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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일본은 왜 '인간형 인공지능 로봇'에 집착할까?

인공지능 '무인점포' 등장…논의를 확장하자!

[월드리포트] 일본은 왜 '인간형 인공지능 로봇'에 집착할까?
지난 24일, 일본 도쿄 미나미아오야마에 인공지능 무인점포가 문을 열었습니다. 소프트뱅크의 휴대폰 매장입니다. 19만 8천 엔, 우리돈 200만 원 정도에 일반 판매도 이뤄지고 있는 인공지능 로봇 페퍼 10대가 손님맞이에서 계약상담까지 다 알아서 하는 방식입니다. 소프트뱅크는 유명 연예인들까지 불러서 개장 행사를 했고, 일본은 물론 해외매체 수십 곳도 취재에 나설 정도로 큰 화제가 됐습니다.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생각하면, '인공지능 무인점포'의 등장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릅니다. 올 것이 왔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몇가지 의문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과연 로봇만으로 점포 운영이 가능할까, 가입 계약서를 쓰고 물건을 건네주는 일이 사람없이 가능할까, 또 조심성 많은 일본 사람들이 개인정보를 로봇에게 선뜻 알려줄까…. 확인하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미리 취재허가를 받고 갔지만, 워낙 매체가 많아서인지 매장에 들어가기까지 3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1층 매장에는 '점장' 완장을 찬 페퍼를 비롯해 로봇 4대가 배치돼 있었는데 이벤트 전시장 느낌이었습니다. 실제 손님맞이가 시작되는 2층으로 바로 올라갔습니다. 

2층 매장에서 기자를 맞이한 페퍼(좌), 손님에게 제품을 건네는 로봇 팔(우)
 
기자를 맞이한 건 역시 페퍼였습니다. "곤니치와"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띠리리'하는 음성인식 기계음에 이어 "곤니치와"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페퍼가 처음 일반 공개됐던 2년 전, 오모테산도 매장에서 한번 취재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 '대화' 자체는 사실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2년 전보다 더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여유는 없었습니다.

일본스럽게(?) 매장은 대단히 좁았습니다. 2층 안쪽 방에는 가입 계약 상담을 하는 페퍼 직원이, 그 방 바로 앞에는 기자를 맞아준 페퍼와 함께 상품을 건네주는 로봇 팔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가입계약을 마치고 페퍼에게 큐알 코드를 인식시키면, 최종적으로 로봇 팔이 고객에게 상품을 건네주는 방식이었습니다.

1, 2, 3층 매장 입구마다 소프트뱅크 홍보담당자들이 지키고 서서,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취재진과 로봇직원들을 살펴봤습니다. 페퍼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고객 대응에 문제는 없는지 하나하나 지켜보는 듯했습니다.

소프트뱅크 직원에게 물어봤습니다. 실제로 계약을 많이 하느냐고. "상담은 몇차례 있었지만, 실제 계약까지는…"이라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고객들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로봇을 통해 입력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매장 안을 둘러볼 수 있도록 기자에게 허락된 30분 남짓, 가입 계약서의 큐알 코드를 인식하고 로봇 팔이 작동한 경우는 1건뿐이었습니다. 

로봇 점장 '페퍼'(좌), 매장을 방문해 페퍼와 대화중인 손님들
 
1층으로 다시 내려와 매장을 찾은 고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한 30대 여성 고객의 첫 반응은 "귀엽다"였습니다. 신기한 경험임에는 분명하니까요. 접객이나 계약 상담에 신뢰가 가더냐고 재차 물었습니다. "사람이 하는 만큼은 못했지만, 뭔가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귀엽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사람만은 못하다"는 답변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습니다. 이세돌 사범이 알파고에게 패배한 이후-훌륭하게 시합을 마친 이세돌 사범은 너무도 근사했지만, 바둑에서 인간이 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었기에-, 제 마음 한쪽에서 커져가기만 하던 막연한 불안감이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랄까요….

소프트뱅크 측도 이번 무인점포는 일주일 예정의 이벤트 성격이 강하다고 밝혔습니다. 시범운영 과정을 평가한 뒤, 앞으로 매출과 재고관리까지 인공지능 로봇에게 맡기는 식으로 확대 운영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인공지능 페퍼는 미국 IBM 왓슨과 연결돼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알파고가 얼마나 더 강해질지 기대 반 두려움 반인 것처럼, 페퍼도 얼마나 더 역할을 키워갈지 기대 반 두려움 반입니다.

한국 고용정보원에서 자료를 냈더군요. 인공지능 발달에 따라 대체가능한 직업들에 순위를 매겼습니다. 단순 반복이나 비숙련 직업, 전문직 가운데서도 숫자를 다루고 분석하는 직업은 대체 가능성이 높다고 썼습니다. 청원경찰, 환경미화원, 행정사무원, 부동산 중개인, 손해사정인, 일반 의사 등은 인공지능에 밀려 사람이 설 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겁(?)을 잔뜩 줬습니다. 10년 안에 직업의 1/3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외신도 있었죠.

"이젠 10년 후면 편의점 알바도 못하게 생겼네…." 일본 무인점포 취재 내용을 26일 8시 리포트로 전했는데, 그 기사에 달린 댓글 가운데 가장 추천이 많았던 글입니다. 재치 넘치는 댓글이지만 동시에 마음 한쪽을 묵직하게 하는 글입니다. 물론 전혀 다른 반응도 있었습니다. 사회과학을 하는 한 후배는, 최저 시급 6,030원인 대한민국에서 그 비싼 인공지능 로봇들이 사람을 쉽게 대체할 수가 없다고…. 웃자고 한 말이었겠지만 씁쓸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인공지능 산업과 기술을 취재하면서, 한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일본은 왜 '인간형 인공지능 로봇'에 이렇게까지 집착할까"라는 의문입니다. 어지간한 전시회에는 항상 마네킹 느낌의 여성 인간형 로봇이 등장하고, 기업들도 페퍼나 아시모 같은 인간형 로봇을 상품으로 만드는 데 공을 들입니다.

지난여름, 나가사키 하우스텐보에 개장한 로봇 호텔
 
지난 여름에는, 일본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테마공원 하우스텐보에 로봇으로 운영되는 호텔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접객에서 짐 운반, 객실 조명 및 목욕물 관리 등을 로봇이 합니다. 인간형 로봇과 함께 공룡 같은 동물형 로봇이 호텔 카운터에 앉아 있는 모습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당시 NTV를 비롯한 일본 방송들도 이 소식을 다뤘는데, 인공지능의 수준은 다소 허술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손님이 객실에 설치된 인형 모양의 로봇에게 "조명을 줄여라"고 명령했는데,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하는 모습이 TV를 통해서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일본 방송들은,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관광상품으로는 매력적"이라는 식으로, 방송을 훈훈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전문가에게 물어봤습니다. 일본 국립 정보학연구소의 이치세 류타로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일본은 왜 그렇게 인간형 인공지능 로봇, 서비스용 인간형 로봇에 관심이 높으냐고. 이치세 교수는 '도라에몽'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이치세 교수는, "일본은 도라에몽에서 보듯이, 인간과 기계가 사이좋게 지낸다는 식의 세계관이 서구에 비해서 강하다"고 지적한 뒤, "일본에서 발달한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이 인간과 기계의 교감과 공존을 강조하는 식인데, 이런 생각이 오랫동안 일본에 침투하고 퍼진 것이 '인간형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집착이라는 일본의 특징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사람들에게 친숙한 그런 방식이, 인공지능에 대한 산업적 활용 가능성을 더 키우지 않겠느냐고 덧붙였습니다.


일본 국립 정보학연구소 이치세 박사(좌), 노인 복지시설에서 공연하는 로봇
 
실제 최근 일본에서는 로봇을(인공지능이 탑재됐다고 하기에는 2% 부족하지만…) 장애인 지원, 노인관련 산업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쇼핑이 불편한 장애인을 대신해서 카메라가 장착된 로봇이 쇼핑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노인 복지시설에서 공연하고 말상대 해주는 로봇 등입니다. 70~80대 할머니들이 조그만 로봇을 따라 율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이니까 가능한 사업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소설을 쓰는 인공지능, 작곡하는 로봇, 자율주행 같은 대표적인 인공지능 분야까지. 사람을 대신하는 인공지능 또 인간형 로봇 기술이 발전하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단지 기술만이 아닌 듯합니다. 법과 제도, 때로는 윤리의 문제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쓴 소설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자율주행 프로그램에게 자동차 주인과 차 밖의 행인들 가운데 누구를 우선적으로 보호하도록 입력할 것인지, 사고 시 책임은 누가(자동차회사, 차량주인) 어떻게 나눠야 할 것인지 등등. 이런 문제를 자동차 회사와 보험회사에 내맡긴 채,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로를 질주하게 놔둬서는 곤란하지 않을까요.

일본의 인공지능 무인점포를 둘러보면서, '고용'과 '임금', '정보보호' 같은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에까지 인공지능 논의는 확장돼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알파고로 뒤늦게 각성(?)한 한국의 인공지능 열풍이, 기술과 경제 효과만 따지는 외길로 흐르지 않고 법과 제도, 도덕, 사회적 이슈에 대한 논의로 두루두루 확장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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