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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취재파일⑨] 금메달보다 값진 아름다운 우정

[편집자 주]

오는 8월5일(현지 시간) 브라질의 세계적 미항인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촌 축제’인 제31회 하계 올림픽이 화려한 막을 올립니다. 남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올림픽이어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SBS는 지난 120년 동안 올림픽이 낳은 불멸의 스타, 감동의 순간, 잊지 못할 명장면,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각종 에피소드를 담은 특별 취재파일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특별 취재파일이 올림픽에 대한 독자의 상식과 관심을 확대시켜 리우올림픽을 2배로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승부에서 이겨 금메달을 따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치열한 경쟁에서 친구가 되는 것이 쉽지 않은 겁니다.

하지만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우정은 있습니다. 오늘은 올림픽의 참다운 가치를 실현한 아름다운 경쟁의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육상 남자종목 중에 10종 경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100m, 높이뛰기, 멀리뛰기, 장대높이뛰기, 투포환 등 10가지 경기를 겨뤄 합산 점수로 메달을 가리는 종목입니다. 스피드와 힘, 지구력을 모두 갖춰야 하기 때문에 아시아인에게는 정말 어려운 종목이었지요. 그런데 1950년대 아시아에서 걸출한 선수가 혜성처럼 등장합니다. 바로 1954년과 58년 아시안게임에서 연속 금메달을 차지한 타이완(대만)의 양추안광입니다.
양추안광 (사진=위키피디아)
타이완 정부는 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내다보고 육상의 본고장, 미국 UCLA 대학으로 그를 유학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양추안광은 겁이 덜컥 났습니다. 가자니 걱정이 태산 같고 안 가자니 절호의 기회를 날리는 것 같아 주저했지요. 양추안광은 간신히 용기를 내 혈혈단신으로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그의 어깨를 탁 치며 인사하는 선수가 있었는데요. 당시 세계 정상급 스타로 흑인인 미국의 레이퍼 존슨이었습니다.
 
양추안광, 레이퍼 존슨 이 두 선수는 2년 전 멜버른 올림픽에서 만난 적이 있는 사이였습니다. 두 사람은 더키 드레이크라는 유명한 백인 코치 아래서 한솥밥을 먹기 시작했는데요. 기량으로만 보면 두 선수는 2년 뒤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다툴 후보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에게는 저마다 아픔이 있었습니다.
 
양추안광은 낯설고 물 설은 이국땅에서 적응이 쉽지 않았습니다. 미국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3끼 모두 ‘비프스테이크’로 때우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난관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레이퍼 존슨은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렸고, 극심한 인종 차별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동병상련이었을까요? 팀 동료가 된 두 선수는 곧 친구가 됐습니다. 존슨은 주말이면 양추안광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맛있는 식사를 대접했고 손짓, 발짓해가며 영어도 가르쳐줬습니다. 존슨은 “너 영어 수준이 내 중국어 수준이다”는 농담까지 하며 언어의 장벽을 우정으로 극복했습니다.
 
이뿐만 아니었습니다. 신장 180cm인 양추안광은 달리기와 도약 경기에 강한 반면 투포환, 투원반 등 투척 경기에 약했습니다. 키 190cm의 거구인 존슨은 양추안광과 정반대였지요. 아무리 팀 동료이지만 조만간 올림픽 금메달을 다툴 경쟁자에게 자신만의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두 선수는 자신이 강한 종목의 노하우를 서로 교류하며 부족한 점을 상호 보완했습니다. 1960년 UCLA대학에서 2년 동안 함께 훈련한 두 선수는 마침내 1960년 9월 로마 올림픽에서 숙명의 대결을 펼치게 됐습니다.
 
경기 당일이 되자 막상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점심도 따로 먹을 정도였습니다. 절친한 친구 사이에 승부를 가려야 한다는 부담이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 경기 결과 양추안광은 자신의 특기인 100m, 멀리뛰기, 높이뛰기 등 6종목에서 존슨을 앞섰습니다.
 
반면 존슨은 투포환, 투창, 투포환 3종목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지요. 합계 점수에서는 존슨이 67점 앞섰고, 남은 종목은 1,500m 하나뿐이었습니다. 평소 기록을 보면 양추안광이 존슨보다 18초 정도 빨랐습니다. 존슨이 금메달을 지키려면 양추안광과의 격차가 10초를 넘지 않아야 했는데요. 운명의 장난일까요? 두 선수는 같은 조에서 뛰게 됐습니다.
 
두 선수의 코치인 드레이크는 두 제자에게 경기 직전에 서로 모순된 주문을 했습니다. 양추안광에게는 존슨을 무조건 10초 이상 따돌려야 우승한다고 말했고, 존슨에게는 금메달을 따기 위해 양추안광 뒤만 바짝 따라가라고 지시했습니다. 두 선수는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1960 로마 올림픽에서 1,500m 경기 후 레이퍼 존슨(왼쪽)과 양추안광(오른쪽)이 서로 기대 있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결국 양추안광이 존슨보다 1.4초 먼저 들어왔지만 역전하기에는 격차가 너무 적었습니다. 존슨 금메달, 양추안광 은메달이었지요. 하지만 1등을 한 선수나 2등을 한 선수나 표정은 똑같았습니다. 헐떡거리는 숨을 간신히 참고 최선을 다한 친구를 서로 격려했습니다. 존슨은 나중에 “우승해 무척 기쁘다. 하지만 친구의 패배는 가슴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경기가 또 하나 있습니다. 독일 총통 히틀러가 아리안족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흑인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시기에 나온 스토리입니다. 이때 미국 육상에 천재가 나타났는데요. 흑인 선수 제시 오언스였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오언스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남자 멀리뛰기 예선에서 2차례나 실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한번만 더 실격하면 탈락이었던 그에게 잘생긴 백인 선수가 다가왔습니다. “발 구름판을 넉넉히 10cm쯤 뒤를 밟으세요. 그래도 당신 실력으로는 충분합니다.” 조언을 건넨 선수는 바로 1차 시기에서 이미 세계기록을 세운 독일의 루츠 롱이었습니다. 오언스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지요. 오언스는 루츠 롱의 조언대로 긴장을 풀고 심호흡을 한 뒤 도약했습니다. 
제시 오언스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결과는 오언스가 8m6cm로 금메달, 히틀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루츠 롱은 19cm 뒤져 은메달이었습니다. 금메달이 확정된 오언스의 손을 먼저 잡고 높이 들어 관중에게 인사를 시킨 것도 루츠 롱이었습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100m, 200m, 400m계주와 멀리뛰기 등 4관왕을 차지한 제시 오언스는 “'내가 가진 모든 금메달을 녹여도 루츠 롱의 우정을 금빛으로 칠하지 못할 것이다”'며 당시의 감격을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멀리뛰기 시상식 모습. 왼쪽부터 나오토 타지마, 제시 오언스, 루츠 롱 선수 (사진=위키피디아)
두 선수가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던 모습은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담겼고, 베를린 올림픽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장면이 됐습니다. 그로부터 73년이 지난 2009년 세계 육상 선수권이 베를린에서 열렸습니다. 이때 오언스의 손녀와 루츠 롱의 아들이 멀리뛰기 시상식에 나란히 나와 아름다운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다시 한 번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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