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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취재파일⑦] 마지막 1발에 무너진 ‘에먼스 징크스’

[편집자 주]

오는 8월5일(현지 시간) 브라질의 세계적 미항인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촌 축제’인 제31회 하계 올림픽이  화려한 막을 올립니다. 남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올림픽이어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SBS는 지난 120년 동안 올림픽이 낳은 불멸의 스타, 감동의 순간, 잊지 못할 명장면,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각종 에피소드를 담은 특별 취재파일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특별 취재파일이 올림픽에 대한 독자의 상식과 관심을 확대시켜 리우올림픽을 2배로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미국의 전설적 야구 선수인 요기 베라는 이런 불멸의 명언을 남겼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It ain't over till it's over) 이 말은 일반적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역경을 극복하고 승리를 차지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끝날 때까지 울지 않으면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 앞서가고 있는 사람도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절대 안심하거나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다 된 밥에 재 뿌린다”는 말이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눈앞에 두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범해 땅을 쳐야 했던 선수들이 꽤 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미국 사격의 간판 스타인 매튜 에먼스입니다.

2004년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1896년 제1회 대회 이후 108년 만에 다시 지구촌 축제가 열렸습니다. 아테네는 원래 100주년이 되는 1996년에 개최하는 것을 원했지만, 상업주의에 오염됐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의 고향 대신 ‘코카콜라의 고향’인 미국 애틀랜타에 개최권을 주고 말았습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사격이 연일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한국의 진종오는 남자 50m 권총 결선에서 6번째 발까지 선두에 나서 금메달이 유력했습니다. 그런데 7번째 발에서 6.9점을 쏘아 은메달에 그쳤습니다. 메달 색깔이 결정적 순간에 뒤바뀐 것입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매튜 에먼스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진종오보다 훨씬 믿기 힘든 황당한 장면은 남자 50m 소총 3자세에서 나왔습니다. 미국 국가대표였던 23살의 매튜 에먼스는 모두 10발을 쏘는 결선에서 9번째 발까지 3점차 선두를 지켰습니다. 만점이 10.9점이기 때문에 7.8점만 쏴도 금메달은 그의 몫이었습니다.
 
사격장에 모인 사람들과 TV로 결선을 지켜보던 지구촌 시청자, 그 누구도 매튜 에먼스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순간, 세계 사격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극도로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금메달은 이미 ‘떼놓은 당상’으로 여겨 마음을 놓은 것인지, 어찌됐든 그만 마지막 10번째 발을 다른 선수의 표적에 쏘고 말았습니다.
 
실수라고 하기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종의 참사였습니다. 사격 전문가에 따르면 세계 정상급 선수가 이런 황당 실수를 할 가능성은 0.1% 미만이라고 합니다. 사격 규정상 다른 선수의 표적에 쏘면 0점으로 처리됩니다. 1점의 차이에 따라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치열한 경쟁에서 아예 10.9점을 통째로 날려버린 것입니다. 결국 에먼스는 금메달은커녕 은메달, 동메달도 따지 못하고 최하위로 추락했습니다.
 
4년 뒤 베이징 올림픽 같은 종목에서 진종오는 금메달을 따내며 4년 전의 아쉬움을 말끔히 씻었지만 에먼스는 또 한 번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9번째 발까지 3.3점차로 선두를 달리다 남은 한 발을 ‘눈을 감고 쏴도 맞힐’ 4.4점을 쏘면서 4위로 밀려났습니다. 또 다시 동메달도 따지 못한 것입니다.

다시 4년 뒤인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진종오는 2관왕에 올랐지만 에먼스는 똑같은 실수를 범했습니다. 역시 마지막 1발을 남겨놓고 은메달이 거의 확실했는데 10번째 발에서 웬만해서는 나오지 않는 7.6점을 쏘고 말았습니다. 메달은 동메달로 바뀌었습니다. 대신 은메달은 에먼스에 1.2점 앞선 한국의 김종현이 차지했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시상식 모습. 왼쪽부터 은메달 김종현(한국), 금메달 니콜로 캠프리아니(이탈리아), 동메달 매튜 에먼스(미국).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3차례 올림픽에서 연거푸 마지막에 무너진 매튜 에먼스의 소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메달을 땄으니 나는 지지 않았다.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는 것 자체가 멋지지 않은가? 긴장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긴장한 것은 사실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긴장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다른 선수에게 준 것으로 만족한다.”
 
이후 국제 스포츠계에서 에먼스는 ‘새가슴의 대명사’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갖게 됐습니다. ‘에먼스 징크스’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습니다. ‘에먼스 징크스’란 잘 나가다가 마지막 한 순간에 무너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매튜 에먼스는 지난 달 하순 독일 뮌헨에서 열린 월드컵 사격 대회 남자 50m 소총 3자세에서 결선 세계신기록(464.1점)을 세우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오는 8월 리우올림픽에서도 다시 한 번 ‘새가슴’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4회 연속 ‘저주’에 시달릴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는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해 지긋지긋한 징크스에서 시원스럽게 탈출할 것인지, 세계 사격 팬들의 이목이 벌써부터 그에게 쏠리고 있습니다.
 
부부 사격수로 잘 알려진 매튜 에먼스가 그의 아내 카테리나 에먼스와 2012 런던 올림픽 경기 중 대화하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참고로 매튜 에먼스는 부부 사격선수로도 유명합니다. 에먼스가 아테네 올림픽에서 말도 안 되는 실수로 금메달을 날려 버린 뒤 실의에 빠졌을 때 체코의 카테르지나와 사귀기 시작해 2007년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카테르지나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는데, 이는 전 종목을 통틀어 대회 첫 금메달이기도 했습니다. 에먼스 커플은 사상 처음으로 부부가 서로 다른 국적으로 같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기록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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