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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가족도 쉬쉬…숨 죽여 아파하는 '헌팅턴병'

[취재파일] 가족도 쉬쉬…숨 죽여 아파하는 '헌팅턴병'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기억하십니까? 2년 전 이맘때쯤부터 언론과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세계적인 화제가 됐던 기금 마련 캠페인입니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같은 저명인사들이 참여하면서 저들은 누구를 지목할까, 그 다음 순서는 누구일까 궁금증까지 불러일으켰습니다.

지목 받아 챌린지에 응하는 것이 하나의 자랑이자 유행처럼 됐었지요. 그 해 ‘아이스 버킷 챌린지’로 미국의 한 단체에 모인 기금이 우리 돈으로 1천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으니, 성공적인 캠페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캠페인의 가장 핵심적인 목표였던 루게릭병에 대한 관심을 모으는 데 성공했습니다.

세상에 질병을 분류하는 기준은 여럿 있지만, 내가 걸린 병과 다른 이의 병, 이보다 더 절대적이고 현실적인 기준은 없을 겁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병의 중하고 경함을 떠나 내 병을 가장 심각하고 힘들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질병을 다른 병과 비교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의미한 일인지 잘 압니다. 특히 치료 방법이 없는 희소난치성 질환을 앓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은 병의 종류와 관계 없이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루게릭병도 마찬가지입니다. 

루게릭병은 이름부터 남다릅니다. 본래 병명은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이라는 어려운 이름이지만, 20세기 초 베이브 루스와 함께 뉴욕 양키스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야구 스타 루게릭의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야구선수로 전성기를 달리던 35살에 병을 진단받고 38살에 숨진 이 비운의 스타 덕분에 루게릭병은 다른 희소난치성질환보다 잘 알려져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우주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역시 루게릭병을 앓고 있습니다. 보통 증상이 나타난 지 5년 내에 숨지는 것과 다르게, 호킹 박사는 40년 넘게 투병하며 학문적인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런던 패럴림픽 개회식에 등장해 또 한 차례 관심을 모은 바 있습니다.

루게릭 환자들은 근육이 쇠약해지고 위축돼 움직일 수 없고, 씹거나 삼키지 못하고 결국 숨도 쉬지 못하게 되지만 감각이나 인지 기능은 정상입니다. 이는 환자가 마지막까지 고통을 느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기기의 도움을 받아서 의사표시를 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 같은 캠페인을 통해 격려 받기도 하고, 캠페인을 독려할 수도 있는 겁니다.

● '헌팅턴병' 들어보셨습니까?

헌팅턴병은 퇴행성 뇌 질환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루게릭병 환자들처럼 운동 능력을 상실하는데, 정서 장애를 겪다가 치매까지 앓게 됩니다. 보통 3,40대에 많이 발병하고, 발병 후 10~25년 정도 생존할 수 있습니다. 헌팅턴병 환자의 가족들은 루게릭병 환자 보호자보다 더한 고통을 더 오랜 기간 겪게 됩니다.

외국의 통계를 보면 인종과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10만 명 당 5~10명 정도가 이 병을 앓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시아인의 헌팅턴병 유병률은 10만 명 당 0.4명~1명 정도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인구가 5,156만 명이니, 헌팅턴병 환자는 대략 200~500명 정도 될 것이라는 추산이 가능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헌팅턴병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닌 기록이 있는 사람이 1년에 200명 남짓입니다. 정말 국내 헌팅턴병 환자는 200명에 불과할까요?

지난달 경기도 군포의 박 모씨 댁에 찾아갔습니다. 박씨는 40대 여성으로, 헌팅턴병에 걸린 40대 남편과 10대  아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들은 모두 10여 년 전에 발병해, 현재 인지 기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지원하는 장애인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낮에는 일주일에 이틀 정도 밤에는 매일  혼자 두 명의 환자를 돌봐야 합니다. 욕창이 생기지 않게 몸을 움직여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기는 일은 물론 가래를 제거하는 일도 보호자의 몫입니다. 박씨는 몸이 힘든 것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크다고 토로합니다.
“실질적으로 더 힘든 것은 사랑하는 가족이 점점 아파가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너무 마음이 아파요. 걸었고, 말했고, 식사를 하고 또 이렇게 웃어주고 그랬던 가족이 병이 진행돼 뇌세포가 손상되면서 걷지 못하는 것, 말 못하는 것, 입으로 식사 못하는 것, 이런 것들을 지켜보는 게 너무너무 마음이 아파요. 가장 힘든 게 그거예요. 신체적인 기능, 정신적인 기능들이 상실돼가는 것. 그런 것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들이 가장 힘들어요.”

헌팅턴병 환자 가족들은 병원에 다니는 200명 외에 숨어있는 환자들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치료법이 없어서 병원에 다니는 것이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유전성 질환이라 가족들이 모두 쉬쉬하기 때문에 등록된 환자가 적다는 것입니다.

루게릭병도 5~10% 정도는 유전에 의해 발병하지만 대부분은 유전과 관계 없습니다. 그러나 헌팅턴병은 우성 유전으로, 헌팅턴병 환자는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이 병을 앓았던 사람입니다.

자녀에게 치명적인 퇴행성 뇌질환을 물려줄 확률이 50%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 병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증상이 심한 희소난치병임에도 불구하고, 루게릭병을 비롯한 근육병 환자들과 달리 병원비 90% 경감 혜택만 받고 있다는 것이 헌팅턴병 환자 가족들의 설명입니다.

“미국에는 환자가 많은데 지금 한국에는 등록된 환자 수가 많지 않고, 또 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이 병에 대해서 잘 파악을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병에 비해서 지원을 못 받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병은 걸렸어도 가족들이 공개하지 않고 숨기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환자 수가 있는지 파악하기 좀 어렵거든요. 환자 수가 적다 보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환자 수가 많고 환자 단체가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질환일수록 더 사회적 관심을 받고, ‘상대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는 것은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일입니다. 관심을 갖고 한참 들여다 봐야 그분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으니까요. 

헌팅턴병 환우회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회원 수는 110명에 불과합니다. 헌팅턴병처럼 드러내놓기 어려운 유전질환 때문에 말 못할 고통을 받고 있다면, 보건복지부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회안전망을 책임지는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다음 편에 이어서>

♦ 헌팅턴병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부득이 루게릭병을 거론하게 됐습니다. 루게릭병 환자분들 역시 부족한 지원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점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 글과 관련된 어떤 의견이나 지적, 문제 제기 모두 감사히 받겠습니다. 다음편에서 헌팅턴병 환자들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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