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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K-문학? 'K-' 접두사의 함정

[리포트+] K-문학? 'K-' 접두사의 함정
지난 19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문학 세계화 포럼’. 이 자리에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채식주의자’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나왔습니다.

비록 맨부커상은 한 개인이 이룬 업적이지만, 사람들은 한국문학이 세계적인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또, 앞으로 어떻게 하면 한국문학을 세계화할 수 있을지도 궁금해했습니다.

그녀는 어떤 조언을 했을까요?

그녀의 조언에는 예상을 깨는 ‘반전’이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K-문학’ 같은 구호를 내건, 국가 주도의 사업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데보라 스미스]
“성공 처세술을 다루는 경영서들처럼 ‘한국문학이 세계 정복에 필요한 10가지 단계’ 같은 실행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은 언제나 위험한 발상입니다.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부 주도의 시도나 세계 주요작품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는 맹목적인 주문은 출판인들의 정신과 상충됩니다.”
맨부커상 수상 소식 이후 ‘K-문학’이라는 신조어가 심심찮게 나돌고 있는 상황입니다. 쾌거를 발판 삼아서 문학에도 한류의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그런데, 이를 경계해야 한다니 무슨 뜻일까요?

● '노벨상'에 집착하는 한국

그녀의 주문은 간단명료했습니다.

그녀는 문학에 대해 열정이 있는 출판인들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출판을 계속 해 나가는 것’에 있기 때문에 섣부른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었죠. 그런 출판인들에게 하루아침에 ‘한류’의 역군이 될 것을 주문하는 자세는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만 “작가와 번역가, 출판사 관계자 등이 각자의 위치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지원기관이나 기타 기관이 이들의 작업을 도와주면 된다”라고 덧붙였을 뿐입니다.

전에도 그녀는 한국 만의 이상한 현상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15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에서 노벨상에 이렇게 집착하는 것(obsessed)이 약간 당황스럽다”라고 말했었습니다. 문학이 마치 노벨상을 타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본말전도’의 분위기가 그녀의 눈에 이상하게 비춰졌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런 한국의 분위기에 대해서 “작가가 좋은 작품을 쓰고 독자가 잘 감상하고 즐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작가에겐 충분한 보상이 된다. 상은 그저 상일 뿐이다”라고 못 박았습니다.

● 'K·K·K…'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국뽕’. 

국가와 마약의 일종인 ‘히로뽕’을 섞은 신조어입니다. 무조건적이고 맥락 없이 ‘한국’을 찬양하는 행태를 비꼴 때 사용되곤 하죠.

국뽕의 대표 사례로 지목되는 하나가 바로, 맥락없이 ‘K-’ 접두사를 다는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 ‘K-’자가 붙은 신조어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물론 개중에서 ‘K-POP’은 자생적으로 한류 열풍을 만들어낸 장르로, 고유의 특징과 의미를 발전시켰습니다.

반면 ‘K-’가 왜 붙었는지 알 수 없는 장르도 있습니다. 단지 ‘한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라는 목적 외에는 콘텐츠면에서 차별성이나 특색은 눈에 띄지 않는 것이죠.

과연 그러한 ‘국뽕’ 장르가 세계인에게, 아니 우리 스스로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한국적’이라는 딱지를 붙인 채 맥락없이 국가 브랜드로 키워내려는 여러 시도에 대해 데보라 스미스의 조언은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그녀는 한국문학의 현주소와 과제를 정확히 짚었습니다.

외국의 어떤 출판사도 원작이 한국이라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작품이 주목받는 건 소재의 ‘한국스러움’ 때문이 아니라, 작품이 가진 독특한 스타일, 주제 때문이라는 것이죠.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문학’ 작가로 인식되지 않는 것처럼 한강 역시 ‘한국문학’ 작가로 인식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채식주의자’ 홍보 방식에 대해 ‘한국’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음으로써 ‘다른 문화로의 창’이란 진부한 프레임을 벗어났다고 설명했습니다. 홍보대상을 ‘한국에 관심 있는 독자’보다 훨씬 광범위한 ‘문학 혹은 번역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로 설정해 전파 범위를 극대화했다고도 말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그녀가 전한 메시지는 간단명료했습니다. 맥락없이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죠. 오히려 국적 불문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 데보라 스미스 ]
“아직 한국문학의 서사 방식이나 문체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고정관념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독보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어요. 몇 년 안에 한국문학은 독창성, 예술성, 형식과 문체의 다양성을 대체하는 새로운 고유명사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기획·구성: 임태우 기자 / 그래픽 디자인: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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