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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세돌 vs. 알파고…우리에겐 생각할 게 너무 많다

이번 대국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건 지난 1월 2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를 통해서였습니다. 네이처엔 구글의 자회사인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유럽 바둑 챔피언인 판후이 2단을 꺾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인공지능이 바둑에서 프로 기사를 이긴 건 이전엔 없던 일입니다. 3월에는 알파고가 세계 최정상의 바둑 기사 이세돌 9단과 서울에서 대국을 펼친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구글은 같은 날 오후 서울의 구글 코리아와 데미스 허사비스 CEO가 있는 런던의 구글 딥마인드 본사를 연결해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소식을 자세히 전했는데, 그 현장에 저도 있었습니다. IT팀 취재기자들이 감당하기엔 규모가 큰 취재여서 지원 인력이 필요했고, 저도 지원팀에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바둑도 인공지능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대국이 될 거라는 예감만은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한 달이 지난 2월 22일, 구글이 주관하는 또 한 번의 기자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이번에는 한국기원에서였습니다. 역시 허사비스 CEO는 인터넷으로 연결돼 있었지만, 한 가지 차이점은 이세돌 9단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는 겁니다.

1월 간담회 때와 비교해 상당히 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습니다. 대국이 임박하면서 관심도 그만큼 높아진 겁니다. 이 9단을 실물로 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는데, 많은 취재진 때문에 좀 긴장하기는 한 듯 보였지만 듣던 대로 ‘자신만만한 승부사’라는 인상을 줬습니다.

이세돌 9단은 자신감 넘치는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밝은 표정으로 5대0 혹은 4대1 정도의 승리를 예측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겠지만, 지난 10월 판후이 2단과의 대국을 볼 때 알파고가 ‘아직은’ 자신의 상대가 될 만한 실력은 아니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당시 이세돌 9단의 견해는 다른 바둑 고수들의 승부 전망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국내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고수들도 이 9단의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이 9단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고수들도 외부에 공개된 판후이 2단과의 대국 기보를 통해 알파고의 실력을 가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실제 대국의 결과는 많은 분들이 아시는 대로입니다. 총 5번의 대국이 벌어졌고, 이세돌 9단은 1대4로 아쉽게 승부를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대국이 시작되기 전 이 9단의 자신만만한 태도나 다른 고수들의 승부 전망을 취재하면서 저도 자연스레 이 9단의 낙승을 예상했던 터라, 개인적으로도 충격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제1국이 있었던 날 대국장 현장에서 생각지 못한 패배를 목격하고 또 이어진 이세돌 9단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취재기자이면서도 적잖은 감정적 동요가 일었던 게 사실입니다. 우선 충격 받고 힘들어하는 듯한 이 9단의 모습을 보는 게 안타깝고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사회 변화에, 우리는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란 질문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관련 논의를 건강하고 합리적으로 이끌어갈 만큼 우리사회가 따뜻하고 성숙해 있는 것 같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란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의문까지 떠올라 머릿속이 한층 어지러웠습니다. 

물론 대국장의 모두가 저처럼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구글 직원들은 물론 외신기자 상당수도 상기된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대국장 현장에서 미국의 IT기술 전문잡지인 와이어드 소속 기자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인공지능 기술의 현주소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국에서 알파고가 승리한 데 대해 무척 고무되어(certainly excited)  있었습니다.

그는 이번 대국이 ‘인간 대 기계’의 대결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대결이며, 따라서 ‘인간이 졌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였습니다. 구글 측의 입장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논리적으로 볼 때 틀린 말은 전혀 아닙니다. 그는 또 인공지능의 발전은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진보를 가져올 거라고 확신했는데, 이 또한 충분히 동의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복잡한 심경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제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생각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근접해서 지켜보면서 저도 모르게 사안을 너무 감정적으로 보게 된 영향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논의를 시작하고 준비해가도 늦지 않을지 모릅니다.

다만 지난 2주간 인공지능 개발 사업에 정부가 돈을 수백억 원 투자한다느니 연구소를 짓는다느니 하는 얘기는 들었어도, 다가오는 사회에서 발생할 사회적 문제나 갈등에 대한 고민이나 연구, 논의를 시작해보겠다는 진지한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대량 실업과 가속화 될 자본 집중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사회적 공감대를 찾기 위한 논의를 우리사회가 언제까지 유예해도 되는지, 저는 잘 알지 못해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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