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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성격, 유전자 탓일까? 환경 탓일까?

[취재파일] 성격, 유전자 탓일까? 환경 탓일까?
▲ 이미지 출처 : 영화 '트윈스터즈'
 
● 하나. 유럽에서 만난 싸늘한 눈빛

오래전 북유럽의 한 도시로 출장 갔을 때 일입니다. 시내에서 점심을 먹은 뒤 서울로 치면 명동쯤의 중심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앞서 가던 남자가 갑자기 서는 바람에 부딪혔습니다. 남자가 활짝 웃는 얼굴로 돌아보며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동시에 웃으면서 "쏘리" 했습니다.
 
그런데 눈이 마주친 순간,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습니다.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지더니 눈빛에서 싸늘한 경멸이 느껴졌습니다. 갑자기 왜 그러시느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냥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남자의 눈을 가득 채운 건 제 피부색에 대한 경멸이었습니다.
 
쓸데없는 피해의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녀와서 그 얘길 했더니 친구 중 한 명은 런던 워털루역 에스컬레이터에서 똑같은 경험을 했다고 했습니다. 유럽 도시를 방문해 본 적 있는 이들에게 물어보면 한두 번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 둘. 영국의 설문조사

런던에 1년 정도 머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유력지인 가디언에 한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습니다. 유색 인종의 팔십 몇 퍼센트가 백인 친구가 있다고 답을 했는데, 백인의 구십 몇 퍼센트가 유색 인종 친구는 없다고 답을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런던은 뉴욕과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인종의 다양성이 풍부한 도시입니다. 당시 적을 두고 있었던 학교는 그 나라 안에서도 가장 ‘코스모폴리탄’ 하기로 소문난 곳이었습니다. 제가 속해 있던 과만 해도 학생 19명 가운데 아시안이 저 말고도 4명이나 있었습니다.
 
인원이 많지 않은 과라 다들 친하게 지냈습니다. 서로서로 초대해서 파티도 하고, 생일이면 우르르 몰려서 템즈강을 따라 늘어선 펍 순례도 하곤 했습니다. 저는 특히 비슷한 또래의 여자 친구들과 가까웠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백인이었습니다. 브라질 친구 마그다, 미국 친구 앤, 노르웨이 친구 크리스틴.
 
기사를 읽고 나서도 특별히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같은 친구들과 똑같이 어울려 다니며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가끔 혼자 속으로 궁금한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저 애들도 나를 ‘친구’라고 생각할까?”
 
● 셋. 쌍둥이 입양아 자매 다큐멘터리 ‘트윈스터즈’

영화 ‘트윈스터즈’는 잘 알려진 한국 출신 쌍둥이 입양아 자매의 다큐멘터리입니다. 태어난 직후 한 명은 미국에, 다른 한 명은 프랑스에 입양됐습니다. 두 사람 모두 쌍둥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25년을 살았는데, 우연히 SNS를 통해 서로를 찾아서 실제 만난 과정을 담았습니다.
 
일란성 쌍둥이인 자매는 정말 똑같이 생겼습니다. 외모만 똑 같은 게 아닙니다. 우여곡절 끝에 처음 만난 날,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색깔 매니큐어를 칠하고 등장해 주변 사람들까지 놀라게 했습니다. 익힌 당근을 싫어하고 살라미 소시지를 좋아하는 식성도 똑같습니다. 옷 고르는 취향마저 비슷해서 상대방의 사진에서 같은 청바지를 입은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전문 기관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두 사람은 경쟁력과 창의력에서 거의 비슷한 수치를 드러냈습니다. 이해력, 계획력, 자제력 항목은 아예 그래프 높이가 똑같습니다. 보는 이들에겐 놀라운 일이지만, 검사기관 담당자는 대수롭지 않게 말합니다. “태어난 직후부터 헤어져 살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유전자를 지녔으니까요.”
하지만, 모두 똑 같은 건 아닙니다. 거의 비슷한 인지능력과 달리 감성적, 정서적 항목에선 두 사람이 큰 수치 차이를 보입니다. 흔히 말하는 ‘성격’적 측면입니다.
영화는 후반부에서 두 사람의 ‘차이’에 대한 힌트를 살짝 보여줍니다. 서로를 알아가던 중 사만다는, 자신과 달리 아나이스는 외로운 유년기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만다는 오빠가 둘이나 있는 집에서 시끌벅적하게 자랐지만, 아나이스는 형제자매 없이 외동딸로 자랐습니다.
 
특히 아나이스는 부모님과 다른 외모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습니다. 친구들은 아나이스에게 친부모가 버렸기 때문에 남의 나라에 입양된 거라고 놀렸습니다. 해외 입양이라는 같은 경험이 사만다와 달리 아나이스에겐 평생 지워지지 않는 큰 상처를 안긴 겁니다.
 
● 미국인 사만다 vs. 프랑스인 아나이스

앞서 유럽 거리에서 겪은 개인적 경험과 영국의 설문조사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사만다가 입양된 미국과 아나이스가 입양된 유럽 사이의 미묘한 차이 때문입니다. 유럽이 미국보다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미국은 인종차별이 매우 심각한 사회적 이슈인 나라입니다. 백인 경찰들이 무고한 흑인에게 총격을 가하는 사건만 해도 해마다 여러 건씩 발생합니다. 일부는 대규모 폭력사태로 이어져 국제뉴스가 되곤 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개인적으로 출장이나 여행길에 만난 미국의 ‘일반인’들에게선 피부색 때문에 거리를 두거나 차별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난 미국의 백인들은 하나같이 다들 유쾌하고 친절했습니다. 속마음이야 어떤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미국이라는 사회가 워낙 인종 갈등이 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 때문에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인종 갈등을 유발하는 상황을 경계하고 조심하는 태도가 일반인들 사이에 일상화돼 있다고 할까요? 사소한 문제라도 ‘인종’이 얽히면 엄청난 폭탄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두 알기 때문입니다.
 
반면, 유럽은 사회문제로 비화되는 대규모 인종 갈등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는 덜한 편입니다. 그런 탓인지 인종적 편견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조심성 면에서 유럽인들은 다소 ‘부주의한’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이 때문에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무심코 속내를 드러내는 경우가 미국에 비해 자주 있는 듯 합니다. 어디까지나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추론이긴 합니다만. 
▲ 이미지 출처 : 영화 '트윈스터즈'
 
● 인간의 성격, 유전 탓일까 환경 탓일까?

같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지만, 서로 다른 사회에서 다른 경험을 하며 자란 사만다와 아나이스의 모습은 인간의 성격에 미치는 환경의 영향을 한눈에 보여줍니다. 실제, 쌍둥이는 유전과 환경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가장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보이는 공통점과 차이는 그 동안 많은 학자들이 내놓은 연구 결과와도 일치합니다.
 
연구 결과, 신체적 특징과 운동능력은 유전의 영향이 매우 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태어난 직후 헤어져 살던 쌍둥이들조차 키나 생김새는 물론, 자세까지 비슷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지능력 역시 유전의 영향이 매우 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러나 성격은 상대적으로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유전과 환경의 관계입니다. 예전 연구에선 유전과 환경을 각각 독립된 변수로만 봤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선 유전과 환경이 서로 주고받는 영향에 대한 관심이 커 지고 있습니다. 유전적 특성에 의해 환경 자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태어날 때부터 잘 웃는 아이가 있습니다. 쳐다 보면 늘 방긋방긋 웃으니 주변 어른들이 좋아합니다. 너도나도 와서 말을 걸고 손을 잡아 흔들며 장난을 겁니다. 이 아이 주변엔 늘 사람들이 모입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자란 아이는 사람 만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는 아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흔히 말하는 외향적인 성격입니다. 타고난 사교적인 성격이 사교적인 환경을 만들고, 그런 환경이 외향적인 성격을 강화해 주는 셈입니다.
 
그럼 결국 다시 “모든 것은 유전자 탓”이 되는 걸까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지만, 학자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유전과 환경의 상호 작용의 결과다.” 너무 뻔한 답변이라고요? 그럴 수도 있지만, 원래 진리는 단순한 거 아닌가요?

▶ 사람 성격은 유전?…쌍둥이로 본 놀라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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