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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플러스] "빨리 잠든다" 음료 불티…노동 중독이 만든 '씁쓸한 병증'

요즘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잠을 깊게 잘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캔 음료가 없어서 못 살 정도로 인기입니다.

유명 카페인 각성 음료를 대놓고 패러디한 음료로 레드불, 즉 뿔 난 황소라는 뜻과 정반대로 슬로우 카우, 즉 느린 암소라고 이름 지은 음료인데요, 효능은 차치하고라도 이 음료의 품귀 현상 속에서 우리 사회의 씁쓸한 병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최우철 기자의 취재파일 보시죠.

겉면을 보시면 두 마리 황소가 정면으로 뿔 치기를 하는 그림과 대조적으로 암소 한 마리가 아예 벌러덩 누워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지난 2008년 캐나다에서 처음 출시된 뒤 어느 눈 밝은 편의점 상품 기획자가 우리나라에 들여와 재작년 10월부터 매장에서 판매됐는데요, 올해 4월까지만 해도 이 음료의 매출은 레드불과 비교도 안 됐습니다.

거의 3대 97 수준이었는데, 2주 만에 이 비율이 18대 82로 껑충 뛰었고 머지않아 국내 재고가 바닥나 버렸습니다.

취재진 역시 제품을 구할 수가 없어서 편의점 본사에 보관된 샘플을 빌려서 촬영해야 했습니다. 원인은 SNS를 통한 소문의 확산이었습니다.

음료를 접한 소비자들이 하나둘 실제로 덕분에 숙면을 취했다는 글을 퍼트리면서 어디서 살 수 있냐는 질문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음료를 입수했다는 낚시 글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빛깔마저 영롱하다는 설명과 함께 마치 캔을 잡고 있는 것처럼 빈손으로 시늉하는 사진을 올린 겁니다. 그러나 이 음료의 실체는 탄산음료에 불과합니다.

다만, 긴장을 완화시키는 허브차 성분이 원재료로 쓰였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테아닌이란 물질이 안정감을 주는 물질이라 의학적으로도 특유의 피로가 풀리는 효과가 가능하긴 한 겁니다.

심리적인 기대와 일종의 자기 확신 현상, 즉 플라시보 효과도 한몫했겠죠. 그렇지만 이 테아닌은 사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녹차와 홍차의 주성분입니다. 슬로우 카우의 원조는 이미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차류의 매출을 살펴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모두 전년대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깡통에 든 음료는 갑자기 동난 반면, 뜨거운 물로 천천히 우려내는 과정이 필요한 제대로 느린 차는 안정 작용이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찾는 사람이 줄어든 겁니다.

휴식을 하더라도 빨리, 신속히 휴식을 얻으려 하는 이런 현실을 두고 최 기자는 우리들의 노동 중독이 만들어낸 안타까운 형용모순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쉴 수 있는 시간이 늘 한정돼 있고 부족하다 보니 더 효과적으로 쉬고 더 밀도 있게 자야 한다는 강박이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한 카드회사의 광고 카피가 많은 이들의 웃기고도 슬픈 공감을 자아낸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 텐데요, 꿀잠을 자는 방법은 특별할 게 없습니다.

[심경원/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 깊은 잠을 방해하는 알코올부터 시작해서 카페인이라든지 여러 가지 스트레스나 신경성 원인, 환경적인 요인들이 있는데요, 이런 요인들을 먼저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런 요인들이 없다면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수면을 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 [취재파일] 만성 휴식 부족이 낳은 ‘쾌속 릴랙스’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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