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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플러스] 운 좋아서 살았다?…여성들 집단 애도의 본질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한 20대 여성이 피살된 이후 뜨거운 추모와 애도 열기가 이어졌습니다. 그야말로 불붙듯이 급속하게 여럿의 울음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죠.

경찰은 범행 동기에 대해 여성혐오 쪽보다는 조현증, 즉 정신분열증으로 파악했는데요, 범행 동기가 무엇으로 파악됐든, 이 같은 집단 애도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요? 류란 기자의 취재파일입니다.

[이승연/인천 남구 : 일단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같은 20대 여성이니까, 사실 남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꼭 와 봐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여자 중에 아무나를 골라서 대상으로 한 범죄니까….]

[이은선/서울 서초구 : 누구나 특히 딸 가진 부모들은 정말 마음을 못 놓고, 밤길에 이렇게 조심을 아주 각별히 시키고 있어요. 딸 뿐 아니라 우리 여자들 다….]

[김영은/충남 천안시 : 여성 혐오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성 혐오가 없는 게 아니라 사실 있고, 점점 심각해지고 있단 걸 항상 주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잠깐 화장실에 들른 것조차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다는 깨달음은 나는 조심해서 그런 위험을 피해 다녀야지라며 피해자를 타자화하거나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공포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추모 물결은 일단 대부분의 여성이라면 피해 여성에게 가질 수밖에 없는 부채 의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피해 여성은 숨지고 나는 살았다, 피해 여성이 아니었다면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미안함이자, 일종의 가책 같은 것 말입니다. 심지어 피해자가 나를 대신해 죽은 것 같다는 죄책감이기도 합니다.

또 무력감도 작용했습니다. 단지 운이 없으면 재수가 없으면 다음 순번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그동안 외면하고 있던 하지만, 분명히 내재돼 있던 어떤 집단적 슬픔이 비로소 한꺼번에 표면에 드러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전제는 이미 각자 저마다의 경험 속에서도 존재해왔던 겁니다. 게다가 이번 일을 계기로 추모는 책임 의식으로도 승화되고 있습니다.

더이상,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사람이 살해당하는 사회를 묵인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강자의 보호 없이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이 울음소리보다 더 크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한 신문사는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추모의 메시지 1천여 개를 모두 기록해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범죄가 여성 혐오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우리 모두에게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목소리들을 최대한 많이 듣고, 감정을 이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류 기자는 강조했습니다. 

▶ [취재파일] 강남역 여성 피살, 집단의 슬픔은 왜 터져나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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