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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인정한 천재수학자 '에미 뇌터'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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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5월 5일, 아인슈타인은 뉴욕타임즈를 통해 한 천재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인정한 천재 수학자. 그녀의 이름은 에미 뇌터입니다. 그녀는 1915년 아인슈타인에게 초청받아 일반 상대성 이론의 난해한 문제를 함께 연구하고 발전시킨 인물입니다. 또한 뇌터는 추상 대수학의 창시자라 불리며 그녀가 증명한 뇌터 정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만큼이나 물리학에서 중요하다 평가 받습니다.
1882년 3월 23일이 생일인 그녀는 원래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꿈이었지만, 아버지 뒤를 이어 수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창조적이었던 그녀의 논문은 단번에 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유명학자에게 초청받을 정도로 실력이 탁월했지만 그녀는 뜻밖의 벽에 부딪칩니다. 왜냐하면 뇌터가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그녀의 교수 임명을 적극 반대했습니다. 그 때만해도 유럽 학계는 여성차별 의식이 뿌리깊게 박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밀 뇌터는 독일 괴팅겐 대학교의 강단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곳의 교수였던 ‘다비트 힐베르트’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었습니다. 남성중심적인 학계에서 그녀를 인정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잘못하면 당대 최고의 수학자로 인정받던 그의 명성에 금이 갈 수도 있는 상황…. 힐베르트는 편견 없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습니다. 학교에서 그녀를 교수로 인정하지 않자, 힐베르트는 자신의 이름으로 수업을 개설하고, 수업은 그녀가 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무급으로 강단에서 버틴 그녀는 1919년 독일혁명으로 여성의 인권이 향상되면서 교수가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교수의 자리에 오른 그녀는 연구에 더욱 매진합니다.
그러나, 행복한 날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933년 나치 정부가 들어선 뒤, 유대인이었던 그녀는 대학에서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심지어 그녀가 쌓은 업적마저 푸대접했습니다. 결국 독일을 떠난 그녀는 미국 브린 모어 대학에서 교수가 됐지만 안타깝게도 1935년, 갑작스런 병의 악화로 수술 도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단지 여성이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견뎌야 했던 비운의 천재 에밀 뇌터. 굴곡진 인생 속에서도 큰 수학적 업적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기틀을 다진 그녀는 화려하게 빛나진 않지만, 위대한 스승으로 현대 수학자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기획 권영인 / 구성 권재경

(SBS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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