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21세기 술탄 에르도안 ② - 오늘의 동지는 내일의 적

에르도안은 1954년 터키의 흑해 연안에서 해경의 아들도 태어났습니다. 13살 때 가족과 함께 이스탄불로 옮겨왔는데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청소년 시절에 거리에서 레몬에이드와 참깨빵을 팔아 학비를 벌었다고 합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축구선수로도 활동했습니다. 꽤 잘 하는 편이었나 봅니다. 터키 프로팀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꿈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가난하지만 재능 많은 한 젊은이의 이야깁니다. 언뜻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한 젊은이가 어떻게 광대한 터키의 1인자가 됐는지, 또 왜 그렇게 독재자라는 말까지 듣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대학시절 세미 프로축구선수로 활동했던 에르도안
● '뼛속까지 이슬람'

터키는 이슬람 제국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중심집니다. 하지만, 근대화되면서 정치와 종교가 철저하게 분리됐습니다. 터키의 근대화를 이끈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나튀르크'의 정치이념이기도 합니다. 이후 터키는 줄곧 이슬람을 국교를 삼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종교를 완전히 배척하는 세속주의를 추구해왔습니다. 왜? 정교일치의 이슬람 왕국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웠으니까요.

이슬람이 다시 정치에 스며들 경우 공화국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래서, 터키는 늘 정치색이 이슬람화 될 때면 늘 군의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4번이나 일어났습니다. 그만큼 터키는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군대의 힘이 막강했습니다.

에르도안은 대학시절 에르바칸이라는 이슬람 운동가를 만납니다. 에르바칸은 이슬람주의자로서는처음으로 터키 총리가 된 인물입니다. 에르바칸을 정신적 스승으로 삼으면서 에르도안은 뼈속까지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됩니다.

세속주의를 표방한 터키에서 이슬람주의를 외치는 에르도안의 젊은 시절은 험난하기만 했습니다. 에르도안은 1999년엔 이슬람을 찬양하는 시를 읊었다는 이유로 4개월간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에르도안의 이슬람주의에 대한 애착은 지나칠 정돕니다. 젊은 시절 교통국에서 근무할 때 상사가 콧수염을 자르라고 하자 아예 사표를 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터키에서 공직의 여성은 히잡을 쓸 수 없게 돼 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의 부인은 공식석상에서도 언제나 히잡을 쓰고 다닙니다.

에르도안의 정치적 기반이 이슬람 원리주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아나톨리아' 지역이라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아나톨리아의 일부 지지자들은 에르도안을 대놓고 '술탄'이라고 칭송하고 있습니다.

에르도안은 학교 교과목에 투르크 제국 시절 사용되다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아나튀르크의 개혁으로 금지된 '오스만어'를 부활시키고, 코란을 암송하는 학생들에게는 특혜를 제공하는 조치를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 경제 지도자로 성공

2001년 터키에 경제 위기까지 겹치면서 세속주의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높아졌습니다. 이때 에르도안이 이슬람주의 정당인 정의개발당 AKP를 만듭니다. 그리고 2002년 이슬람 보수주의자의 열렬한 지지 속에 AKP는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고 제 1당에 오릅니다. 에르도안은 총리에 오릅니다.

총리에 오른 에르도안은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공을 들입니다. 침체에 빠졌던 터키경제는 2000년대 연 평균 7%의 고속 성장을 거듭합니다. 에르도안이 집권하면서 터키는 10년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64%, 1인당 GDP는 43%나 증가하는 경제 기적도 이뤘습니다.

사실 2010년까지 에르도안은 이슬람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군의 눈치를 보는 것도 있었겠지만) 국민적 화합도 이끌어냈습니다. 경제 지도자로서 명성을 높였고, 그만큼 국민적 지지도 뒤따랐습니다. 에르도안은 아타튀르크 이후 가장 성공한 지도자로 평가 받으며 이후 2번의 총선에서도 승리를 거두며 12년간 총리를 지냅니다.

힘을 얻은 에르도안은 더 이상 군부의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2010년 '철퇴사건'으로 알려진 군부의 쿠데타 시도를 적발해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입니다. 이슬람 사원에 폭탄을 터트린 뒤 사이가 좋지 않은 그리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며 정국 안정을 위해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다는 시나리오였습니다. 당시에 쿠데타 음모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관련자 300명이 수감됐습니다.

군 장성가운데 20%가 옷을 벗었습니다. 반대파를 완전히 몰아내면서 군부까지 에르도안이 손에 쥐게 된 겁니다. 정말 쿠데타 음모가 있었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난 1월 터키 항소법원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275명 전원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1심 판결을 기각했습니다. 수감자 전원을 석방 조치했습니다.

● 동지에서 숙적으로

에르도안은 세속주의의 대항마로 인식됐습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에르도안의 지지기반이 됐습니다. 가장 큰 힘이 된 동지가 '파쿨라 귤렌'이라는 온건 이슬람 사상가입니다. 누군가 하는 분도 있을텐데 2008년 미국의 '포린폴리시'지가 `세계 최고 100대 지성' 온라인 투표을 시행했는데 여기서 노엄 촘스키, 움베르토 에코, 리처드 도킨스 같은 세계적인 학자들을 모두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인물입니다.

(물론 이슬람 네티즌의 몰표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귤렌은 '히즈메트'(SERVICE)라는 이슬람 교육과 사회 운동을 이끌고 있습니다. 히즈메트는 아프리카에서 미국까지 세계 140개국에 1,000개의 학교를 가지고 있는 단체입니다. 저명한 학자, 언론인, 정치인, 군과 검경을 총망라하는 귤렌 추종세력은 '제마트'(공동체)로 불리며 이슬람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동지에서 숙적으로 갈라선 귤렌(좌)과 에르도안(우)
세속주의에 대항하자는 큰 줄기에서 에르도안과 귤렌은 뜻이 맞았습니다. (귤렌은 세속주의 정권에 쫓겨 1999년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습니다. 세속주의가 정말 싫겠죠?) 귤렌이 밀어주면 에르도안은 실행했습니다. 둘은 2010년까지 돈독한 동맹을 유지합니다. 특히 검찰과 경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귤렌은 에르도안이 군부를 숙청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권력이라는 게 한번 맛들이면 중독되기 쉽고, 또 한번 가지면 남 주기도 싫은 것 이듯이 찰떡같던 에르도안과 귤렌의 밀월관계에도 균열이 생깁니다. 군부를 숙청한 2010년 에르도안이 귤렌의 측근을 정보기관장에 임명하지 않으면서 틀어집니다.

귤렌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일까요? 다음해 에르도안은 귤렌측이 운영하는 입시학원을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결국 틀어질 대로 틀어진 두 사람의 관계를 2013년에 파국을 맞습니다.

● '부정축재' VS '중상모략' 승자는?

2013년 말 국책은행장의 집에서 40억 원이 넘는 현금다발이 발견됩니다. 검찰은 뇌물수수 혐의로 현직 장관 3명의 아들을 포함해 에르도안의 측근 24명을 긴급 체포했습니다. 이어서 에르도안과 그의 아들이 뇌물을 받을 지 말지와 비자금을 어떻게 숨길 것인지 의논하는 전화통화 감청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됩니다.

터키가 사상 최악의 비리스캔들로 발칵 뒤집힙니다. 비자금 규모가 우리 돈 1조 원대로 터키 검찰은 추정했습니다. 검찰이 조사에 나섰고 터키 전역에서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궁지에 몰린 에르도안은 오히려 강공을 선택했습니다. 음성파일이 누군가가 악의로 편집한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배후로 페툴라 귤렌을 지목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정부내 범죄집단이 '외부세력'과 결탁해 체제 전복을 노리는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했습니다. 검경의 수사를 귤렌 세력이 벌이는 "더러운 작전"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귤렌의 '히즈메트'는 검찰과 경찰에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에르도안은 검경의 귤렌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사법부 최고기관인 판검사 최고위원회를 이용했습니다. 비리 혐의를 수사중인 검찰 수 십 명과 경찰 천여 명을 국가전복과 불법도청 혐의로 파면하거나 좌천시켰습니다. 그리고, 통신위원회의 고위 인사도 줄줄이 파면합니다. 자신의 비리 스캔들을 적극적으로 보도한 '자만 신문사'와 '사만욜류 TV'의 기자들을 무더기로 체포합니다. 두 언론사는 귤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알려진 곳입니다.

또, 히즈메드 운동과 관련된 기업들은 세무 조사를 단행했습니다. 귤렌과 연관됐다고 의심받는 은행은 지점 80개를 아예 폐쇄해버렸습니다. 귤렌은 1급 지명수배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려버렸습니다. 유언비어를 막기 위해서라며 트위터까지 차단합니다. 그야말로 귤렌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인 겁니다. 터키 내부는 물론 국제사회의 비난이 이어졌지만 에르도안은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공격을 받으면 오히려 내부 결속력은 한결 단단해집니다. 비리스캔들은 이슬람 보수주의자들의 에르도안에 대한 지지를 한층 강화시키는 반전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에르도안은 지지자들과 반대자들간의 반목과 갈등을 이용해 표를 긁어모았습니다. 이른바 '편가르기' 수법을 깨우친 거죠.

군도 장악하고 검경에서도 반대파를 몰아낸 에르도안의 권력에 도전할 상대는 없었습니다. 단 하나문제가 있다면 스스로 만든 당규에 발목이 잡힌 겁니다. 정의개발당 AKP의 당규상 총리는 4번 연임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4년씩 3번, 12년간 직업이 '총리'인 인생을 더는 이어갈 수 없게 된 거죠.

이러자 에르도안은 새로운 자리에 도전합니다. 바로 대통령입니다. 선거운동기간 에르도안은 귤렌 세력 등 반대파 제거에 열을 올렸습니다. 쿠르드반군과 전쟁을 재개하며 이슬람 보수주의와 터키 극우주의자를 결집시켰습니다. 그리고, 2014년 8월 에르도안은 터키에서 사상 첫 직선제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과반을 넘는 득표로 당선됩니다.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직함을 바꾸며 장기 집권을 이어갑니다.

● 전화위복의 달인, 운일까? 술수일까?

에르도안이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인기를 유지했던 비결은 바로 '경제 부흥'이었습니다. 하지만, 2012년 들어 몰아닥친 유럽 경제 위기를 터키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경기 둔화가 가속화 되고 달러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리라화 가치는 속절없이 추락했습니다.

그 결과는 2015년 6월 총선에서 드러났습니다. 정의개발당 AKP가 사상 처음 과반을 넘지 못했습니다. 쿠르드정당인 인민민주당 HDP의 약진이 두드러졌습니다. 야당들은 독재정당과 다름없던 정의개발당과 연정을 거부했습니다. 정의개발당은 내각조차 꾸미지 못할 처지가 됐습니다.

정의개발당이 오도가도 못 하게 되자 에르도안은 조기총선을 결정합니다. 한번 놓친 열차를 다시 잡을 수 있을까? 아무도 정의개발당이 다시 과반을 차지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을 때 우연처럼 일이 터집니다.
수루치 희생자
7월 터키 남부 수루치에서 끔직한 자살폭탄 테러가 벌어집니다. 시리아에서 IS에 쫓겨 고난을 받고 있는 쿠르드족을 돕기 위한 자선행사였습니다. 30명이 넘은 젊은이들이 숨졌습니다. 대부분이 쿠르드계열의 터키인들이었습니다.

터키는 IS를 배후로 지목했습니다. 터키는 그동안 시리아내 쿠르드족의 세력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IS 격퇴에 아주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터키내 쿠르드족은 정부가 참사를 방조했다며 비난했습니다. 일부는 무력행동에 나서며 군경을 공격했습니다. 터키는 곧바로 터키내 쿠르드반군인 PKK (쿠르드노동자당)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감행합니다. 양측이 맺은 휴전은 깨졌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0월 수도 앙카라에서 대형 테러가 또 벌어집니다. 이번엔 100명 넘게 숨졌습니다. 쿠르드와 전쟁을 반대하는 집회였습니다. 역시 쿠르드 지지자였습니다.

IS의 연쇄 테러와 쿠르드반군과 교전, 국가의 안보가 위협받을수록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보수주의가 득세합니다. 정의개발당은 공포를 부추겼습니다. 온건 쿠르드정당인 HDP를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했습니다. HDP 관련자를 대거 검거했습니다. 반정부 성향의 언론사에겐 테러 혐의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일련의 사건이 모두 쿠르드와 연계되면서 6월 총선에서 제 3당으로 도약했던 HDP는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습니다. 12월 초기 총선의 결과는 정의개발당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다시 과반을 확보한 정의개발당은 독자내각을 구성하며 에르도안의 장기집권의 든든한 발판이 됩니다.

본의 아니게 길어져 3편으로 이어가겠습니다. 

▶ [월드리포트] 21세기 술탄 에르도안 ① - 언론 탄압과 反테러법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