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흑백사진' 속 영국군 전우, 65년 만에 서울서 재회

6·25 전쟁에 참전한 영국군 노병인 윌리엄 스털링(90) 씨는 지난 25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영 연방 6·25 참전용사 감사 만찬' 행사장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는 오래된 흑백 사진 한 장을 꺼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데이비드 버드!"라고 외쳤다.

또다른 6·25 참전용사인 데이비드 버드(86) 씨가 무대로 나왔다.

그는 흑백 사진 속 인물이 젊은 시절의 자신임을 알아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국가보훈처는 26일 영 연방 6·25 참전용사 방한 행사에서 극적으로 만난 전우인 스털링 씨와 버드 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스털링 씨와 버드 씨는 영국 왕립포병부대 소속으로, 6·25 전쟁에 참전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적과 싸웠다.

스털링 씨는 당시 포병관측장교로, 계급이 중위였고 전포대 장교였던 버드 씨도 중위였다.

스털링 씨가 적의 위치를 파악해 표적을 정해주면 버드 씨는 포의 발사를 명령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중국군의 공세가 한창이던 1951년 11월 7일, 왕립포병부대는 임진강 부근 마량산(217고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전쟁 중에도 카메라를 갖고 다니던 스털링 씨는 버드 씨가 다른 동료 1명과 서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전투로 고된 나날이었지만 버드 씨는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음을 지었다.

스털링 씨는 사진에 버드 씨의 이름을 기록해뒀다.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전쟁 중이었지만 전우를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스털링 씨와 버드 씨는 한국에서 임무를 모두 마치고 무사히 영국으로 돌아갔지만 6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스털링 씨는 지난 20일 보훈처의 초청으로 젊은 시절 목숨을 바쳐 지켰던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전우들의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도 지참했다.

사진 속 전우들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보훈처의 초청으로 이번에 한국에 온 영 연방 6·25 참전용사 방한단 120여명 중에는 버드 씨가 포함돼 있었고 두 전우는 65년 만에 손을 맞잡을 수 있게 됐다.

스털링 씨는 "65년 만에 옛 전우를 만나게 해준 한국 정부에 감사한다"며 "한국의 발전상을 직접 보면서 나의 참전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