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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이란 총선 취재기 ② 이란에 개혁파가 있나?

이란 총선에서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하는 정파들이 이슬람 원리주의에 완승을 거뒀습니다. 로하니 대통령이 이끈 핵 협상 타결, 서방과 경제 협력을 이란 국민들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증겁니다.

이번 총선 결과에 이란과 서방간 경제 협력의 향방이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언론이 이번 선거를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제목은 ‘개혁파의 승리’ 입니다.

이란은 정당이 없습니다. 때문에 서로가 주장하는 이념에 따라 정파를 구분합니다. 세계 각국의 언론은 이란의 정파를 개혁파와 온건파(중도파), 보수파로 나눕니다. 저 역시 이렇게 나눴습니다. 그런데 이게 맞는 것일까요?
● 개혁과 보수

개혁이 뭘까요? 사회제도 및 정치체제의 본질적인 요소를 유지하면서 일부분만을 사회의 발전에 적합하도록 변혁시키는 것을 말한다고 사전에는 적혀있습니다. 영어로는 ‘reform’ , 형태를 다시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 돌풍을 몰고 온 개혁파는 어떨까요? 이들은 이란의 무엇을 바꾸려는 걸까요? 

먼저 사회.정치 제도 면에서 이들 개혁파가 바꾸려는 것은 없습니다. 이들은 다만 관계를 바꾸려는 것입니다. 오랜 침체에 빠진 이란 경제,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이들은 개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서방과 교류·협력·투자를 통해 이란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자고 말합니다. 그래서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핵 개발도 지지합니다.

개혁파의 리더 격은 라프산자니 전 이란 대통령입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를 한 명이 아닌 다수를 두자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어찌 보면 파격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신정일치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라프산자니는 호메이니를 도와 이란 혁명을 주도한 혁명 1세대 인물입니다.

물론 대통령을 되면서 여성의 사회 참여를 확대하고 이슬람 율법에 근거한 극형을 반대해 개혁주의 행보를 걸어왔지만 그렇다고 이란의 뼈대요 기틀인 신정일치의 이슬람 원리주의 체재를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이란에 취재를 갔을 때 우연히 한국 외대의 서정민교수를 만났습니다. 총선과 관련해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서 교수 역시 이란이 정말 개혁이 가능한 나라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란이 선거로 대통령도 뽑고, 의원도 뽑으면서 민주주의 형태를 갖춘 듯 하지만 실제로는 최고지도자가 된  이슬람 성직자 한 명이 뭐든지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도록 돼 있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호메이니가 천재라고 하시더군요.

혁명으로 왕정을 뒤엎고 민주적인 지도자 선출제를 만든 듯 하지만 사실은 또 다른 왕정을 이슬람이란 이름으로 만든 것이라는 거죠. 이런 나라에서 정치개혁은 쉽지 않은 구조라는 겁니다.
로하니 이란 대통령(좌)과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우)
제 관점에선 개혁파. 중도파. 보수파 모두 보수성향입니다. 온건보수파, 보수파, 걍경보수파가 더 맞는 표현이라고 여깁니다. 언론에서 칭하는 개혁파도 ‘개방파’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리지 모릅니다. 그러자니 서로를 구분하기도 힘들고, 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이니의 대치점에 있는 정파를 손쉽게 구분 짓기 위해서라도 개혁파라고 부르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 역시 오른쪽도 왼쪽도 아닌 가운데를 중도파라고 할 때 그 좌우를 개혁과 보수로 나누는 게 시청자들이 이란 정치판도를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해 개혁과 중도, 보수로 나눴을 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보수파로 불리는 이란 정치인도 자신들을 보수파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슬람 원리주의라고 자칭합니다. 이슬람의 근본가치를 지키고 외세로부터 이란을 지키는 게 자신들이 주창하는 정치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총선 때 후보자들에게 설문지를 돌려서 진보인지 보수인지 성향을 따져봤더니,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는 정치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진보적 보수라는 말장난까지 나오겠습니까? 이란 역시 마찬가집니다.

보수라는 단어는 기존의 것을 지키고 보존한다는 참뜻에서 벗어나 변화를 무조건 거부한다는 부정적인 단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도 스스로를 보수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란 시민조차 ‘보수파’란 말을 쓰지 않습니다. 혁명을 이룬 나라에 보수가 웬 말이냐는 거죠.

우리가 편의상 부르는 이란의 '개혁파'는 우리가 생각하는 '개혁파'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개방을 지지하지만 이란에 종교경찰을 없애고 여성을 히잡에서 해방시킬 생각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 선거 이후 이란은?

이번 선거로 이란 국민의 요구는 확인됐습니다. 개방을 통해서 경제 발전을 이루자는 겁니다. 그래서, 서방과 다시 손 잡은 로하니 이란 대통령을 지지한 겁니다. 지난해 7월 핵 협상 타결 직후 이란 국민은 거리에 나와 환호했습니다. 오랜 서방의 제재를 이겨낸 이란의 승리라고 외쳤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이제는 좀 먹고 살만해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8개월 만에 다시 찾은 이란은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테헤란엔 외국인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이란에 돈 보따리를 풀어놓은 중국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길에서 만난 이란인의 첫 마디부터가 중국인이냐고 묻는 “치니?” 입니다. 답은 “코레”지만… 동양인은 다 중국인으로 여길 정도로 중국인들이 대거 들어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번 총선 결과에 주목하던 유럽도 로하니의 개방정책이 순풍을 탈 수 있는 결과가 나왔으니 앞으로 더욱 더 이란 진출을 서두를 겁니다. 이란 경제는 장기적으로 빠르게 성장할 것 입니다. 하지만, 제재가 풀린 건 지난 1월,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란인의 삶은 아직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제재가 풀릴 때까지 기업마다 돈을 풀지 않으면서 오히려 서민의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졌다고 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7월 가봤던 재래시장을 또 가봤습니다. 주부들은 핵 협상 타결 이전 물가승상률이 50%까지 치솟았던 물가 불안은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라고 말합니다. 그 안정된 상태는 더 이상은 오르지 않는다지 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전히 고물가에 허덕이고 있다는 얘깁니다.
제재해제로 이란은 원유도 더 많이 팔고, 해외에 묶인 1천억 달러도 되찾게 되면서 돈이 넘칠 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많은 돈이 들어올 수 있겠지만 경제 성장의 순풍은 아직은 서민의 피부까지는 다가오지는 않았더군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 국가 위원의 중요성

앞으로 이란의 경제상황은 정부가 개방정책을 얼마나 더 밀고 나갈지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총선결과를 봤을 때 일단 긍정적입니다. 무엇보다 총선과 함께 치른 국가 위원 선거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도 개혁.중도파 연대가 88석 가운데 52석을 차지해 과반을 넘겼습니다. 국가 위원은 이란 최고 지도자의 후계자를 결정하는 자립니다.

현재 최고 지도자는 강경 보수파인 아야톨라 하메이니입니다. 핵 협상 때 뭐든 꼬투리를 잡고 사사건건 반대했던 인물입니다. 물론 그 이면엔 강경한 태도를 보여주면서 이란에 협상이 유리하게 돌아가도록 한 정치적 술수가 있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로하니 대통령이 핵 협상을 타결했다고 하지만 사실 최고 지도자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메이니의 나이는 77살입니다. 암투병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국가위원 임기는 8년입니다. 즉 하메이니의 후계자를 이번에 선출된 국가위원이 결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겁니다. 테헤란 선거구에서 개혁파의 리더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1위,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런 추세를 볼 때 차기 최고  지도자는 개혁.중도성향의 인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되면 이란은 좀 더 문을 열 것입니다.

이란의 최대 당면과제는 낙후된 산업기반을 개선하는 것 입니다. 그런데 당장은 돈이 없습니다. 제재가 풀렸다지만 돈이 들어오고 나갈 금융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위해선 최소 몇 달은 더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물건을 팔기 보단 투자를, 투자보단 합작 생산을 원합니다.

이란에서 돈을 벌고 싶은 나라는 돈을 들고 와야 합니다. 투자자 측면에서는 투자지의 사회.정치적 안정성이 보장돼야 합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돈을 싸 들고 오긴 힘듭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총선의 결과는 큰 의미를 지닙니다. 지금의 개방정책이 꺾이지 않고 지속될 것이란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 이란이 보는 ‘코레’ 한국

우리나라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국-이란 경제 공동위원회를 10년 만에 재개했습니다. 산업부 장관을 비롯해 수백 명의 경제사절단이 이란 총선과 맞물려 테헤란을 방문했습니다. 이란의 오성급 호텔과 한인 민박집의 방이 동날 정도로 많은 한국인이 이란을 찾고 있습니다.

테헤란에서 우리 정부는 이란 정부를 상대로 적극적인 경제 외교를 펼치고 있고, 기업인들도 이란 진출에 유리한 포석을 하기 위해 전방위로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포스코와 한국전력 등 대규모 기업들이 이란의 기업.정부와 대규모 플랜트 개발 등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이런 한국을 이란은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을까요? 진정한 동반자로 보고 있을까요? 일단 한국에 대해선 ‘양금이(대장금)의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뛰어난 기술력은 가진 나라로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한 켠에는 얄미운 나라로 보기도 합니다.

실제로 테헤란에서 국내의 한 신문사가 주최한 만찬연설에서 이란 석유부 차관이 직접적으로 ‘한국과 관계가 멀어졌다’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제재기간 한국이 보여온 태도에 대해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우리 입장에서야 미국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사정이었지만요.)

그러면서도 제재로 서방국과 경쟁이 없는 틈을 타서 돈은 착실히 벌어간 나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이란에 투자도 하고 기술도 나눠주면서 동반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이란 무역진흥청입니다.

이란의 선조들은 페르시아 상인으로 불리며 중세 무역을 주도했던 사람들입니다. 본전을 확실히 따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워낙 적이 많은 역사를 지녀서인지 관계를 중요시 합니다. 당장의 이득보다는 꾸준히 곁에 있어준 나라들은 ‘친구’라고 대놓고 부릅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이란에게 그저 ‘ONE OF THEM’으로 여겨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한-이란 경제공동위 본회의가 끝난 뒤 양국 산업부 장관의 기자회견이 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란 기자가 단 한 명도 오지 않아 취소됐습니다. 이란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아직은 이런 수준입니다.

돈만 쫓는 한국이 아니라 아시아의 동반자로 인식되는 한국이 되기 위해선 지속적인 관계 유지와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란에 진출하려는 우리가 유념해야 할 대목입니다.  

▶ [월드리포트] 이란 총선 취재기 ① 1인 30표 행사, 마라톤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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