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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터뷰+] "주차된 차 받으면 도망가라?"…법의 이상한 '맹점'

[人터뷰+] "주차된 차 받으면 도망가라?"…법의 이상한 '맹점'
주차장이나 길가에 차를 세워놨는데 다른 차가 들이받고 도망쳤다면 속상하겠죠. 이런 피해는 인터넷상에 ‘주차장 뺑소니’, ‘주차 뺑소니’라는 제목으로 수많은 사연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CCTV나 블랙박스를 뒤져서 간신히 가해자를 찾아낸 다음입니다. 사고를 내고도 뻔뻔하게 도망간 가해자를 경찰에 신고해도 보험처리 받는 것 말고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피해자 처지에서는 황당할 따름입니다.

SBS 취재진은 교통사고 분야 전문가인 한문철 변호사를 만나 황당한 현실의 원인이 무엇인지 들어봤습니다. 한 변호사는 현행법이 지닌 문제점과 대책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편집자 주>


▷ 기자: 주차장 뺑소니를 당한 분들이 많을까요?

▶ 한문철 변호사:

글쎄요, 그런 피해 경험이 다섯 명 중 한 명꼴은 되지 않을까요? 나는 아니더라도, 주변에 그런 분들은 반드시 있을 겁니다. 1년에 수십만 건 이상의 대물 뺑소니가 발생하거든요. 그런데 처벌할 수 있는 것은 그 중의 일부밖에 안 됩니다. 거기에 많은 분이 분노하시죠. 일반인들은 내 집 다음 두 번째로 소중하게 여기는 재산이 자동차니까요.

▷ 기자: 왠지 범죄 같은데도 정말로 처벌이 안 되는 건가요?

▶ 한문철 변호사:

네, 주차된 남의 차를 들이받고 뭔가 파편이 흩어지지만 않으면 그냥 도망가도 처벌 안 받는다, 이게 대법원 판결이거든요. 그럼 남의 차 들이받고 보는 사람 없으면 다 도망가죠. 어차피 처벌은 안 받고, 나중에 내가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그때 보험처리 해주면 되니까요. 따라서 지금의 현행법은 남이 안 보면 그냥 도망가도 된다, 도망가라 이렇게 조장시키는 아주 이상한 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기자: 좀 더 차근차근 설명해주시죠. 만약에 내가 운전하다가 다른 차를 들이받았다고 가정할 때 지켜야 할 법적 의무나 절차는 어떤 것이죠?

▶ 한문철 변호사:

교통사고를 냈을 때 우선 다친 사람이 있으면 보호조치를 해야 하고요. 그리고 사고 현장에 뭔가 흩어져 있을 때는 정리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흩트려진 채로 놔두고 떠나면 다음에 오는 차들이 거기서 2차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깔끔하게 청소해줘야죠. 사고 나기 이전의 도로 상태로 복구해야 합니다.

▷ 기자: 다친 사람을 구조하는 것과 사고 현장을 정리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 의무가 있군요. 이 중에서 사람을 놔두고 도망가면 어떻게 되죠?

▶ 한문철 변호사:

교통사고가 일어났을 때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했는데도 아무 조치 없이 도망갔을 때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로 다스립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뺑소니’ 범죄에 해당하죠.이런 범죄는 굉장히 무거운 처벌을 받습니다. 

▷ 기자: 그럼 다친 사람은 없고 차만 망가뜨렸다면요?

▶ 한문철 변호사:

그럴 때는 방금 얘기한 특가법상의 뺑소니는 안 되니까, 도로교통법상의 ‘사고 후 미조치’ 죄목에 해당합니다. 2차 사고 위험성을 그대로 놔둔 채 현장을 떠나버린 경우를 뜻하죠. 이를 사고 후 미조치라고 해서 5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처합니다.

▷ 기자: 주차장 뺑소니는 이 경우에 포함되는 거군요?

▶ 한문철 변호사:

네. 그런데 사고 후 미조치가 되려면 2차 사고의 위험성이 있어야 합니다. 2차 사고의 위험성이라는 것은 사람이 타고 있는 차를 들이받고 도망가면 피해차량이 쫓아가느라 앞차는 도망가고 뒤차는 쫓아가느라고 2차 사고의 위험성이 있고요. 또 사람이 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부딪쳐서 파편이 바닥에 막 흐트러져 있으면 지나가는 다른 차들이 그걸 밟아서 펑크날 수도 있으니 마찬가지로 2차 사고 위험이 있는 것이죠.

▷ 기자: 그럼 문제가 되는 ‘경우의 수’는요?

▶ 한문철 변호사:

바로 이런 거죠. 주차된 차를 들이받아서 많이 망가뜨렸는데 아무 파편도 떨어지지 않았다, 현재 대법원 판결을 보면 그런 경우 처벌하지 않고 있습니다. 2차 사고의 위험성이 없다는 거죠. 즉, 사고 후 미조치 죄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우리나라에 2,000만대 이상의 자동차가 있고, 그 자동차 소유자들은 내 차를 잠깐 세워놨는데 누군가 들이받고 그냥 가버렸을 때 분노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 기자: 유리창이나 전조등 같은 부분이 깨지면 몰라도 차가 망가져도 파편이 없을 가능성은 많잖아요.

▶ 한문철 변호사:

그렇죠. CCTV를 통해서 범인을 간신히 찾았어도, 경찰로부터 “처벌하지 못합니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의 그 실망감,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죠.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업무상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지나가다 남의 차를 툭 건드려서 사이드미러를 망가뜨리는 것하고, 자동차 운전자가 망가뜨린 것 하곤 엄청난 차이가 있거든요. 내가 조심히 운전하지 못해서 남의 차를 망가뜨리고 그냥 가버렸을 때, 파편이 떨어지지 않았단 이유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우리 국민이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죠. 도로 교통법상의 맹점인 거죠.

▷ 기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한문철 변호사:

법을 개정해야죠. 지금 도로교통법 54조에 명시된 의무 조치는 교통사고 발생 시 피해자 보호조치, 그리고 2차 사고 예방에만 그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대인 대물, 피해보상을 위한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이것까지 집어넣으면 돼요. 그동안 빠졌었던 피해 보상 측면을 보완해야 하죠. 따라서, 20대 국회에서는 이 도로교통법 개정이 시급해 보입니다.
(기획·구성: 임태우 기자 / 디자인: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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