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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벵이로 인생역전'…귀농 3년 만에 억대 연봉

'굼벵이로 인생역전'…귀농 3년 만에 억대 연봉
"굼벵이를 보내 달라는 전화가 쇄도하지만, 물량이 부족합니다. 어제도 서울 약제시장에서 50㎏을 보내 달라고 했는데, 30㎏밖에 못 보냈어요. 조만간 비닐하우스 7개 동을 추가로 지어 굼벵이를 키울 예정입니다."

충남 보령시 웅천읍 평리 한 비닐하우스 앞에서 박정현(39)씨를 만난 뒤 받은 첫인상은 '이렇게 하면 우리나라 농업도 살 길이 있겠구나. 청년들이 농촌에서 할 일이 정말 많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농민으로서의 자질뿐만 아니라 어려운 현실을 남 탓으로 돌리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업가의 자질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굼벵이 청년'으로 불리는 박씨가 귀농을 결심한 것은 지난 2013년입니다.

수도권에서 건축업과 부동산업을 하면서 한때 청년 사업가라는 부러움도 받았지만, 사업이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그는 지인이 운영하는 충남 보령의 한 목장으로 귀농했습니다.

소 여물을 주고 배설물을 치우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박씨가 굼벵이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설국열차'를 본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영화 속 사람들이 먹던 '단백질 블록'을 바퀴벌레로 만든 것이라는 것을 보며 굼벵이에 '필'이 꽂혔습니다.

육류를 통한 단백질 섭취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식량 불균형이 심각해진다는 전문 지식을 몸으로 깨닫고 식용 곤충인 굼벵이로 눈을 돌린 것입니다.

굼벵이가 좋아하는 먹이를 찾으려고 소 여물의 비율을 달리해 실험했고,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려고 온도를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했습니다.

물론 책도 여러 권 읽었고, 전문가들을 찾아가 조언을 듣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굼벵이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와 온도를 찾아냈고, 대량 생산하는 방법도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굼벵이를 키울 장소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때 박씨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마을의 한 주민이 자신의 땅을 무료로 내줬습니다.

또 다른 주민은 굼벵이 먹이인 밀겨울과 콩껍데기 등을 구해줬습니다.

전기나 보일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마다 박씨가 무료로 고쳐준 데에 대한 보답이었습니다.

여기에 지자체에서는 굼벵이를 키울 비닐하우스를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해줬습니다.

그의 비닐하우스 안은 농작물이 아닌 흰색 플라스틱 상자로 가득했습니다.

상자를 열자 톱밥과 덤불이 절반가량 차 있고, 그 안에는 수백 마리의 굼벵이가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 한편에는 박씨가 직접 고안한 굼벵이와 톱밥을 분리하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박씨가 생산한 굼벵이는 전량 수도권의 약제시장으로 팔려 나갑니다.

최근에는 간장 질환 등 간 기능 회복에도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굼벵이를 찾는 사람도 급격히 늘었습니다.

올해 10월까지는 예약이 모두 끝나 웃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형편입니다.

박씨가 한 달 동안 생산하는 굼벵이는 약 80㎏, 판매 가격으로 계산하면 1천600만원 상당입니다.

그는 지난해 2억원 가까운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굼벵이 하나로 '억대 연봉'을 실현한 셈입니다.

굼벵이 수요가 늘어나면서 박씨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조직해 생산량을 늘릴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굼벵이를 키울 비닐하우스 7동을 추가로 짓고 있습니다.

또 주민들과 염소를 대량으로 키우는 방안 등 새로운 일거리에 대해 전문가들과 함께 검토하고 있습니다.

박씨는 "청년들이 직장도 잡지 못하면서 왜 서울을 고집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농촌에 있으면 모든 게 돈벌이고 사업 거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농촌에서 허드렛일을 하면 최소한 밥은 먹을 수 있고, 말만 잘하면 주민들이 잠도 재워 준다"며 "그렇게 한 두 해만 생활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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