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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내가 만든 '풀' 어때요?"…'반짝반짝' 아이디어 문구

[월드리포트] "내가 만든 '풀' 어때요?"…'반짝반짝' 아이디어 문구
미술 시간이나 편지 봉투를 붙일 때, 풀이 새어 나와서 곤란했던 기억 한 번 쯤은 있으실 겁니다. 산 지 얼마 안된 경우라면 좀 덜하지만, 중간쯤 쓴 풀은 제대로 세워두지 않으면 노트나 학용품이 엉망이 될 수 있죠. 요즘엔 이른바 '딱풀'로 불리는 고체풀이 대중화되면서 많이 없어지긴 했습니다만…

그제(5월 31일) 발표된 일본의 한 '아이디어 문구 대회' 수상작들을 보면서, "나는 왜 저런 생각을 못 했을까?" 몇번이나 무릎을 쳤습니다. 아래 사진은 일본의 초등학생 사이토 니코(7살) 양이 만든 풀입니다. 주니어 부문 최고상을 받았습니다. 풀이 옆으로 넘어져도, 일종의 '꼭지'가 있어서 '풀 샐 틈 없이' 막아 줍니다.
주니어 부문 대상 수상자 사이토 니코 양(7살)과 '새지 않는 풀' 설계도
니코 양은 미술 시간에 풀을 쓰다가 자꾸 새어 나오는 일이 생기자, 중간에 '꼭지'를 만들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답니다. 가운데 초록색 꼭지를 살짝 돌려주면, 넘어져도 '풀 샐 걱정'이 없습니다. 심사 위원들은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놀라운 발상"이라며 극찬했습니다. 상품화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평갑니다.

올해 총 4,000점이 응모된 '제21회 문방구 아이디어 콘테스트' 수상작들의 면면을 한번 보시죠. 반짝반짝 아이디어가 빛납니다. 먼저 '안심 작은창 봉투'입니다. 일반 부문 우수작입니다.
내용물을 살짝 볼 수 있는 '작은 창'이 있는 봉투, 일반 부문 우수작
편지봉투 등을 뜯을 때 내용물이 손상되는 경우가 가끔 있죠. 안심하고 뜯을 수 있는 봉투라서 '안심 작은창 봉투'입니다. 물론 보안이 필요한 경우는 어렵겠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은 아이디어 연필꽂이입니다.
작은 홈과 고무밴드의 결합, 정리와 이동에 효과적인 연필꽂이
고무밴드로 자유롭게 구역을 나누고, 운반도 간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일반부문 우수작입니다. 책상 위가 항상 어수선한 저로서는 이런 아이디어 상품에 특히 마음이 가네요.

아래 사진의 테잎 정리용 문구도 마찬가집니다. 역시 일반 부문 우수작인 '테잎이 있을 곳'입니다. 사무실이 깔끔해지겠네요.
크기가 다른 플라스틱 관 2개로 테잎과 사무용품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테잎이 있을 곳'
다음은,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바꿀 수 있는 점토 성분 지우개와 케이스입니다. 일반 부문 대상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왜 대상일까 싶은데, 일본의 화과자를 만드는 원리를 응용했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받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 화과자 제조 원리를 활용한 '점토 성분 지우개'와 '모양 틀'
일반인들이 응모한 이런 아이디어 문구가 실제 상품으로 이어진 경우도 많습니다. 3년 전 우수상을 받았던 '분리형 테잎'이 대표적입니다. 테잎 가운데 부분을 뜯어낼 수 있습니다. 봉투를 뜯다가 내용물을 손상하는 경우를 방지하는 아이디어 상품입니다. 2014년 상품화됐고 지금까지 30만 개가 팔렸습니다.  
실제 상품화로 이어진 3년 전 수상작, 분리 가능 테잎입니다. 30만 개가 팔렸습니다.
일본의 문구류 시장 규모는 1조 4,851억 엔, 우리 돈으로 16조 원 규모입니다.(日 서치닷컴 자료) 한국 문구시장 규모는 정확한 자료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약 4조 원 규모로 추정된다는 인용기사는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 시장이 대략 한국의 4배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IT 기술이 발달하고, 디지털화로 종이가 점차 사라지면서 일본 문구 시장도 고전하고 있습니다. 2008년 리먼쇼크 이후 2010년대 초반 몇해는 매출 감소세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5년 동안 평균 0.9% 성장, 미약하지만 다시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 문구 업체들이 디지털 파고를 넘을 수 있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아날로그 문구류'를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작용하는 듯합니다.

몇해전 연수 시절, 둘째 딸 초등학교 입학식 때 모든 학생들 책상 위에 똑같은 문구류가 놓여져 있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꼭 저래야 하느냐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만…"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꼭 그래 주시겠습니까?"라고 강하게 부탁하는 듯했던 표정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 학교는 물론 어지간한 회사에서도 이런 아날로그 문구류 선호 문화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기본이 되고, 여기에다 앞서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지속적으로 더해지면서 일본 문구 시장의 힘을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패션 문구, 아이디어 문구 시장이 1,000억 원대로 성장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아이디어와 품질이 뛰어나다면, 특정 국가의 테두리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게 '문구'일 겁니다. 기회가 커지는 만큼 경쟁도 심해지겠지요. 한국의 문구류도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의 역사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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