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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초과비행 거부했다고 '파면'…이뿐이 아니었다

대한항공, 다수의 비행시간 초과노선 운용…항공법도 위반 소지

[취재파일] 초과비행 거부했다고 '파면'…이뿐이 아니었다
- 대한항공, '초과 비행 근무' 거부했다며 조종사 파면
- SBS취재결과, 대한항공 다수의 비행시간 초과 노선 운용…항공법도 위반 소지 
- 초과 비행으로 항공법 위반시, 항공사 운항 증명 취소나 6개월 이내 운항 정지 

 
● '예고없이 닥치는 항공기 사고…답은 규정준수 뿐'

지난 19일, 러시아에서 두바이 항공기가 추락해 61명의 승객 전원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보다 하루 전인 청주공항 활주로에서는 남방항공 여객기와 대한항공 여객기가 하마터면 충돌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동안 조용하다가도 항공기 사고는 어느 순간 예고 없이 들이닥치곤 합니다. 항상 점검을 하고 규정과 메뉴얼을 정확히 지키는 것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런 단순한 명제를 쉽게 망각하곤 합니다. 
두바이 여객기 추락 사고 (출처 : AP)

● 실력 인정받던 조종사…'12시간 초과 비행' 거부했다고 '파면' 

지난달 23일 한 남성이 인천공항 지하 식당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조종사가 곧바로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실시했고, 남성은 의식을 회복해 제때 치료받을 수 있었습니다.

발빠른 조치로 소중한 생명을 구한 조종사는 최근 대한항공에서 파면된 박 기장입니다. 박 기장은 민간항공 조종사협회에서 유일하게 4년 째 기상레이더와 항공기 성능에 대한 강의를 조종사들에게 할 정도로 전문성을 높이 평가받았던 조종사입니다. 대한항공으로부터 'professional dedication 포상'을 받을 정도로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대한항공에 19년째 몸담았던 박 기장은 그러나 최근 파면됐습니다. 공군에서 비행기 조종을 시작해 28년 동안 일생을 비행과 함께했던 박 기장은 더 이상 조종간을 잡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박 기장이 파면된 이유는 "12시간 초과 비행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21일, 박 기장이 조종한 인천발 마닐라행 비행기는 예정보다 24분 늦게 현지에 도착했습니다. 이후 박 기장은 바로 이어 예정됐던 마닐라발 인천행 여객기를 조종할 경우 최대 12시간인 단체협약 상의 비행 시간 규정을 어기게 될 것으로 보고, 다른 기장이 조종하도록 했습니다. 승객들은 불편없이 제때 항공기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보름이 지난 이달 7일, 대한항공은 박 기장에게 '파면' 결정을 내렸습니다. 앞으로 기장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본다며, 최고 수위 중징계를 내린 겁니다. 대한항공은 박 기장이 고의로 항공기 출발을 지연시킨 뒤 시간 초과를 이유로 비행을 거부했다고 보았습니다. 단협 기준으로 비행 근무 시간이 12시간을 넘어선 안 되지만, 천재지변을 비롯한 '비정상 상황'이 발생하면 2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파면된 19년차 대한항공 조종사 박 기장

● 대한항공 다수의 운항 일정 '비행시간 초과' 확인…항공법도 위반 소지 

취재 결과, 대한항공이 말하는 이른바 '비정상 상황'으로 인한 비행시간 연장은 지나치게 잦았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박 기장의 경우와 같이 인천-마닐라-인천을 운항한 31편 중 18편이 12시간 비행 근무를 초과했고, 1월에는 31편 중 16편이, 2월엔 21편 중 7편이 초과했습니다. 많게는 절반 넘는 비행 편수가 정해진 비행 근무 시간을 초과한 겁니다. 

문제가 불거진 이번달에도 17일까지 벌써 4편이 비행시간을 초과했습니다. 애초에 이 운항 일정 자체가 단체협약 기준인 12시간 근무를 초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의미합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6월,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운항 스케줄 자체가 단협의 비행 시간 규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높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은 지금까지 이 운항 스케줄을 계속 유지해왔고, 조종사들은 회사의 방침을 따르느라 규정된 비행 시간을 넘겨가며 근무해왔습니다. 

확인 결과 마닐라 노선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인천-치토세-인천-부산 노선의 비행 시간은 13시간 20분, 인천-치토세-인천-후쿠오카-인천 비행 시간은 14시간 5분, 인천-니가타-인천-웨이하이-인천 비행 시간은 12시간 50분으로, 단체협약 기준인 12시간을 초과했습니다. 이 스케줄은 최소 한 달 이상 수개월 동안 거의 매일 반복되는 일정이었습니다.

특히, 인천-치토세-인천-부산 비행과 인천-치토세-인천-후쿠오카-인천 비행은 12시간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단체협약은 물론, 13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항공법에도 위반됩니다. 항공법 115조 3항에는 승무원을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승무시간, 비행 근무 시간 등의 기준을 초과해 종사하게 한 경우 국토부가 운항 증명을 취소하거나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해 항공기 운항 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 규정 지키자는 조종사에 '파면'…프랑스선 '지지'

대한항공측은 조종사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문제가 있는 운항 일정 전반을 바꿔야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규정을 지키자는 조종사에게 칼을 휘두르는 적반하장의 모습입니다. 땅콩 놓는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며 '땅콩 회항'이라는 세계적 이슈를 만들었던 대한항공이, 정작 승객 안전에 직결되는 법과 규정은 지나치게 자주 위반하고 있는 셈입니다. 

박 기장과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다른 해외 항공사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실례가 있습니다. 지난해 2월, 에어프랑스 항공기 조종사가 뉴욕발 파리행 비행기를 운항하던 중 근무 시간이 초과될 것을 우려해 영국으로 회항했는데, 항공사는 오히려 기장을 지지했습니다.

대한항공은 에어프랑스처럼 조종사를 격려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주 발생하는 비행 시간 초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조종사들과 협의하는 게 우선일 것입니다. 일이 발생한 뒤 보름만에 곧바로 '파면'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대한항공의 기업 문화를 또 한 번 여실히 드러낸 것입니다. 

● 직원은 통제의 대상? 전근대적인 오너 리더십 변해야 

대한항공이 소통 대신 징계나 불이익으로 문제에 대응한 건 이번 뿐만이 아닙니다. 비행 중인 조종사에게 면세품 판매를 위해 신용카드를 조회하도록 꾸준히 지시해왔다는 일이 언론을 통해 밝혀진 일이 있었습니다. ( ▶ 면세품 팔려고…비행중 조종사 위험한 카드 조회)

보도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대한항공은 모든 직원들에게 회사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하도록 하고, 서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줬습니다. 서약서엔 누설 금지 대상으로 "영업상 비밀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공개되지 아니한 정보는 모두 포함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켜 문제제기 자체를 봉쇄했습니다.( ▶ [단독] 대한항공 전 직원 '비밀유지 서약' 요구 논란) 직원들을 통제하고 입을 막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에도, 대한항공은 이를 되풀이해왔던 겁니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이런 문제가 오너의 전근대적이고 수직적인 리더십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최근 SNS에서 화제를 모았던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댓글은 직원들에 대한 오너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대한항공 김모 부기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행 전 조종사가 수행하는 업무가 많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조양호 회장은 댓글에 “조종사는 GO, NO GO (가느냐, 마느냐)만 결정하는데 힘들다고요? 자동차 운전보다 더 쉬운 오토파일럿으로 가는데 ..(중략).. 개가 웃어요. 마치 대서양을 최초로 무착륙 횡단한 린드버그 같은 소리를 하네요."라며 댓글을 달았습니다.

직원을 이끌고 아껴야 할 회장이, 공개적으로 그것도 '개가 웃는다'는 원색적 표현까지 써가며 자사 직원들을 폄훼한 겁니다. 공개적으로도 이러한데 내부적으로 어떻게 직원들을 관리할지 눈앞에 그려집니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회장의 딸 조현아 전 부사장이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는데, 이제 "그 애비에 그 딸"이란 씁쓸한 말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조양호 회장의 직원 폄훼 댓글

미국에서 비행기 넉대로 시작해 미국 대형 항공으로 빠르게 성장한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대한항공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제전문지 포춘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 가운데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이 항공사의 성장 비결이 '직원 만족'이라는 건 업계에선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직원들을 섬기고 만족시킬 때, 직원들이 고객을 섬기고 만족시킬 것이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겁니다. 잊을만하면 직원들에 대한 갑질로 언론에 이슈가 되는 기업에서 어떤 비전과 전망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 대한항공 조종사 3분의 2 '이직' 고려…지난해 46명 '해외 유출'  

안타깝게도 이미 적지 않은 조종사들이 대한항공을 떠나, 중국을 비롯한 외국 항공사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해에만 46명의 기장이 외국 항공사로 이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2012년 10명, 2013년 14명, 2014년 4명에서 급격히 증가한 수치입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설문조사 결과 대한항공 조종사의 3분의 2가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급여 수준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한 조종사의 입을 빌리자면, "더 이상 회사가 변화할 거란 기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적기로서의 위상은 물론, 비용 면에서도 큰 타격입니다. 이직하는 조종사들 대부분 숙련된 전문 조종사들인데, 이들을 훈련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국가로서도 큰 손실입니다. 그 자리를 저가 항공사에 있던 조종사들이 채운다면 손해는 승객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사고는 한 순간…법과 규정은 곧 승객 생명 

대한항공으로부터 버려졌지만 박 기장은 진심으로 대한항공을 위하고 있었습니다. 박 기장은 대한항공에 대한 희망의 끈을 아직 버리지 않았습니다.  

"대한항공은 제가 처음 입사할 때 사고가 많아서 제복 입고 비행 나갈 때 창피한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동안 조종사들이 굉장히 노력해서 이렇게 이뤘는데,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조종사들에게 법과 규정에 따른 절차는 생명입니다. 규정을 어겨도 당장은 문제가 눈에 보이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쌓이면 피해는 승객에게 돌아갑니다. 이 과정이 힘들지 모르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승객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하고 있는 겁니다. 19년 전, 공군을 제대하고 대한항공 들어올 때는 이 회사에 뼈를 묻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대한항공에 남아서 안전하게 비행하고 싶습니다."

박 기장은 대한항공 측에 징계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한국민간조종사협회도 나서서 "최대 비행근무시간을 넘겨서 비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파면을 즉각 철회하라는 성명을 냈습니다. 대한항공의 결정은 더 이상 박 기장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규정과 법, 승객의 안전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제 대한항공의 결정만 남았습니다. 
[취재파일] 19년차 조종사는 왜 대한항공에서 파면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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