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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VR 영화’ 시대 도래, 어떻게 진화할까?

[취재파일] ‘VR 영화’ 시대 도래, 어떻게 진화할까?
▲ 영화 '컨저링 2' 스틸컷

시작에 앞서, 이 기사는 컴퓨터보다는 모바일로 보시길 권합니다. 기사를 읽기 전에 아래 영상 두 개를 먼저 보셔야 하는데, 모바일에서 볼 때 훨씬 편하고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영상은 공포 영화의 귀재 제임스 완 감독의 ‘컨저링2’, 두 번째는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CG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정글북’의 예고편입니다.

이 영상들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로 볼 경우, 상하좌우로 단말기의 각도를 바꾸면 화면이 바뀌면서 숨겨졌던 영상들이 나타납니다. 손가락을 화면 위에 올린 뒤 이리저리 움직여도 됩니다. 컴퓨터로 볼 경우, 화면 왼쪽 위편의 화살표를 누르면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영화 '컨저링 2' VR


▲ 영화 '정글북' VR
  
소개한 영상들은 VR, 즉 가상현실 영상입니다. 전방향을 동시에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로 평면이 아닌 공간 전체를 영상에 담은 것입니다. 작은 공 중심에 있는 카메라가 공 내부의 전면을 동시에 촬영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VR 영상은 모니터가 달린 특수 안경을 쓰고 고개를 돌려서 상하좌우를 보게 됩니다. 소개한 영상들은 안경 없이도 VR 영상을 즐길 수 있게 특별히 만든 것들입니다. 검색해 보면 두 편 외에도 이미 꽤 많은 영화들이 관련 영상들을 VR로 내놓고 있습니다.
 
실제 VR 영상은 아니지만, VR과 흡사한 느낌을 주는 영화들도 있습니다.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하드코어 헨리’가 대표적입니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얼굴이 나오지 않습니다. 특수 제작한 헬멧에 카메라를 달고 주인공의 시점에서 모든 장면을 찍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풀타임 1인칭 시점 촬영’입니다. 그 결과 관객들은 주인공과 똑같은 시점에서 모든 장면을 실감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최근 영화계에 VR 관련 시도들이 쏟아지는 건 VR이 3D, 4D를 능가하는 입체적인 영상과 현장감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예고편 제작 정도지만, 전문가들은 조만간 실제 영화 속에서도 VR 영상을 보게 될 거라고 전망합니다.  
 
물론, 전 장면을 VR로 촬영한 영화가 나올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영화인들이 회의적입니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VR의 가능성 못지않게 한계도 명확한 탓입니다.
 
우선, 제작비가 많이 듭니다. VR로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훨씬 더 많은 카메라가 필요합니다. 촬영 후엔 각각의 카메라에 담긴 평면 영상들을 이어 붙여서 일일이 꿰매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카메라를 많이 사용할수록 해상도는 높아지지만, 바느질 양이 늘어나는 만큼 제작 시간도 늘어납니다.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효율성도 따져 볼 일입니다. 기술적 가능성과 필요성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모든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전 방향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영화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나옵니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장면들을 VR로 만드는 건 비용 낭비일 뿐 아니라 관객들의 몰입감을 오히려 저해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장시간 VR 영상을 보면 관객들은 ‘육체적’ 피로를 느끼기도 합니다. 높은 건물에서 엄청난 속도로 뛰어내리는 장면을 예로 들어 보죠. 이 장면을 VR로 보면, 생생한 영상 덕분에 뇌는 실제로 뛰어내리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몸은 고정된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이때 발생한 뇌와 몸 사이의 불일치가 피로감을 유발합니다. 인간에겐 일관성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심리적인 불편을 느끼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른바 ‘인지 부조화 이론’입니다.
 
▲ 영화 '정글북' 스틸컷

VR 기술은 심지어 스토리와 연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VR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은 관객이 상하좌우를 둘러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마음대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관객에겐 장점이지만 감독 입장에선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영상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스토리 전개를 위해 꼭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있어도 관객이 고개를 돌려서 다른 장면을 본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을까요?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소 헌팅은 또 어떤가요? 석양에 물든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을 찍는다고 예를 들어 보죠. 뽀얀 모래사장과 해안선이 절경인 장소를 어렵게 찾았는데 맞은편에 쓰레기 소각장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일반 영화라면 아름다운 바다만 촬영해서 보여주면 됩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언제든 뒤를 볼 수 있는 VR은 다릅니다. 관객이 고개를 돌려 맞은편을 보는 순간 한껏 고조됐던 감정이 순식간에 가라앉게 될 게 뻔한 일입니다. 아쉬워도 다른 장소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다양한 이유들 때문에 전문가들은 VR이 영화에 도입되더라도 일부 장면에 국한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VR 시대가 오더라도 영화계의 주류는 여전히 2D 일반 영상으로 남을 것이란 뜻입니다. 3D, 4D 기술이 그랬듯이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VR은 최근 영화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가운데 하나입니다. 앞으로 영화 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엄청난 변수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미디어가 곧 메시지(Medium is the Message)”라는 마샬 맥루한의 통찰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기술이 모든 걸 결정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그 속에 담기는 컨텐츠에 영향을 미치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화려한 CG와 3D 기술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슈퍼히어로 영화가 지금처럼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요? 판타지 블록버스터같은 장르는 또 어떤가요?

이처럼,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그 기술이 사용된 특정 영화뿐 아니라 소재와 주제, 제작 방식, 장르의 흥망성쇠에 이르기까지 영화계 전반에 광범위한 변화를 몰고 옵니다. VR에 쏠리는 영화계의 관심은 결국 VR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미칠 파장에 대한 관심입니다. 그 파장이 어떤 모습으로 어디까지 퍼져갈지 자못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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