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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부르는 게 값…"염색 52만 원 남 얘기 아니다"

[취재파일] 부르는 게 값…"염색 52만 원 남 얘기 아니다"
식당에서 주문을 하면 계산서를 미리 줍니다. 된장찌개 1인분, 설렁탕 1인분, 밥 2공기, 음료수 1병 등 내가 주문한 내역과 금액이 함께 표시돼 있어 ‘계산할 때 얼마를 지불하면 되겠구나’하고 미리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계산이 도통 안 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미용실입니다. 분명 어느 정도 금액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들어가지만, 계산할 때 그 예상은 언제나 빗나갑니다.

지난달 26일 충북 충주에서는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30대 여성이 염색을 하려고 아파트 상가 미용실을 찾았다가 52만원을 결제했습니다. 이 여성은 터무니없는 금액을 지불한 뒤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이 미용실 업주는 상습적으로 손님들에게 수십 만 원씩 부당한 미용 요금을 청구한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를 보고 ‘남의 얘기가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미용실에서 바가지를 쓴 경험이 있다며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미용실 가격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이 왜 끊이지 않는 걸까요?
미용실 요금은 지난 1981년 전면 자율화 됐습니다. 머리를 자르는 데 5천 원을 받든, 1만원을 받든 주인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요금 자율화 이후 가격이 적정한지를 두고 소비자 불만이 잇따랐고 분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정부는 해결책으로 옥외 가격 표시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2013년 1월부터 모든 미용실은 가게 안에 최종 지불 요금표를 비치하고, 면적이 66제곱미터 이상인 경우에는 외부에도 요금표를 두도록 한 겁니다. 업주는 요금표에 커트와 파마 등 대표적인 5개 품목 이상의 가격을 표시해야 하고 머리카락 길이나, 사용 제품 등에 따른 가격 차이도 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금표를 본 기억이 있으신가요? 한국여성소비자연합이 지난해 옥외 가격 표시제에 대해 알고 있는 소비자 559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281명이 “옥외 가격 표시 상점을 본 적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옥외 가격 표시제를 실시하고 있는 업소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미용실 밖 입간판이나 창문에는 분명히 ‘파마 3만 원’이라는 글씨가 써져 있어 들어가 보면 5만원, 7만원, 10만 원 등 옥외 가격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가격을 제시합니다. 밖에 적힌 것은 일반 파마 가격으로 “그 파마로는 예쁜 머리가 안 나온다”, “머릿결이 상할 수 있다”, “손님이 할 수 있는 파마가 아니다”는 등 가격 차이에 대해 미용실 업주가 설명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미용실 바가지 요금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옥외 가격과 실제 시술 비용이 다른 것까지는 참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머리를 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원래 요청하지 않은 시술이 추가되면서 최종 가격이 더 높아지는 경우도 많다고 털어놓습니다. ‘옥외 가격+a +b’라는 가격을 사전에 감안하고 미용실에 가야 속이 덜 쓰리다는 팁 아닌 팁도 설명합니다. 

복지부는 ‘염색 52만 원’ 사건이 논란이 되자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앞으로 미용실에서 전체 요금이 얼마인지 손님에게 사전에 알려야 한다는 지침을 만들어 지난달 30일 전국 시·도, 시·군·구에 전달했습니다.

이 지침에 따라 미용 업소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전에 최종 지불 요금 내역서를 만들어 이용자에게 보이고, 비용 지불에 합의를 해야 합니다. 내역서 형식은 자유롭지만 최종 결제 금액과 구체적인 서비스 제공 내용, 품목별 가격, 제품명, 할인율 등은 반드시 포함돼야 합니다. 이 지침은 오는 15일부터 시행됩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지침일 뿐, 강제력은 여전히 없습니다. 옥외 가격 표시제 역시 공중 위생법에 근거해 지켜져야 할 제도지만 무시되고 있는 현실을 봤을 때, 실효성이 의문입니다. ‘미용실 요금=바가지’라는 소비자 불신을 깨뜨리고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강력한 법적 제재나 정부의 단속이 아닌, 미용실 업주의 양심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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