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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무성의 '상향식 공천' 실험은 성공할까.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본 '상향식 공천'

[취재파일] 김무성의 '상향식 공천' 실험은 성공할까.
역시 선거철인 모양입니다. 새누리당 내 비박계와 친박계의 계파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붙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상향식 공천’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결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박계는 이를 지지합니다. 권력자가 일방적으로 후보자를 정하는 ‘전략공천’을 배제하고, 민의를 반영하기 위해 여론조사로 공천하겠다는 겁니다.

친박계는 반대합니다. 여론조사는 이름이 알려진 현역 의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물론 이건 둘 다 표면적 명분입니다.

친박계는 현역 의원들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다며 물갈이를 기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실한 친박, 이른바 ‘진박’을 공천하겠다는 의도가 읽힙니다. 비박계는 당연히 반발합니다. 자신들을 물갈이 하겠다는 데 좋아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해보려 합니다. 김무성 대표의 ‘상향식 공천’은 옳고 정의로운 공천 방식인가.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지만, 계파 갈등에 매몰돼 별로 거들떠보지 않았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미국의 철학자 존 롤즈는 ‘순수한 절차적 정의’란 개념을 내놓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과정입니다. 경제적 수준, 성별, 종교 등 여러 사회적 조건에 따라 옳고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부자에게는 감세가 정의겠지만, 가난한 사람은 증세가 정의입니다.

각기 처한 상황이 다르고 판단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은 정의를 규정하는 걸 무척 복잡하게 만듭니다. 이 문제에 대한 롤즈의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옳은지 그른지 따져보기 위해선 절차를 순수히 따랐는지 보라는 겁니다. 즉 절차가 공정했다면 그 결과 역시 공정하다는 결론입니다.

여기서 반박이 들어옵니다. 절차가 합리적이라고 결과가 다 합리적일 수 있는가. 가령, 도박의 예를 들어보죠. 공평한 룰이 있고, 그 룰에 따라 돈을 따가고 잃는데, ‘순수한 절차적 정의’의 개념 그대로라면 도박도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어쨌든 절차를 따랐고, 그에 따라 돈이 분배됐으니까요.

롤즈는 이런 우려를 색다른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현실에서 가능성이 없는 상황을 가정하는 일종의 사유 실험입니다. 경제적 수준, 성별, 종교 등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모르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롤즈의 표현대로라면 ‘무지의 장막’입니다. 이 무지한 사람들이 여기서 정의로운 게 뭔지 열띤 토론을 벌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모르기 때문에 객관적인 토론이 가능하고, 결국 합리적인 정의에 합의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결과물이 학창시절 때 배운 ‘정의의 두 원칙’입니다.) 도박의 경우를 대입해보죠. 이런 무지의 장막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도박을 잘하는지, 잘 못하는지, 또 내 밑천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도박이 정의롭다고 합의하진 않을 겁니다. 내가 도박을 잘할 수도 있지만,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는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정의로운가를 판단할 때, 내가 부자인지 가난한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기독교인지 불교인지, 내가 어디에 사는지, 이런 배경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역 논리, 혹은 진영 논리에 따라 정의가 제각각인 우리 사회, 롤즈가 던지는 ‘무엇이 옳은가’를 추적하기 위한 사유실험과 그 고민은 우리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줍니다. 절차적 정의가 이따금 무시되는 우리 정치권에 시사하는 의미는 더욱 큽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이제 새누리당 공천 기준 이야기를 꺼내보겠습니다. 김무성 대표의 상향식 공천이 옳은지 그른지 롤즈의 사유 실험을 그대로 적용해 보려 합니다.

여당 내 공천관리위원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이 사람들은 무지합니다. 자신이 친박인지 비박인지 계파를 모릅니다. 심지어 자신이 현역 국회의원인지, 원외 인사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장애인인지 비장애인인지, 청년인지 아닌지 역시 아무 것도 모릅니다. 어느 한 쪽의 이익에 매몰되지 않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이제부터 정의로운 공천 기준을 정하기 위해 토론을 벌입니다. 과연 이들은 어떤 공천이 옳다고 결론내릴까요.

이런 가정이라면 ‘국민 공천제’가 정의롭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 같습니다. 자신에 대해 무지한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공관위원)들은 새누리당이 공당이기 때문에 일반 기업과 달리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데 합의할 겁니다.

따라서 민의를 반영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볼 겁니다. 공천 과정에서 민의를 따르는 최적의 기준은 당원들보다는 국민에게 그 의사를 직접 묻는 방식입니다. 결국, 국민 공천제는 이런 절차 정의 관점에서 옳습니다.

물론 국민 공천제의 한계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할 겁니다. 자신에대해 아는 게 없는 공관위원들은 국민 공천제가 이름이 알려진 현역의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입을 모을 겁니다. 민의를 묻는 여론조사 과정도 다 돈인 만큼, 돈이 많은 후보에게 좋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여론조사 특성상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도 나옵니다. 다시 토론이 시작됩니다. 이 한계에 대한 보완책은 있는가. 아니면, 그 한계가 워낙 심각해서 민의를 반영하겠다는 원칙이 되레 훼손되는 것은 아닌가, 그러니까 상향식 공천을 포기해야 하는가. 이 공론장의 공관위원들은 상향식 공천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공당으로서 민의를 반영하겠다는 대원칙은 워낙 중대하기 때문에, 한계에 대한 보완책을 먼저 생각하는 게 맞다고 결론내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계파적 이익이 개입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대표적인 게 경쟁력 있는 후보를 전략공천 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자신의 계파를 꽂기 위한 논리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공관위원들은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경쟁력 있는 후보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사람들 아니겠느냐, 당연히 경선에서 승리할 사람들이다, 전략공천을 하던 국민 공천제를 하던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테니 민의를 반영하겠다는 대원칙을 지키자고요. 중요한 건 바로 민의를 반영하겠다는 의지라고요.

맞습니다. 이건 말 그대로 원칙에 불과합니다. 계파의 이익이 반영되기 시작하면 훨씬 많은 반박이 나오게 될 겁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런 새누리당의 계파적 이익을 계산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 완곡하게 표현하자면, 이건 새누리당 사정이지 유권자들의 사정이 아닙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 공천제로 새누리당이 승리할 수 있겠느냐며 걱정해 줄 이유가 없습니다. 언론은 그들의 공천 기준이 민의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정의의 관점에서 옳은지 그른지, 판단해 주기만하면 족합니다.

권력 투쟁을 계파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스포츠처럼 중계하는 상황 속에서 옳고 그름의 문제는 지금껏 희석돼 왔습니다. 국민의 대표를 뽑는 총선, 공당의 공천 과정을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안타깝습니다.

정무적인 판을 잘 읽어야 유능한 언론, 뛰어난 기자가 되는 현실 속에서, 정의의 관점에서 정치 현상을 해석한다는 건 어쩌면 순진한 발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좀 더 고지식해지고 싶습니다.

정치 역시 정의의 연장선에서 다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새누리당의 공천 기준은 과연 옳은가. 정말 정의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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