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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대한체육회

[취재파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대한체육회
대한체육회는 5월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SBS의 23일 취재파일( ▶ [취재파일][단독] 대한체육회, 박태환 막기 위해 정관 급조했나?) 기사 내용을 하루만에 반박하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이 보도자료에서 대한체육회 정관의 제정-개정 경과 및 사실관계를 길게 설명했는데 그 요지는 간단합니다.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정관 개정안에 반영했다는 대한체육회 주장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IOC가 대한체육회에 발송한 이메일 전문이 필요합니다. IOC가 발송한 이메일을 전문을 보게 되면 누가, 언제, 어떤 의도로, 어떤 내용의 권고안을 제시했는지를 검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SBS는 IOC 이메일의 전문 공개를 요구했지만 대한체육회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이렇게 하는 대신에 IOC 이메일의 일부 내용만을 발췌해 보도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 보고서는 누가, 언제, 어떤 의도로 메일을 발송했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이번 사태의 모든 문제는 새로 신설된 대한체육회 정관 제65조에 있습니다. 제65조는 모두 3항으로 이뤄져 있는데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이 제2항입니다. 대한체육회가 바로 이 제65조 2항을 근거로 박태환의 항소가 스포츠중재판소(CAS)가 심리할 사안 자체가 아예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대한체육회 정관 제65조 2항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② 제1항에 따른 관할기구에 의한 최종적인 결정에 대해 항소하려는 경우에는 스포츠 관련 중재규정에 따라 분쟁을 명백하게 해결할 수 있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만 항소할 수 있다. 다만, 항소는 항소 결정을 통지받은 날로부터 21일 이내에 하여야 한다.

(2) Any final decision made by the competent body under clause (1) above, may be submitted exclusively by way of appeal to the 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 (CAS) in Lausanne, Switzerland, which will resolve the dispute definitively in accordance with the Code of Sports Related Arbitration. The time-limit for appeal is twenty-one days (21 days) after the reception of the decision concerning the appeal.

그런데 스포츠중재재판소(CAS) 홈페이지에는 이와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세계 각국 체육회나 체육단체가 스포츠중재 관련 조항을 정관에 포함할 때 사용하라는 일종의 '표준 문장 양식'입니다.

2.1. Arbitration clause to be inserted within the statutes of a sports federation, association or other sports body

" Any decision made by ... [insert the name of the disciplinary tribunal or similar court of the sports federation, association or sports body which constitutes the highest internal tribunal] may be submitted exclusively by way of appeal to the 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 in Lausanne, Switzerland, which will resolve the dispute definitively in accordance with the Code of sports related arbitration. The time limit for appeal is twenty-one days after the reception of the decision concerning the appeal."

대한체육회 정관과 비교할 때 다른 내용은 사실상 같습니다. 하나 특이한 것은 대한체육회 정관에는 '최종적인 결정'(Any final decision)이라고 돼 있지만 정작 스포츠중재재판소 양식에는 그냥 '결정'(Any decision)으로 돼 있는 점입니다. '최종적인 결정'과 '결정', 이  두 가지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큽니다.

대한체육회는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 여부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스포츠중재재판소의 항소 대상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종적인 결정'이란 사실상 대한체육회 최고 기관인 이사회의 결정을 의미합니다. 즉 이사회가 아직 박태환 건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사회는 오는 6월 16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만약에 정관에 그냥 '결정'이라고 돼 있으면 대한체육회는 이런 주장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공정위원회가 지난 4월 7일 "특정인, 즉 박태환을 위한 규정 개정은 없다"고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즉 대한체육회 정관에 '최종적인 결정'이란 문구가 없었다면 스포츠중재재판소는 곧바로 박태환 항소 사건의 심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과거 판례에 따라 박태환이 승소할 가능성이 90%가 넘습니다. 따라서 '최종적인 결정'이란 문구는 대한체육회가 박태환을 주저앉히고 시간을 끄는 데 큰 무기로 활용되고 있는 셈입니다.

만약 대한체육회의 주장대로 IOC의 권고안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IOC가  '최종적인 결정'(Any final decision)이란 말을 직접 작성했다는 뜻입니다. 다른 표현은 스포츠중재재판소 양식을 복사하다시피 그대로 인용한 반면 하필 가장 핵심적인 단어인 '결정' (Any decision) 하나만은 왜 '최종적인 결정'(Any final decision)이라고 변경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설사 대한체육회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도 해도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IOC가 제 65조의 신설을 권고해도 정관 제정 작업의 주체인 대한체육회가 채택하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IOC는 지난 2월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을 오는 8월 리우올림픽 이후로 연기할 것을 요구했지만 대한체육회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전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65조2항만은 무엇이 그리 급했던지 민첩하게 이사회(3월25일)와 창립총회(4월5일)을 거치며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정관에 그대로 반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조항을 근거로 지난 5월 17일 "대한체육회의 최종 결정이 없었기 때문에 박태환의 항소는 중재 사안 자체가 안 된다"는 답변을 CAS에 보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제65조 2항이 포함된 현 정관이 분명히 4월 5일에 개정됐다는 점입니다. 박태환은 이보다 한 달이나 앞선 3월 3일에 자격정지 징계가 풀렸습니다. 나중에 만든 규정을 근거로 이미 징계가 끝난 선수의 발목을 잡는 것은 '소급 적용'이란 법률적 차원을 떠나 상식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을 가로막고 있는 현 국가대표 선발규정(2014년 7월 제정)은 명백한 <올림픽 헌장> 위반입니다. (5월24일 취재파일 '박태환 관련 규정은 올림픽 헌장 위반 참조)  <올림픽 헌장>이 대한체육회 정관과 다를 경우 <올림픽 헌장>이 우선한다고 현재 대한체육회 정관에도 명시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한체육회는 '나몰라'하면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대한체육회의 주장대로 제65조 2항을 IOC의 요구대로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정관에 반영한 게 사실이라면, 이는 자신한테 유리한 것만 받아들이고 불리한 것에는 눈을 감아버리는 행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박태환의 항소를 제압할 무기인 제65조 2항은 10일 만에 일사천리로 정관을 바꾸면서까지 집어넣은 반면, 최고 권위를 갖는 <올림픽 헌장>은 2년 가까이 계속 위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탄고토'(甘呑苦吐)란 말이 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입니다. 1년에 국민 혈세 4천억 원을 사용하는 공공기관이 이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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