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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가 아이를 산산조각냈다"…피해자의 눈물

"가습기 살균제가 아이를 산산조각냈다"…피해자의 눈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거주하는 권미애(40·여)씨는 아들 임성준(13)군과 외출할 때면 주위의 따가운 눈총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벌써 12년째, 임군은 스스로 숨을 들이쉬고 내뱉을 수 없는 만성폐질환을 앓고 있다.

몸무게 30kg 밖에 나가지 않는 임군은 허리춤까지 오는 산소통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 다닌다.

코에 연결된 산소튜브에 호흡을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산소통은 왜 질질 끌고 다니는지…", "저건 집에 두고 나올 것이지", "저럴 거면 애를 왜 데리고 나온대"라며 수근거린다.

그때부터 권씨는 정면을 응시하며 걷는 버릇이 생겼다.

사연은 권씨가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했던 지난 2003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꿈에 그리던 아들 임군을 얻은 권씨는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했다.

첫 아이에게는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모든 것을 최고로 해주고 싶었다.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를 1년 가량 사용한 2004년 초 시작됐다.

처음엔 아이가 그냥 감기에 걸린 줄 알고 동네 병원을 찾았지만, 갑자기 물었던 젖병을 뱉어내고 토하는 등 이상증세를 보이자 수원의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임군은 입술이 새파랗게 질리며 호흡을 하지 못했고, 결국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됐다.

6개월 가량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임군은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등 위기의 순간을 수차례 넘겼다.

서울의 종합병원으로 옮겨진 뒤에도 5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병원마다 진단도 제각각이었다.

'급성호흡신부전증'부터 '간질성폐질환'까지 당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됐다.

퇴원 후에도 임군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산소통을 끌고 유치원이나 학교를 다닐 수 없는 탓에 또래를 제대로 만날 기회조차 없었다.

특수교육기관인 무지개학교를 통해 인터넷으로 수업을 받았고, 진짜 학교에는 남들보다 1년이나 늦게, 그것도 일주일에 한차례만 등교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권씨는 뉴스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례를 접하고 10여년 전을 떠올렸다.

가습기 살균제가 임군을 그렇게 만들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고통 속에 보낸 시간들이 억울하고 또 억울해 살균제 제조사와의 긴 싸움을 시작했다.

2년 전에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자신을 거들떠 보지도 않던 제조사를 직접 찾았다.

임군의 손을 잡고 처음 방문한 제조사에서는 권씨를 문전박대 했다.

이후 다른 피해자들과 몰려갔을 때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권씨는 "아이의 목에는 구멍이 뚫렸는데 전무라는 사람이 나와보고는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다"며 "아이는 앞으로 수십년을 산소통에 의지해 살아가야 한다. 이 원통함을 누가 알 수 있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권씨는 2012년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및 국가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다툼을 계속하고 있다.

소송도 소송이지만, 권씨는 이에 앞서 제조사 측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먼저 받고 싶다고 말한다.

권씨는 "산소튜브로 호흡하는 아이가 샤워하는 것을 상상해 본 적 있느냐"며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수십년은 무엇으로도 보상하지 못한다. 가습기 살균제가 아이를 산산조각 냈다"고 눈물을 쏟았다.

이어 "단 한번만이라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한다"고 애끓는 심경을 전했다.

임군은 지난해부터 매일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체육시간에 피구를 해보는 게 소원인 임군은 올해 6학년으로 이날도 제 몸만한 산소통을 손수레에 싣고 학교에 다녀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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