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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자료유출자 잡아라"…총리실 소동

[취재파일] "자료유출자 잡아라"…총리실 소동
● 공직복무팀 동료 공무원 소환조사

세종청사가 어수선하다. 총리실 공직복무관리팀이 유례없이 활약 중이다. 규제 개혁 관련 자료를 유출한 공무원을 찾고 있는 중이다. 지난주 금요일(19일) 동아일보에 나온 규제개혁 기사 때문이다. 총리실에서 만든 자료를 누군가 유출시켰다는 것이다. 

화요일(23일) 총리 주재 규제현장점검회의에서 보고될 내용이 미리 언론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지자체 공무원이 인허가 기한 내 통지를 안 하면 자동으로 인허가 된 것으로 처리하는 '자동인허가제'나 소극 행정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공무원은 최고 파면까지 가능하도록 징계 수위를 높이는 내용 등이다. 총리 행사 뒤로 엠바고를 걸기로 기자단과 합의하고 공지를 앞두고 있었다.

공보실 직원이 공지 하는 것을 깜박 잊고 있는 사이 일이 터졌다. 엠바고로 알고 있던 기자들이나 총리 행사를 빈껍데기로 만들게 된 공무원들은 발칵 뒤집혔다. 기자들 항의로 부랴부랴 오전 11시 긴급 브리핑이 열렸다. '장'자로 직위가 끝나는 고위급들은 소리를 질러댔다.

엠바고 공지를 '깜박'한 공무원은 넋이 나갔다. 누구보다 화가 난 사람은 이석준 국무조정실장이다. 기재부와 미래부 차관을 거쳐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이 된 지 두 달도 안 된 시점이다. 앞선 두 부처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공직복무팀에 누가 자료를 유출시켰는지 잡아내라고 지시했다.

● 유출 자료는 2016년 규제개선계획안

처음에 유출된 것으로 의심되는 자료는 두 가지였다. 둘 다 총리실 규제조정실에서 작성했다. 하나는 규제현장점검회의에서 쓸 자료고, 다른 하나는 국무회의에 보고할 '2016년 규제개선계획'이다. 위에서 언급한 지방규제 개선 관련 핵심 내용은 비슷하다.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규제 관련 공무원들은 어떤 자료가 유출됐는지 알 수 있다.
이석준 국무조정실장
특히 이석준 실장은 금방 국무회의 보고용 자료로 판단했다. 바로 전날(18일) 오후 5시 자신이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주재해 점검한 자료였다. 민감한 국회 문제도 거론됐기 때문이다. 의원입법을 규제의 온상으로 봤다. 이를 개선하기위해 의원입법에 대해 비용을 계산해서 공개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의원입법이 발의되기 전에 미리 규제영향평가를 받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의 통과에도 힘을 모으기로 한 계획도 있다. 이 실장은 당장 국무회의에 보고하기 보다는 보완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관계 부처 차관들에게 점검을 지시한 자료였다.

● "일할 맛 떨어진다" 공무원 불만

이 자료가 그대로 공개됐으니 이 실장의 입장이 난처할 만도 하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유출자를 찾아 징계해서 일벌백계(一罰百戒)하자는 의지일 것이다. 그래서 총리실 공직복무팀이 동료들을 소환 조사하고 있다. 통화 기록이나 이메일 기록을 조사에 이용한다.  해당 기자와 왜 통화했는지, 무슨 내용을 주고받았는지 추궁하는 것이다. 

반나절을 조사받은 한 공무원은 입이 나와 있었다. 말을 아꼈지만 불만과 원망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잡아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엄청 강압적이었다"고 전했다. 조사를 받은 다른 공무원은 "일 할 맛이 나겠어요?"라고 반문했다. 고위공무원인 국·실장들도 예외 없이 조사를 받았다.

총리실의 규제조정실은 물론 공보실 공무원들이 주 조사 대상이었다. 두 부서는 특히 현장점검회의 홍보를 위해 기자들과 접촉이 잦았다. 믿음이 있는 기자에게는 내용을 다 알려주기도 했다. 행사가 끝난 뒤까지 엠바고라는 것을 출입기자들은 다 알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 한 것이 조사받는 이유가 돼버렸다.

기재부, 국토부, 행자부 등 관련부처 공무원들도 조사를 받거나 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이 실장 주재로 열린 차관회의에 참석한 부처 차관들은 조사에서 제외됐다. 

● 2014년에도 문건 유출자 색출 소동

자료 유출자 색출 소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11월에도 관가가 발칵 뒤집혔다. 정부가 독도 입도지원시설 건립 계획을 백지화하기로 한 총리주재 관계부처 장관회의 문건이 유출된 것이다. 총리실, 외교부, 해수부 공무원들이 조사 대상이었다.

그 때 곤욕을 치른 공무원들은 지금까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한다. 퇴직한 공무원들도 많다. 전 정권 때 좋은 직책에 있더니 이 정권 물 먹이려고 문건 유출했나? 라는 모욕적인 질문도 들었다. 모 기관에 불려가 단단히 주의를 듣기도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경고였다.

그렇게 공무원들의 사기를 땅에 떨어지게 만들면서도 정작 유출자가 누군지는 찾지 못했다. 기자들만 곤욕을 치르는 공무원들에게 미안했다. 독도 시설물 건립 백지화가 그렇게 국민들에게 알리면 안 되는 사안이었는지, 그리고 국익을 그렇게 해치는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 그렇게 화낼 일인가?

규제개선계획 자료도 그렇다. 규제개선 계획이 메이저 신문 1,2면에 자세히 보도되는 일은 드문 일이다. 특히 '자동인허가제 시행' 같은 지방규제 개선안이 미리 자세하게 소개됐다. 확정되지 않은 내용이 공개되기는 했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새로운 규제를 양산하는 의원입법 문제는 정부의 문제제기로 공론화가 필요한 사안이다.

한 기업 임원은 "이 실장은 화를 냈지만 국민은 웃을 일이다"라고 말했다. 고위공무원은 "청와대도 웃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기사를 못 쓰게 된 기자들과 규제실, 공보실 공무원들은 화를 낼만 하다. 기자들은 현장점검회의 행사가 끝난 뒤 기사를 쓰기 위해 준비를 해왔다. 

일부 신문기자들은 미리 기사를 써놨고, 방송기자들은 현장과 인터뷰할 사람을 섭외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엠바고인 줄 뻔히 알면서 기사를 쓴 기자를 욕하지 자료를 다른 기자에게 준 공무원을 탓하지는 않는다.

● 억울한 희생양 나오지 않아야

금요일 현재 누가 자료를 유출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예상컨대 찾아내기는 힘들 것이다. 2년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기사를 쓴 기자는 조사하지 않을 것이다. 조사를 한다 해도 취재원 보호를 목숨처럼 여기는 기자들이 입을 열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통화기록과 이메일, 그리고 공무원의 진술에만 의존하는 조사는 별 기대할 게 없을 것이다. 찾지 못한다면 괜한 공무원이 의심을 받고 희생양이 되는 식으로 마무리 될 것이다. 그건 일벌백계가 아니다. 사기만 떨어지게 만드는 일이다. 

공직복무팀이 동료들을 소환해 엄포를 놓는다는 얘기를 들으면 웃음이 나기도 하고 화도 난다. 공무원들에게 일 할 맛 떨어지게 하는 조사 소동이 안보, 경제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지금 세종청사에서 계속돼야 하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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