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맨부커상'을 받으리라고 예상하셨나요?
(한강) 아뇨, 수상할 거라는 생각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갔었어요. 그런데 상을 받고 나서 많이 기뻐해 주시고 고맙다고 해주셔서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헤아려보려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지 일주일이 지나갔어요.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기자) 작가로서 '상'이라는 것은?
(한강) 저는 개인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고, '오늘만큼 기쁜 날이 있느냐'라고 시상식날 누가 물었는데, 당연히 기쁨이란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글을 쓸 때 저는 독자도 생각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내가 이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지의 의문과 완성할 거라는 바람 사이에서 흔들리다가 완성되면, '어떻게 됐지? 어떻게 되긴 됐네'라고 생각하죠. 글을 쓰는 입장에서, 상이라든지 그 다음 일을 생각할 여력은 부족한 것 같아요.
(한강) 채식주의자는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를 우리가 견딜 수, 껴안을 수 있는가에서 끝나는 소설이에요. 제가 그 소설을 완성한 게 벌써 11년 전, 책을 출간한 건 9년 전이에요. 저는 그 소설에서 많이 걸어 나왔죠.
(기자) 소설을 쓸 때, 외국어로 번역될 걸 염두에 뒀나요?
(한강) 아뇨, 번역자와 편집자를 무작정 신뢰할 수밖에 없었죠. 번역가의 메일 질문에 제가 답을 하는 식으로 여러 번 주고 받았죠. 한 줄을 설명하기 위해서, 한 페이지의 글을 써야 할 때도 있었어요.
(기자) 영문판 채식주의자에 대한 본인의 느낌은?
(한강) 번역본을 받았을 때 제가 '소년이 온다'를 쓰고 있던 시점이었어요. 소설에서 '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목소리와 그 질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데보라 씨의 번역은 그런 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 했어요. 채식주의자 1장에 영혜가 말하는 부분에서, 악몽을 이탤릭체로 독백하는 부분이 있어요. 정확하게 소설 속의 제 감정, 톤을 그대로 번역했다고 느꼈어요. 신뢰를 가지게 됐죠. 번역이 원작에 충실하다는 기준이 감정과 톤의 전달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강) 저는 한국문학 속에서 자라난 사람이에요. 계속해서 한국 작가들과 시인들이 쓴 작품들을 읽고, 번역본을 읽고 자랐기 때문에, 한국 문학작품에 커다란 애정도 있고, 빚도 있고. 많이 읽혀질 수 있고 그럴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좋은 번역가도 나타나고 있고, 외국 편집자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미술이나 회화에서도 글쓰기의 영감을 받나요?
(한강) 미술은 제게 중요해요. 제가 어릴 때 같이 살던 막내 고모가 미대를 다녔죠. 저더러 항상 모델을 서게 하고, 그 방에는 항상 그림 도구가 가득했어요. 친근한 느낌을 가지고 성장해서 미술 작품 보는 걸 좋아해요. 미술 작품을 바라볼 때 제가 갖게 되는 상태가 있는데, 거기 머물러 있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워낙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죠.
(한강) 제가 쓰고 있는 작업도 얼른 돌아가서 하고 싶고,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글을 써서 책의 형태로 여러분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제 방에 숨어서 글을 쓰고 싶어요.
(기자)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한강) 이 소설은 조금 불편한 소설일 수 있는 작품이어서, 질문으로서 읽어주셨으면 해요. 11년 전 제가 던졌던 질문으로부터 나아가고 있고. 나아가고 싶다고 독자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희망 사항이 있다면, 그 소설만 읽지 마시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동료 선후배 작가들이 아주 많거든요. 묵묵히 자신의 글을 쓰시는 분들이 많은데, 바라건대 그분들의 작품도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 기획·구성 : 김민영 / 디자인 : 임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