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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도서관의 책을 모두 다 읽은 뒤에는 무엇을 할까요?

[취재파일] 도서관의 책을 모두 다 읽은 뒤에는 무엇을 할까요?
지난 25일 금요일 7시 반. 이른바 ‘불금’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교보문고 이벤트 홀 350석이 꽉 찼습니다.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의 강연회였습니다. 현존하는 세계 3대 건축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페로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11월까지 진행되는 <프랑스 인문학 석강:크리에이티브 프랑스>의 첫 번째 연사로 초대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화여대 지하캠퍼스(ECC), 여수 예울 마루, 용산 블레이드 타워 등을 설계하며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축 거장은 패션부터 남달랐습니다. 53년생으로 올해 64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자형 연한 진바지에 검은 캐주얼 구두, 짙은 회색 남방과 자켓을 멋지게 소화했습니다.
대부분이 젊은이들인 청중을 고려해선지 지난 2008년 준공된 이화여대 캠퍼스 설계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페로가 설계자로 결정된 뒤 이화여대는 프랑스 설계사에게서 ‘프랑스식 정원’이 만들어질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페로 건축의 첫 번째 원칙은 주변과의 조화. 그는 ‘한국 주변 환경과 조화되는 한국식 정원’을 시도했습니다. 주차장 때문에 없어진 공간을 한국의 시골 공원과 같은 풍경으로 만드는 대신 부족한 공간 확보를 위해 건물은 지하 6층까지 만들어야 했습니다. 건물 대부분이 지하에 자리 잡고 있지만 양쪽 유리벽을 통해 채광 문제까지 멋지게 해결하면서 기능적인 면과 미적인 면을 모두 살릴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이화여대를 중국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거듭나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건축에 있어 주변과 조화를 중시하는 페로는 프랑스에서는 작은 나무를 옮겨 심어 자리 잡도록 하기 때문에 2, 30년에서 100년은 걸리는 작업이 한국에서는 빠른 속도로 이뤄진다면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이화여대 작업할 때 보니 큰 나무를 ‘휙휙’ 옮겨 심어 4년 만에 작업이 끝났다는 거죠. ‘프랑스에서는 불가능한 속도’라면서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가 자연과 조화를 예로 들며 설명한 또 다른 건축물은 프랑스 알비(ALBI)시의 대극장. 알비는 프랑스 남부 랑그독 지방에 있는 중세 도시로 붉은색 연와를 사용한 붉은 시가지가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붉은 지붕 집들이 빼곡이 들어선 가운데 페로는 황금색 지붕의 대극장을 건설했습니다. 자신의 머플러를 예로 들면서 붉은색 의상에 황금색 머플러를 두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무명 건축가였던 페로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설계를 맡으면서부터입니다. 지난 1989년, 36살의 나이로 페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건축 공모전에 당선됐습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이름을 따 ‘미테랑 도서관’으로도 불리는 이 도서관은 책장을 펼쳐놓은 듯한 4개의 동 한 가운데에 숲이 조성돼 있습니다.
도서관 한 가운데 숲을 조성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페로는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를 인용했습니다.

“도서관을 가득 채운 책들을 다 읽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하나? 나무를 감상하면 된다. 나무를 다 감상한 뒤에 다시 새 책을 써서 도서관을 채우면 된다”고 말입니다. 이 설명을 듣고 나니 그제서야 비로소 인문학 강의에 왜 건축가인 페로를 초대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실제로 그는 대학에서 건축, 토목을 공부한 뒤 역사학 석사를 취득해, 그의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시도를 인문학적 소양 덕분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페로는 특히, 오래된 건축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주변과 조화롭게 기능적으로 바꾸는 리모델링의 대가로도 유명합니다. 현재는 파리 근교 베르사유궁 입구 리모델링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궁의 현관 격인 건물을 수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들기 편하도록 개조하는 작업입니다.

지하에 강당과 카페, 리셉션 홀을 만들어 기능적으로 편리하면서도 과거 모습을 훼손하지 않고 원래 궁과 조화를 이루도록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합니다. 오는 6월에 개장 예정이라며 “꼭 보러오라”는 말로 강의를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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