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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에 미끄러지듯"…'세로 홈' 고속도로 주행 위험하다

"고속도로에서 세로 홈이 크게 파인 곳을 지날 때 차가 제멋대로 좌우로 왔다갔다 합니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

한 자동차 동호회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다.

비슷한 경험을 토로하며 동조하는 운전자들의 글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과속도 안 하는데 빙판에서 미끄러지는 느낌입니다.", "이런 현상을 모르고 커브길에서 속도를 냈다면 아마 차가 전복됐을 겁니다." 지난 19일 승용차를 타고 평택∼제천 간 동서고속도로 서충주 나들목(IC)∼금왕꽃동네IC 구간을 달리던 윤모(55) 씨도 십년 감수했다.

차가 통제 불능 상태로 춤을 추듯 좌우로 심하게 요동치는 경험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대형 트럭이 옆을 지날 땐 아찔했다.

모두 콘크리트로 포장된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런 현상은 특정 구간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다.

4천㎞가 넘는 고속도로 총연장 중 콘크리트 도로 비중은 약 60%에 달한다.

콘크리트 도로는 미끄러짐을 막기 위해 일정한 간격으로 홈을 파는 표면 처리를 한다.

타이닝(Tining) 또는 그루빙(Grooving)이라는 공법이다.

타이닝은 굳지 않은 콘크리트 표면을 빗이나 갈퀴 모양의 기계로 긁어 홈을 만들고, 그루빙은 양성이 끝나 딱딱하게 굳은 표면을 깎아낸다.

그루빙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콘크리트 타설 과정에서 홈을 만드는 타이닝 공법이 주로 쓰인다.

국내에서 쓰이는 표면 처리 기법은 대부분 타이닝이다.

타이닝이나 그루빙은 1960년대 미국에서 항공기 이착륙의 안전을 위해 개발됐다.

도로 면에 입체 홈을 파서 타이어의 미끄럼 방지용 패턴 같은 기능을 하도록 한다.

도로 표면에 홈을 새기면 타이어와 노면 사이의 수막 현상을 막아주고 배수성이 좋아져 미끄럼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결빙도 억제하고 소음도 줄여준다.

이렇게 표면 처리를 하면 배수 효과는 최대 10배 증가하고, 소음도 0.86∼1.3㏈가량 감소한다는 게 한국도로공사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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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초반 콘크리트 도로가 국내에 처음 도입됐을 때는 차량 주행 방향과 직각을 이루는 가로 방향 타이닝, 수평을 이루는 세로 방향 타이닝 2가지 모두 쓰였다.

2008년 이후에는 콘크리트 도로의 최대 약점인 소음 감소 효과가 더 뛰어난 세로 방향 타이닝으로 통일됐다.

미끄럼 방지가 목적인 타이닝이 오히려 좌우 쏠림(원더링·wandering) 현상을 부르고, 심지어 사고를 초래할 수도 있는 역설은 무엇 때문일까.

타이닝 선형과 홈의 간격, 깊이가 일정하지 않은 경우 쏠림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한국기술교육대 건축공학부 김남호 교수는 "홈 파기 시공에서는 수직, 수평을 잘 맞추고 평행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했다.

2010년 국정감사에서도 타이닝 시공 불량에 따른 차량 쏠림 현상이 지적됐다.

최규성 의원(당시 민주당)이 도로공사에 의뢰해 동서고속도로 남안성IC 인근 양방향 5㎞ 구간을 조사한 결과, 차량 쏠림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도로공사의 타이닝 홈 간격 시공 기준은 18∼25㎜여서 구간마다 들쭉날쭉했다.

일반적으로 세로 방향 타이닝 시공 기준은 3㎜(폭)x3㎜(깊이)x18㎜(간격)로 알려져 있다.

이후 도로공사는 홈 간격을 18∼19㎜로 규격화했지만 차량 쏠림 현상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건설된 고속도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개통된 동서고속도로 동충주IC∼제천분기점(JC) 구간에서도 차량 쏠림 현상이 일어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도로공사는 최근 정밀 조사에 들어갔다.

다양한 패턴의 기능성 타이어가 쏟아지면서 차량 쏠림 현상이 잦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타이어 접지면의 돌출 문양이 도로 홈과 맞물리면서 미끄러짐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타이어 크기와 종류, 도로 구간에 따라 차량 쏠림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

차량 속도가 빠를수록 미끄러짐 정도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타이닝에 따른 차량 쏠림 현상을 없애려면 시공 시 홈 간격을 최대한 좁히고 일정한 규격으로 시공하는 등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자동차와 타이어 제조업체 역시 선진국처럼 생산 단계부터 도로 상태를 고려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로교통연구원 관계자는 "원칙을 지켜 타이닝을 시공하고, 과속을 하지 않는 것이 사고를 막는 기본 원칙"이라며 "도로 기반 시설의 건설·관리를 맡는 기관과 차와 타이어를 생산하는 업체가 적극적으로 소통해 제품 생산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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