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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4년 동안 故 하지혜 씨 가족이 하고 싶었던 말

[취재파일] 14년 동안 故 하지혜 씨 가족이 하고 싶었던 말
● 뜻밖에 ‘할 말이 많다’던 어느 유족

아들은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자꾸 주저앉았다. 이미 힘이 풀려버린 다리 때문이었다. 경찰서 앞마당에서,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무릎을 짚고 겨우 일어선 아들은 멀리 떨어진 산과 하늘만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옆에 서 있던 아버지를 챙겼다.

'지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겠지' 하는 생각에 조심스레 말을 건넨 기자에게 아버지와 아들은 뜻밖에도 할 말이 많다고 했다. 강력 범죄 피해자들의 삶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범죄 피해자들의 삶이 어떠한지, 또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그에 맞는 벌을 받고 있지 못한 것 같을 때 어떠한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일을 겪으면서 두 사람은 많은 고민을 한 듯했다.
지난달 20일, 고 하지혜 씨의 어머니는 14년 전 세상을 떠난 딸의 곁으로 갔다.
하지만 곧이어 두 사람은 담담하고도 간곡하게 오늘만은 그 말을 하기가 어렵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머니이자 아내가 숨진 채 발견된 당일, 아직 빈소도 차려지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만은 아내와 어머니 곁에서 조용히 정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빈소가 차려지고 조문을 받고 또 장례가 끝나고, 그렇게 무언가 정리가 되고 나면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부탁에 우리의 취재와 보도는 그날 그 자리에서 멈췄다. 그렇게 아들과 남편이 갑작스레 떠나보낸 사람은 이른바 ‘여대생 청부 살해’ 사건의 피해자 고 하지혜 씨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지난 달 20일, 그렇게 14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의 곁으로 갔다.

장성해 분가한 아들 내외는 매 주말마다 손자와 손녀를 데리고 어머니를 찾아뵈었었다. 어느 날 으레 그랬듯 연락을 했지만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기가 고장이 났나. 어딘가에 두고 깜빡 잊으셨나. 걱정 끝에 도착한 집 안방 침대 위에 어머니는 평소 옷차림 그대로 누워 있었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아버지는 설 연휴 전후로 어머니가 술을 많이 마셨다고 했다. 전화 통화에서 어머니가 온종일 술 말고는 아무것도 목으로 넘기지 못했다고 아버지에게 이야기한 날도 있었다. 바로 그 설 연휴에 가족들은 지혜 씨의 제사를 처음으로 지냈다.

지난 겨울 지혜 씨가 세상을 떠난 지 13년이 흐른 뒤에야 지혜 씨의 사망신고를 한 터였다. 여동생이자 딸의 첫 제사를 지낸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어머니이면서 아내를 떠나보낸 가족들은 그렇게 한 번 더 아팠다. 

●2016년 윤길자 씨는 어디에

취재와 보도를 접고 돌아온 날 저녁, 그날 우연히 듣게 된 한 마디가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윤길자 씨가 화성에 있다고 하던데.’ 지혜 씨의 아버지와 오빠를 기다리며 또 다른 취재가 시작됐다.

자신의 조카와 지인을 시켜 지혜 씨를 살해한 혐의가 인정돼 지난 2004년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은 영남제분 회장 부인 윤길자 씨. 그런 윤 씨가 법무부가 지난해 교정의 날을 기념해 취재진들에게 일부 시설을 개방하며 소개했던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 있다는 것이었다.

직업훈련교도소는 수형자 중 일부가 수형 생활을 마친 뒤 창업이나 취업을 해서 새 삶을 찾을 수 있도록 건축설비나 제과제빵 등 여러 분야에서 직업훈련을 받도록 한 곳이다. 화성의 경우 지난 2009년에 지어져 다른 곳에 비해 시설이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그리고 복역 중에 허위 진단서로 형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병원에서 호화 수감 생활을 하다 재수감되기까지 한 사람이 그곳에 갈 수 있었던 걸까. 윤 씨가 그 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이제 윤 씨가 어떻게 그 곳에 가게 되었는지 취재에 나섰다.

전국의 교정시설을 관할하고 있는 교정본부와 그 교정본부를 산하에 둔 법무부는 수형자의 수형 등급과 나이, 성별, 연고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는 모범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수감자들도 있으며, 이들 중에는 직업 훈련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윤 씨가 그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윤 씨는 경기도 화성에 있는 이곳 직업훈련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 윤 씨는 어떻게 그곳으로 갔을까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수형자들을 처음으로 분류하는 신입 심사 때 성장 과정과 학력 및 직업경력, 생활환경부터 범죄 경력 및 범행 내용, 수용생활 태도, 범죄 피해의 회복 노력 및 정도 등을 고려한다.

그 결과로 수형자들에게 등급을 부여하게 되는데, 등급 판정 기준은 다시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성별이나 국적, 나이, 형기 등 기본적인 정보와 관련된 기본수용급, 도주 가능성이나 범죄 성향, 개선 정도, 교정성적에 따라 평가하는 경비처우급, 수형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고려하는 개별처우급이 그 3가지다. 경비처우급 수용기준은 어떤 교정시설에 수용되느냐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잣대 중 하나다.

이 경비처우급을 좌우하는 건 바로 소득점수다. 교정시설의 장이 매월 수형자에게 소득점수를 매긴다. 수형생활태도에 따라 매우 양호(5점)부터 불량(1점)까지, 또 직업과 교육 성적에 따라 매우 우수(5점)부터 불량(1점)까지 점수를 매길 수 있다.

수형자가 각자 보내던 형기의 1/3, 1/2 등 정해진 기준 시한에 도달하면 그간의 월 평균 소득점수를 가지고 그 수형자의 경비처우급을 상향 조정할지 하향 조정할지 정하게 된다. 8점을 넘으면 경비처우급을 높일 수 있고 5점 이하면 급을 낮춘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라 사용되고 있는 소득점수 평가 및 통지서.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수감 중인 윤길자 씨도 이런 절차를 통해 소득점수가 매겨졌을 것이고, 이를 통해 경비처우급 등급이 결정됐으며, 머물 수 있는 교정시설이 결정됐을 것이다. 어떻게 윤 씨가 화성에 가게 됐는지를 묻는 질문에 법무부는 "절차상 문제는 없었으며, 구체적인 등급이나 점수 등은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공개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화성직업훈련교도소가 소위 ‘모범수’들만 가는 곳이 아닐뿐더러 교도소 가운데 시설이 가장 좋다거나 교정시설 자체 등급 중 상위 등급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라는 설명도 함께했다. 언제부터 화성에 윤 씨가 있었는지, 그 이전에는 어디에 머물렀는지를 확인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윤 씨 측 나름의 입장과 해명도 듣고 싶었다. 현재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지혜 씨의 사촌오빠이자 윤 씨의 사위를 찾았다. 어렵게 연락이 닿았지만 그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며, "왜 자신이 그런 것을 알 거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는 문자만을 남겼다.

● 쉽게 ‘바뀐’ 홈페이지와 ‘여전히’ 그 자리인 가족들

지난 2월 25일 첫 보도 당시 기사에는 법무부 교정본부 홈페이지에 실린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소개 글이 담겼다. “최신 교정시설로서 전 수용 동에 난방시설을 완비하여 쾌적한 수용환경 조성과 다양한 직업 훈련프로그램을 운영, 모든 수용자들이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새 삶을 준비하는데 최선을 다해 나가겠습니다”는 소개 글이었다.

보도가 나간 뒤,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소개 글은 “우리 기관은 전국에서 선발된 직업훈련수용자, 재판 진행 중인 미결 수용자 및 일반 형 확정 수형자를 수용하고 있으며, 이들이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새 삶을 준비하도록 돕는 데 최선을 다해 나가겠습니다”라는 글로 바뀌었다. 기사에 언급됐던 ‘쾌적한 수용 환경’이라는 표현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게 사라졌고, 직업훈련을 받는 사람들만 이 교도소에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 새롭게 강조됐다.

홈페이지의 문구는 그렇게 쉽게 바뀌었지만, 지난달 경찰서 앞마당과 장례식장에서 겨우 몸을 일으키던 지혜 씨의 오빠는 여전히 거리에 있다. 보도 이후 지혜 씨의 오빠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이 나라의 정의는 죽었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든 오빠 진영 씨는 서울고등법원과 세브란스 병원 앞, 화성 직업훈련교도소와 영남제분 앞에서 연이어 1인 시위를 벌였다. 왜 1인 시위에 나서게 되었냐는 질문에 오빠는 “법의 단죄만 있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 하지혜 씨의 오빠 하진영 씨는 보도 이후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어떻게든 이제 남은 가족들이 이겨내려고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위해서라도 달리 보상이 아니라 상식적인 법의 단죄만이라도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그것만으로도 아마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안 그래도 마음의 상처가 크고 힘드신 어머니가 그걸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저희 가족뿐만 아니라 이런 강력범죄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런 부분에서는 억울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런 강력범죄를 당한 피해자 가족들은, 가정에는 파탄이 일어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래도, 그래도 그런 아픔을 딛고 일어나려고 하는 자그마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법의 단죄에요. 진짜 법의 단죄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그걸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그것마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정말 피해자 유족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은 도저히 버텨나갈 희망이 없게 되는 거거든요.”


● 오빠가 14년 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

1인 시위를 마친 오빠 진영 씨는 국민감사청구를 위해 또 다시 거리를 돌며 300명이 넘는 시민들의 서명을 받았다. 국민감사청구는 공공기관의 사무처리가 법령 위반 또는 부패행위로 인해 공익을 현저히 해하는 경우, 19세 이상 국민 300명 이상이 청구한 사안에 대해 감사원이 감사 실시를 고려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윤 씨에게 내려졌던 형 집행정지 결정을 포함한 수형생활 전반에 대해, 관할 검찰과 교정 담당자들의 업무가 제대로 진행되어 온 것이 맞는지 감사해달라는 취지다. 진영 씨가 낸 국민감사청구가 받아들여지면 감사원이 법무부 등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게 된다. 

진영 씨는 이제 자신의 일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을 널리 알리는 데에도 두 팔을 걷어 붙였다. 이제 2만 명이 넘는 가입자 수를 가진, 페이스북 그룹에 개설된 모임 일을 맡아 하면서부터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며 하소연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모으고 그 가운데 제기된 의혹들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거리에서 또 인터넷에서 활동을 벌이는 모임이다.

'축구선수 윤기원 사망 사건' 등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언급되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 당사자를 직접 만나거나 재수사를 촉구하기도 하고, 개구리소년 25주기 추도식에 참석하는 등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억 저편에 남겨둔 일을 잊히지 않게 하는 활동에 나서기도 한다.

어쩌면 지난달 25일 오빠 진영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진영 씨가 하고 싶었다던 이야기를 이미 우리는 이렇게 들은 셈이다. 강력범죄 피해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진영 씨는 이렇게 14년이 지난 오늘에도 온몸으로 해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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