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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돌아온 LP, 복고 넘어 소통으로

[취재파일] 돌아온 LP, 복고 넘어 소통으로
LP 하면 무슨 생각이 날까. 검정교복세대에겐 추억이자 향수다. 하지만 요즘 20~30대 젊은 세대에겐 그저 구시대의 유물 같은 것일 게다. 첨단 디지털시대에 웬 아날로그 LP 이야기냐고?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 지난달 18~19일 이틀 동안 서울혁신센터에서는 서울레코드페어가 열렸다. 2011년부터 시작됐으니 올해 여섯 번째다. 레코드페어는 추억의 LP음반을 사고파는 이색공간이다. 그때 그 시절 흘러간 노래가 담긴 앨범이며, 가수들의 사진이 담긴 큼직한 재킷이며...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기자의 관심을 끈 건 다른 데 있다. 아무래도 7080세대 정도에 어울릴 법한 LP 향연에 정작 대부분의 방문객은 20, 30대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왜 LP를 찾는 걸까?

LP는 19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대중가요뿐만 아니라 클래식 재즈 팝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에 음악을 전달하는 주요한 미디어였다. 검정 바이닐에 담긴 노래들은 그 당시를 지나온 사람들의 애환 그 자체였고, LP 판매량은 가수들에겐 인기를 가늠하는 잣대였다.

가수들은 지금처럼 연예기획사가 아니라 LP를 제작하는 레코드사에 소속돼 활동했다. 지구, 서라벌, 신세계 등 레코드사는 음반 기획과 제작, 전속가수 확보 등 대중가요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던 1990년대 중반. CD가 등장하면서 LP는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잡음 하나 없는 깨끗한 소리, 한손에 잡힐 듯 작으면서도 LP보다 두 배 이상 노래를 실을 수 있는 소형화와 저장성... CD는 은빛 반짝이는 그 자태만큼이나 신병기 같은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거칠고 크고 시커먼 LP는 곧 외면 받게 됐다. 2004년 서라벌레코드사가 마지막으로 문을 닫으면서 국내 LP시대는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런데, LP가 화려한 부활을 도모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과거 중고 LP를 찾는 마니아들이 조금씩 나타나더니, 새로 만드는 음반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새로 제작하는 LP는 과거 명반이나 희귀음반을 다시 찍는 재발매 방식이었다. 1960년대 당시로선 파격적 음악이었던 신중현의 초기 음반, 70년대 문화탄압시절 금지곡들이 수록된 음반들, 세상을 뜬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널리 불리는 90년대 초 가객 김광석의 음반들이 대표적으로 재발매 됐다.

중고 LP를 찾는 발길도 부쩍 늘어났다. 회현동 지하상가와 황학동 풍물시장 등에 중고 LP점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요즘엔 젊은이들의 거리인 홍대 부근에도 LP점들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찾는 사람이 많아지니 가격도 빠르게 올랐다. 특별한 희귀음반을 제외하면 중고 LP 1장에 4~5년 전만해도 1만원 안팎이었는데, 이젠 보통 수만 원을 호가한다. 그런데도 재킷과 앨범 상태가 좋은 것은 아예 구하기 어렵다.

LP 음반을 제작하는 젊은 가수들도 늘고 있다. 장기하, 아이유, 지드래곤, 브아솔, 인피니트 등 K-POP 주류가수들도 잇따라 LP를 냈다. 걸 그룹 원더걸스는 오는 5일 컴백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신곡 ‘아름다운 그대에게’를 싱글LP로 먼저 선보여 화제다. 500장만 한정 발매된 이 LP는 판매를 시작한지 1시간 반 만에 품절돼 1장에 1만5천 원짜리가 현재 인터넷에서 10만원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20, 30대가 주요 소비계층이다. 이들은 LP를 단지 구시대의 유물, 아날로그의 환생으로 보지 않는다. 액정화면 속 터치로 불리는 무형의 음원 소비시대의 허망함을 채워주는 새로운 도구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문화의 수단을 만난 것이다.

이런 요구에 맞춰 LP도 화려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검정 일색이던 바이닐은 빨강 파랑 노랑 등 컬러시대를 맞았고, 바늘의 회전을 감안해 원형이던 앨범도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컬러와 디자인의 시대가 LP에도 적용된 셈이다. 보다 자유스럽고 다양한 것을 추구하는 현대 젊은이들의 문화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과거에도 이런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다양하고 활발하진 않았다. 실제로 올해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선보인 특별한정LP 11종류 가운데 6종류가 컬러앨범이다. LP는 분명 디지털의 질주에 지친 현대인들의 복고바람을 타고 다시 등장했다. 그런데 아날로그의 환상처럼 보이던 LP가 디자인과 컬러의 변신을 꾀하며 문화의 다양성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LP가 대중문화의 주류로 다시 돌아갈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젊은 세대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세대 간 소통의 문화미디어로 사회적 의미까지 띠고 있다. 돌아온 LP, 그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 과거와 현재가 공존…아날로그 감성 'LP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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