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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에게 목숨 맡기느니…" 출소를 거절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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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전 2월 중국에 있는 뤼순 감옥. 여느 때처럼 이곳엔 영하 20도를 맴도는 혹독한 추위가 찾아왔습니다. 그날 그곳엔 독립운동을 한 죄로 7년 동안 옥살이를 했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요, 민족사학자요, 언론인이었던 단재 신채호 선생입니다. 그는 감옥 생활뿐만 아니라 오랜 망명 생활과 혹독한 추위 등으로 건강을 잃어 갔습니다. 급기야 치료가 어려울 정도로 악화됐습니다. 형무소 당국은 가족들에게 병보석 출감을 통보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병보석을 받기 위해서는 보증인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도 경제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부유한 사람이 보증을 서야 했습니다. 가족들은 친척 중 한 부자를 설득해 병보석을 신청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신채호 선생은 고개를 단호히 저었습니다. 가족들의 권유와 설득에도 그는 결연하게 절대 그 사람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기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가족들이 보증인이라고 세운 사람이 당시 친일파로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기개를 꺾고 싶진 않았던 것입니다. 타협을 거부했던 그는 1936년 2월 18일 차디찬 감옥 바닥에 뇌일혈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여기도 화기라고는 조금 없고, 시멘트 바닥에 다다미 몇 장, 홑이불 정도 밖에 안 되는 얄팍한 이부자리 속에 아버지가 누워 계셨다." - 신채호 선생의 아들 신수범 저서 중 

연락을 받고 형무소로 갔던 가족들의 증언은 신채호 선생이 얼마나 열악한 곳에 있었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두 시간 정도일까, 기껏 좋아야 오늘 자정을 못 넘길 것이오." - 신채호 선생의 아들 신수범 저서 중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는 신채호 선생을 면회하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고 가족들은 형무소에서 쫓겨나듯 나와야 했습니다.

언론인으로서 친일파의 매국행위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사학자로서 민족 얼을 바로 잡는 민족 사관의 기틀을 세우고 독립운동가로서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매진했던 단재 신채호 선생. 일제 앞에 고개를 숙일 수 없다며 고개를 든 채로 세수했던 그는 80년 전 오늘, 1936년 2월 21일 5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SBS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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