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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취재파일⑥] 올림픽 희대의 오심…'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3초'

역대 올림픽 최악의 오심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사건은 1972년 뮌헨올림픽 미국과 소련의 남자 농구 결승전입니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시절이었고, 경기가 열린 곳이 한반도와 함께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서독이어서 더욱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경기도 막판까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접전이었습니다.

미국이 한 점 차로 뒤진 경기 종료 3초 전. 더그 콜린스 선수가 상대의 반칙으로 얻어낸 자유투 2개를 모두 성공시켜 50대 49로 한 점 차 극적인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3초만 버티면 우승!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습니다.

● 이해할 수 없는 심판의 작전 타임 수용…경기 중단

앞서 콜린스가 심판으로부터 공을 건네받아 자유투 2구째를 던지려고 준비하던 순간, 소련 벤치에서 작전 타임을 요청했고 작전 타임을 알리는 부저가 울렸습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잘못이었습니다. 콜린스가 심판으로부터 공을 건네받은 후였기 때문에 규정상 작전 타임을 부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엔드라인에 있던 불가리아인 부심은 규정대로 소련 벤치의 작전 타임을 받아들이지 않고 선수들에게 경기 진행을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소련 선수들이 공격을 시작하고 경기종료까지 불과 1초가 남았을 때 갑자기 브라질인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켰습니다.

소련 감독이 작전 타임을 요청했었다고 강력히 항의하자 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에 미국 선수들이 작전 타임을 부를 수 없었던 상황임을 상기시키며 항의하자 주심은 다시 작전타임을 없던 것으로 했습니다. 한마디로 촌극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초.

● 윌리엄 존스 사무총장의 부당한 판정 개입

그런데 여기서 농구 역사상 희대의 일이 발생합니다. 본부석에 앉아있던 윌리엄 존스 당시 국제농구연맹(FIBA) 사무총장이 심판들에게 시간을 다시 3초 전으로 돌려놓으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당시 TV 중계화면에도 존스 사무총장이 심판을 향해 3초를 의미하는 손가락 세 개를 펴보이는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손가락 3개 펴보이는 윌리엄 존스 사무총장
존스 사무총장은 판정에 개입할 아무런 권한이 없었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지만 심판들은 순순히 그의 지시대로 시간을 다시 3초 전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참고로 윌리엄 존스는 국제농구연맹의 창설자 가운데 한 명으로 1932년부터 1976년까지 무려 44년 동안 국제농구연맹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입니다. 대만에서 현재 매년 열리고 있는 '윌리엄 존스컵 국제농구대회' 아시죠? 우리나라 남녀 국가대표팀도 오래전부터 출전해서 친숙한 대회인데, 바로 윌리엄 존스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습니다.

● 시간 계시원의 미숙한 운영

여기서 또 미숙한 경기 운영이 나왔습니다. 시간 계시원이 전광판의 시계를 3초 전으로 돌려놓지 않은 채 경기가 재개됐고, 소련의 공격 개시 후 1초가 흐르자 경기가 종료된 것입니다. 어쨌든 종료 부저가 울리자 미국 선수들은 코트로 몰려나와 방방 뛰고 얼싸안으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우승한 줄 알고 좋아하는 미국 선수들
기쁨도 잠시. 심판들이 미국 감독과 선수들한테 다가가 아직 경기가 안 끝났다고 말합니다. 전광판 시계가 잘못됐으니 3초 전으로 돌려놓고 다시 경기를 하라고 했습니다. 미국 선수들은 어이없어 하며 항의했지만 결국 심판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다시 코트 위로 나왔습니다. 소련에게 3초 동안 세 번이나 공격 기회가 주어진 셈입니다.

세 번째 공격 기회에서 소련이 엔드라인에서 정확한 롱패스에 이어 골밑 슛을 성공시켜 51대 50으로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미국에게 가장 길었던 3초는 이렇게 마무리됐습니다. 농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부터 이어져온 미국 남자 농구대표팀의 7회 연속 우승과 63연승 행진도 이렇게 마감되었습니다.
경기 재개 후 소련의 결승 골 사진
패배 후 안타까워하는 미국 선수들 사진
미국 팀은 국제농구연맹에 정식으로 제소했습니다. 하지만 소청위원회 표결에서 3대 2로 기각됐습니다. 당시 5명의 소청위원회 배심원 가운데 공산권 국가였던 폴란드, 쿠바, 헝가리인 배심원들은 소련의 손을 들어줬고, 이탈리아와 푸에르토리코인 배심원은 미국을 지지했습니다.

미국 선수들은 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은메달 수령을 거부했고, 시상식도 미국선수들 없이 진행됐습니다. 미국 팀의 은메달은 현재 IOC가 있는 스위스 로잔의 올림픽 박물관 창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미국 선수들은 4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은메달 수령을 거부하고 있고, 당시 미국 대표팀의 가드였던 케니 데이비스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절대로 메달을 수령하지 말라며 미리 유서까지 작성해 놓았습니다. 미국 선수들은 자신들의 독주를 막기 위해 당시 조직적인 편파 판정과 음모가 개입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에게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3초'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4년 전 런던올림픽 펜싱에서 신아람 선수의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1초'가 있죠. 당시 상대선수였던 독일의 하이데만에게 1초 동안 3번이나 공격 기회를 줘서 승리를 안겨준 것도 상황이 흡사합니다.

당시 AFP통신은 신아람 사건을 1972년 뮌헨올림픽 미국과 소련의 남자 농구 결승 등과 함께 '역대 올림픽 5대 오심'으로 선정하기도 했는데, 리우 올림픽은 이런 어이없는 오심으로 얼룩지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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