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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터뷰+] "조수요? 남 좋은 일만 하는 거죠!"…꿈 접는 미술학도

[人터뷰+] "조수요? 남 좋은 일만 하는 거죠!"…꿈 접는 미술학도
미술계에서 조수는 '어시스턴트'를 줄여서 흔히 '어시'라고 불립니다. 많은 국내 미술 작가들은 조수가 작업한 작품을 수정 보완한 뒤 자신의 작품으로 내놓기도 합니다. 최근 대작 논란에 휩싸인 조영남 씨는 조수가 그리는 건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말하면서,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조 씨 말대로 관행일 뿐이어서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SBS 취재진은 실제로 학생 시절에 '어시'를 해봤던 화가들을 만나서 경험담을 들어봤습니다. 이들은 관행이다 보니 현실적으로 개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부당하고 불합리했던 점들이 많았다고 지적했습니다. <편집자 주>


(기자) 어시스턴트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요?

(화가 A씨) 어떤 프로젝트에서 어시를 뽑을 때가 있고요. 아니면, 교수님의 회화 작업을 돕는다거나 모델을 한다거나 뭐, 그런 식의 어시스턴트 역할도 있죠. 저 같은 경우 단순 칠을 했었고요.

(기자) 어시스턴트한테 어떤 지시를 하죠?

(화가 A씨) 작가가 이렇게 해라, 시안을 주면 그에 맞춰서 그림을 그려줘요. 가령, 작가가 블루 느낌...콘크리트 느낌인데, 뭐 이런 식으로 완성해달라고 전화 통화로 얘기해주면 그대로 하는 식이죠. 어시는 학부생이 하기도 하고, 석사 과정이 하기도 해요.

(기자) 돈은 주나요?

(화가 A씨) 음, 안 받을 때도 있었고요. 적당한 수준도 있었고 되게 다양해요. 짧은 프로젝트면 어느 정도 수당이 나오는데, 작업 기간이 긴 회화의 어시를 했던 친구 경험으로는 시급으로 따져서 6천 원씩 계산해서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기자) 돈으로 따지면 일반 아르바이트보다 나은 게 없어 보이는데, 왜 하는 거죠?

(화가 A씨) 일단 학교 안의 미술계라는 게 있고, 그 안에서 작가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어찌 됐건 학연과 지연, 교수님들과 연결돼야 하거든요. 페이가 적더라도,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인맥을 쌓다 보면 전시를 연결해주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계속 어시를 하게 되죠.

(기자) 그럼 어느 정도는 원해서 한다?

(화가 A씨) 하지만, 자발적으로는 없을 거예요. 제가 봤을 때는.

(기자) 왜요?

(화가 A씨) 페이가 괜찮다거나, 어시하느라 시간을 엄청나게 투자하는 게 아니라면, 또 자기 작업을 병행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자발적으로 얼마든지 하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다 보니 자발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기자) 미래를 위해 일종의 희생을 하는 거군요.

(화가 A씨) 네, 현실이 그래요. 어떤 학교 같은 경우는 시급 6천 원이어도 그런 어시 생활을 해야 석사과정을 밟고, 조교도 할 수 있죠. 많은 일 중에서 교수님들과 연관돼 있다면, 그처럼 다른 것들이 더 비중이 크다고 볼 수 있겠죠. 

(기자) 그런 이유 때문에 관행이 된 거군요.

(화가 A씨) 관행.. 관행? 아, 모르겠어요. 그냥 관행이라기보다 너무 일반적이라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돌이켜보면 페이 책정이 애매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림 그리는 일이라는 게 굉장히 저평가돼 있어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 그렇게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늘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고요. 

▼ 미술계에 몸담은 다른 화가 B씨도 어시가 꿈을 저당 잡힌 '열정 페이'에 다름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시가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미술계 현실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합니다.많은 어시들이 작품 활동에 함께 참여해도 오로지 작가 한 명의 이름만 남는 현실이라는 것이죠.

(기자) 어시스턴트 생활을 하셨나요?

(화가 B씨) 네, 제가 다닌 미술대학의 학생 50퍼센트 정도가 어시스턴트를 했어요. 저도 그런 어시를 한 3개월 했었고. 

(기자) 어시로 어떤 작품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나요?

(화가 B씨) 누가 어시로 참여했었는지 밝히는 작가는 국내에선 정○○ 작가밖에 없어요. 그분의 작품을 보면 제일 마지막에 스태프 이름이 올라가거든요. 제가 미술관을 많이 다녀 봤지만, 우리나라 작가 중에 이 어시스턴스들과 함께 했다, 이 스태프들과 제가 같이 활동했다고 밝힌 분은 그분 외에 못 봤어요.

(기자) 왜 작가들은 어시스턴트의 존재를 밝히지 않을까요?

(화가 B씨) 대부분 학교에서 그림을 그릴 때 생각(thinking) 타임, 작업(working) 타임으로 구분한 뒤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야 작품도 좋아진다고 가르쳐요. 그러면서 생각 타임은 오로지 교수 자신의 것, 작업 타임은 어시스턴트의 것이란 인식이 생기죠. 생각 타임이 우선시되고, 아이디어를 낸 작가가 작품을 만들었고 보게 되죠. 
(기자) 실제 미술 작품을 만들어보면 어떻습니까? 

(화가 B씨) 가령, 조각난 도자기를 붙인다고 보면 만드는 사람이 조형 감각을 발휘해야 합니다. 마냥 생각 타임만 중요한 작업은 아니죠. 선생님이 낸 아이디어는 작업 타임을 통해서 그 만들어지는 조형은 어시스턴트들이 만든 건데, 그 조형조차 마치 다 자신의 것인 듯 얘기를 할 때는 한 4년씩 일했던 사람들은 아, 부질없다. 남 좋은 일 하는 거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거죠. 

(기자) 어시스턴트로 일했던 학생들이 회의감을 느끼겠군요.

(화가 B씨) 네, 그런 고민을 많이 해서 졸업을 하게 될 때 학생들 대부분이 어시를 그만두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 작품을 해야 되는데 남의 작품을 위해서 고생하나. 사실 그게 굉장한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인맥도 아닌데. 그걸 위해서 이 정도의 시간을 들여야 하는가. 그런 고민 때문에 회의를 느껴서 졸업하게 되면 많이들 그만두게 되고요.

(기자) 아르바이트랑 다를 바가 없네요?
 
(화가 B씨) 미술계에서는 어시를 그냥 알바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저는 분명히 어시스턴트 경력이 전문 영역의 일을 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이력서에 쓴 건데, 주변에서는 '이거 알바잖아'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기자) 적은 돈을 받고 그 작가를 위해서 일한 건데도, 경력으로 도움되지 않는군요?

(화가 B씨) 네, 미술계에서도 본인이 작가 경력을 나열할 때 어시스턴트 경력을 쓰진 않거든요. 그런 것도 좀 인식이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어시스턴트 활동을 한 것도 분명히 
그 작가와 같은, 그 당시에는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그림을 보고 같은 꿈을 꾼 건데 그거에 대한 경력으로 인정이 안 된다는 게 작가 경력에서는 좀 아쉬운 부분인 것 같아요. 

(기자) 어시스턴트 관행이 좀 개선될 여지가 있을까요?

(화가 B씨) 어시스턴트라는 게 없어지진 않을 것 같아요. 왜냐면 요즘 작가들은 대형 작업을 많이 하잖아요. 유명작품으로 알려진 '러버덕', 이걸 혼자 어떻게 만들겠어요? 다만, 어시를 관례라고,관행이라고 말함으로써 사람들 인식에 그게 당연한 거라고 비치는 현실이 슬플 따름이죠.

취재 : 조지현 기자 / 기획·구성 : 임태우 기자 / 그래픽 디자인 :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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