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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취재파일⑮] 올림픽이야 패럴림픽이야

[리우 취재파일⑮] 올림픽이야 패럴림픽이야
▲ 헝가리의 토마시 다르니가 1988년 서울 올림픽 400m 남자 개인혼영에서 우승하였다.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정말 다양한 화제를 낳은 대회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육상 남자 100m에서는 칼 루이스와 벤 존슨이 세기의 대결을 펼친데 이어, 존슨의 금지약물 파동이 터져 세계를 경악시켰습니다.

수영에서는 연일 명승부가 나왔는데요. 그 가운데 하나가 남자 개인혼영 400m입니다. 개인혼영은 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 4종목을 한 선수가 차례로 하는 것으로 수영의 철인을 가리는 경기이지요.
 
이 경기에서 금메달을 다툴 우승후보들은 세계 스포츠팬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헝가리의 토마시 다르니, 그리고 미국의 데이브 워튼이었지요. 이 두 선수에게 이목이 집중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두 선수 모두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21살의 다르니는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고, 19살의 워튼은 청각장애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었는데요. 두 선수는 서울올림픽 이전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계신기록을 세웠습니다. 다르니는 헝가리 수영 선수로는 수십 년 만에 등장한 스타이고, 워튼은 취약했던 미국의 개인혼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유망주이었지요. 두 선수의 빅 매치는 개인의 영예뿐만 아니라 양국 수영의 자존심까지 걸려 있었습니다.
 
결승에 진출한 다르니는 4레인, 워튼은 6레인에서 출발했습니다. 첫 번째 종목은 접영. 여기서는 미국의 워튼이 돋보였습니다. 100m를 1위로 통과하며 기선을 잡았지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접영이 약했던 다르니는 3위였습니다.
 
두 번째 종목인 배영이 분수령이었습니다. 원래 배영이 약했던 워튼이 뒤로 밀렸고, 뛰어난 지구력을 보유한 다르니가 이 틈을 노려 힘차게 물살을 갈랐습니다. 경기의 절반인 200m가 끝났을 때 다르니가 역전에 성공하며 선두에 나섰고, 반대로 워튼은 3위로 처졌습니다.
 
남은 종목은 평영과 자유형. 다르니는 두 종목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하며 선두 자리를 결코 내주지 않았습니다. 경쟁자들을 2m 이상 따돌리며 우승을 눈앞에 두게 되었지요. 금메달은 떼놓은 당상이 되자 이제 초점은 다르니 자신이 갖고 있던 세계신기록을 경신할 것인가에 모아졌습니다. 끝까지 역영한 다르니는 4분14초75로 맨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습니다. 자신의 기록을 0.67초 단축시킨 세계신기록이었지요. 워튼은 2초61 뒤진 2위로 들어왔습니다.
 
다르니는 조국 헝가리에 36년 만에 올림픽 수영 금메달을 선사했습니다. 다르니는 400m에 이어 200m까지 우승하면서 남자 개인혼영 2종목을 모두 석권했습니다. 그리고 4년 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역시 2종목 금메달을 차지해 올림픽 2회 연속 2관왕이란 찬란한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다르니가 시각 장애를 갖게 된 것은 15살 때인 1982년입니다. 눈싸움 도중에 친구가 던진 눈덩이에 왼쪽 눈을 맞아 크게 다치고 맙니다. 실명 위기에 놓인 다르니는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선수생활을 중단해야 하는 위기까지 몰렸지만, 헝가리에서는 그의 눈을 살릴 뾰족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눈 치료 기술이 가장 뛰어난 곳으로 평가를 받는 나라는 서독이었습니다.
 
다르니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서독에서 7차례나 망막 수술을 받았습니다. 간신히 완전 실명은 면했지만, 여전히 오른쪽 눈에 비하면 시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수술 여파로 훈련도 1년 이상 제대로 하지 못했지요. 하지만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1985년부터 1993년 은퇴할 때까지 10년 가까이 무적의 챔피언으로 군림했습니다.
 
과연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비결은 두 가지였습니다. 여기서 그냥 물러설 수 없다는 다르니 본인의 초인적인 의지가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기적의 콤비’로 불리는 토마시 코치의 힘이 컸습니다. 토마시 코치는 어린 제자를 따뜻하게 격려하면서도 지독한 스파르타식 훈련을 주문했습니다. 스승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다르니는 물에서 살다시피 했지요. 매일 1만2천m를 수영하는 지옥 훈련을 묵묵히 해냈습니다. 1만2천m는 50m 수영장을 120번 왕복하는 엄청난 거리입니다. 
수영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데이브 워튼의 모습 (사진=trojancandy홈페이지 캡처)
신화적인 수영스타 다르니에 밀려 비록 은메달에 그쳤지만 미국의 데이브 워튼의 사연도 대단합니다. 다르니와 달리 워튼은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를 갖고 있었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코치가 귀엣말로 해야 겨우 알아들을 정도였지요. 정상인 청력의 절반도 갖지 못한 워튼이었지만, 그가 다르니와 함께 수영 개인 혼영의 역사를 이끌었던 선수라는 사실에서 집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다르니와 워튼처럼 선천적이거나 또는 후천적인 핸디캡을 극복하고 영광의 자리에 오른 선수는 많이 있습니다. 1929년부터 38년까지 헝가리의 사격 대표 선수였던 카로리 타카스는 군사작전에 참가했다가 수류탄 폭발로 총을 잡았던 오른손을 잃었습니다. 이후 10년 동안 왼손으로 맹훈련을 거듭해 1948년 런던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 자동권총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미국 육상선수 레이 어리는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무려 10개의 금메달을 따냈고, 윌마 루돌프(미국)은 11살 때까지 목발에 의지해야 했던 장애인이었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100m, 200m, 400m 계주를 휩쓸며 최초의 여자 3관왕에 올랐습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는 어떤 선수가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지구촌을 감동시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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