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15살에 6.25 전쟁터에 내몰린 '소년-소녀병'을 아시나요?

- 한국전쟁의 숨겨진 비극, 소년-소녀병

[취재파일] 15살에 6.25 전쟁터에 내몰린 '소년-소녀병'을 아시나요?
▲ 한국전쟁 당시 미국 특수부대원과 함께 사진을 찍는 한국 참전자
(사진=게티 이미지/이매진스)

이제 이틀 후면 당시 한반도 인구의 10%인 400만 명이 희생돼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동족 간의 전쟁이었던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6주년이 됩니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6.25가 역사책에 나오는 먼 얘기 같을수도 있지만, 한국전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닌 휴전 상태로 남아 있고, 참전했던 군인 100만 명 가운데 17만 명은 여전히 생존해 있습니다.

그런데,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생존군인 가운데는 불과 10년 전 까지만 해도 참전 사실을 인정받기는커녕 아예 존재 사실조차 인정받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소년-소녀병’들입니다.

소년-소녀병이라면, 학생 때 자진해서 군에 입대한 학도의용병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학도의용병은 학생 신분으로 자진해 지원한 비정규군으로, 그 숭고한 업적과 존재를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분들입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소년-소녀병들은 병역의무를 지우면 절대 안 되는 17세 이하의 아동들임에도 현역병으로 징집되어 군번을 부여받아 정규군으로 참전한 군인들입니다. 이들의 규모는 몇 백명 수준이 아닙니다. 국방부 군적에 남아있는 인원만 무려 3만 여명에 달합니다. 그 속에는 소녀군도 5백 명이나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전쟁 통이라 해도 누가 봐도 어린이였던 소년 소녀들이 어떻게 징집을 당했을까요? 15살에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한국전쟁이 시작된지 불과 2달 만에 징집된 생존 소년병 윤한수 옹(81살)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학교에 온 군인들이) 제군들, 장교나 일반 병사로도 지원해서 모두 가거라, 나라가 이리 위중하다. 이렇게 징집을 권유했어요. 그런데 법률적으로 우리는 병력의무를 이행할 나이가 안됐으니까, 그건 이제 설사 지원을 한다고 하더라도 안 받아 주는게 원칙이죠. 그런데 자고 나면 뒷집에 앞집에 청년들이 학생들이 하나씩 없어져요. 그때 방위군, 경찰관들이 와서 강제로 전부 데리고 가버렸어요.”

갑작스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평범한 열 다섯 소년들은 갑자기 군인이 된겁니다. 윤한수 옹은 당시 키가 160cm도 안되던 어린 소년, 가녀린 어깨에는 책가방 대신 24kg 군장이 주어졌습니다. 총 쏘는 법도 제대로 모르던 소년의 눈앞에 말 그대로 지옥과 같은 전쟁터가 펼쳐졌습니다.

“아....이게 전쟁이구나. 다친 아이들을 들것에다 담고 내려오는데, 생명이 붙어있는 놈들은 고함을 지르고 살려달라고 막 아우성을 치는데, 야 이건 큰일났다....몸 전체에 소름이 끼치는데....이게 뭐야...나도 곧 저리될건데....” (윤한수 옹, 6.25 참전 소년병)

윤한수 옹은 즉결심판은 66년이 지난 지금 눈을 감아도 어제 일 처럼 떠오르는 참혹한 경험이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어린 소년병들에게 담력을 키운다고 해서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은 뭐냐하면 제네바 협정에 의해서는 포로를 잡으면 즉결심판같은 것을 못시킵니다. 그런데 즉결심판을 시켰어요. 그 (즉결심판) 처형 사수를 신병들(소년병들)에게 시킵니다. 나는 총 쏘는데 안맞더라. 떨려서 잘 안봤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난 모르겠고, 좌우간 그걸 내가 했다고. 그러니 얼마나 무서워. 그건 평생을 나는 못 잊어버린다."  (윤한수 옹, 6.25 참전 소년병)

무려 1만 2천명의 소년병이 가장 치열하고 위험했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 최전선에 투입됐고, 전체 소년병 3만  명 가운데 10%인 3천 명이 전사했습니다.

미성년자 징집은 UN 소년병 보호협정 위반, 때문에 2006년 생존 소년병 6백 명이 청와대에 탄원서를 내기 전까지 국가는 소년병에 대한 보상은 커녕 존재조차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생존 소년병인 박태승(83살)옹은 이렇게 절규합니다. 

“아이들 3만 명을 입대시켜놓고, 3천 명이나 전사를 했는데 희생이 없다고 하니 이게 말이 안되잖아요. 독립기념관에 가면 일본이 소년병을 징집해서 전쟁터로 몰아 넣은 사진이 전시돼있습니다. 일본의 잘못을 알면서 우리 소년병의 희생과 공헌은 왜 덮어두려는냐....이율 배반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요? ”                         

2006년 이후 소년병들이 전쟁에 참전한 사실만 인정됐을 뿐, 여전히 국가 유공자 인정은 받지 못하는 소년 소녀 병들. 이미 15년 전인 2001년 16대 국회부터 소년병을 국가 유공자로 인정하자는 법안은 계속 발의됐지만, 여전히 처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생존한 소년병들은 5천 명이 채 안 되는 상황입니다.

생존 소년병에 대한 집중 인터뷰로 책을 펴낸 군사편찬연구소 이상호 박사는 소년병들의 가슴 아픈 심정과 상황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한창 공부를 해야 될 나이에 전선에 있다 보니까, 소년병들은 사회에 정상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자의반 타의반 놓치게 됐습니다. 그러니 굉장히 신산스러운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거죠. 이분들이 가장 억울한 것은,  보상을 원한다기 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운 것을 제발 인정해 달라는 인정요구가 절실합니다.”

국가를 구한다는 일념 하나로 국가의 부름에 응했던 노병들. 그러나 목숨을 바쳐 싸운 그들을 기다린 건 군인으로서 존재 자체도 인정하지 않는 국가의 외면이었습니다. 휴전 66년, 국가를 지켜낸 노병들이 지금 우리에게 국가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