, 마음 편하게 손님을 초대해 음식도 대접할 수 있습니다. 아들, 며느리와 오랜만에 속 깊은 얘기도 나누고, 손도 맞잡아 봅니다.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따뜻하고 아름다울 수 있도록 준비하는 지금 이 시간들에 대해 김 할머니는 “힘을 얻은 것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죽음에 대해 조금 더 ‘나’를 중심에 두고 고민하는 과정,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한 의료적·사회적 돌봄, 가족들의 사랑이 할머니에게 따뜻한 힘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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