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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브리핑] 고영환 "김영철 대남비서 승진 후 성과 내기 위해 암살 지령 내린 듯"

오늘(19일)은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과 함께합니다.

Q. 부원장님 암살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하는데 이런 건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저는 경찰에게서 1월 중순에 전화를 받았고요.

Q. 1월 중순이면 지난 달에?

지난 달에 전화 연결을 받았고 활동을 좀 달리하고 동선을 달리하며 경찰 역량이 대폭 증강할 것이라고 통보를 받았고 그날 저녁으로 경찰이 8명으로 증강이 돼서 무장경찰이 지금 24시간 집앞에서, 연구원 앞에서 대기하고 있고 그런 상황이죠. 지금.

Q. 아까 방송 준비하면서도 경호원들이 보이던데 오늘은 몇 명과 같이 오셨습니까?

위에 3명이 와있고 밑에 2명이 와있고 지금 5명이 와있죠.

Q. 97년에 오시지 않았습니까?

91년도에 왔습니다.

Q. 91년에 오셨는데 지금 가장 강한 경호입니까? 어떻습니까? 그 전에도 8명씩이나 이렇게 한 적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이한영씨가 김정일의 처조카. 김정은과도 친척이 되는 이한영씨가 97년도에 분당 아파트에서 피살이 됩니다. 북한 공작원에게 피살이 되는데 그때 5명으로 늘어나서 한 6개월 정도 갔거든요. 그런데 지금처럼 이렇게 8명씩으로 늘어난 거는 제가 와서 25년 동안 처음 있는 일입니다.

Q. 1월 중순에 연락 받았다 그랬는데 그때 어떻게 북한이 예민하게 그렇게 반응하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제가 방송활동은 계속 해왔고요. 그런데 특별한 이유는 그때에 와서 특별히 제가 논조를 더 강하게. 저는 방송을 그렇게 강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데 제가 유추를 해보건데 지난해 12월 29일 날 김양건 대남비서가 교통사고로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리고 제가 알건데 1월 초가 되자마자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대남비서로 고속승진을 해서 임명이 됩니다.

그게 핵실험 전으로 파악을 하고 있는데 핵실험 전에 대남비서로 공작파괴전문가가 있고 핵실험이 있었고 그러면서 어떤 그 사람들이 나름 무슨 조치를 취한다고 그러니까 당대회 맞으면서 나름 대남 분야에서 성과를 내겠다고 무슨 일련의 조치들을 취하는 중에 아마 제 이름도 나오고 다른 한국의 요인들 이름도 직접 나오고 집행해야할 부서는 북한군 정찰총국이 이것을 집행을 하라, 그래서 현실적으로 지금 제가 알건데 몇 분이 지금 경찰경호가 대폭 강화된 것으로 알고 있고 그래서 지금 상황 같으면 제가 와서 26년째인데 처음 있는 일입니다.

무장경찰관이 집 문 앞에서부터 연구원 문 앞까지 제 사무실 앞까지. 그러니까 도어 투 도어로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라 좀 불편도 하고 그렇지만 어쨌든 이런 것을 통해서 북한이 얻고자 하는 목적도 있으니까 저도 좀 아무래도 주위를 잘 살피면서 다니게 되고 또 아무래도 좀 마음이 심란하죠.

Q. 과거 언론에서 보면 피가 묻은 도끼가 배달되기도 했다 그랬는데 어떤 식으로까지 협박을 받아봤습니까?

제가 97년경에 고난의 행군 때 국제전화를 한 번 받았는데 그때는 투박한 말씨의 어떤 말투가 딱 보니까 보위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떠들지 말고 조용히 살아라 죽여 버리겠다는 말을 들었었고 그 다음에 2004년도 3월 8일 날 탈북자 동지의 사무실로 소포가 하나 배달이 됐는데 거기에 피 묻은 칼에 같이 왔고 거기에 이제 황장엽, 김덕홍, 고영환을 꼭 죽여 버리겠다.

그래서 그 피 묻은 칼을 후에 물어보니까 그 피가 돼지 피라고 그러더라고요. 사람 피는 아니고. 그리고 그 후에도 여러 번 그런 기도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서 제가 실제 살고 있는 집을 물색하고 다닌다, 이런 것들을 저한테 귀띔해주는 부서도 있었고요. 그렇지만 이번처럼 그렇게 아주 정말 심각하게 해서 정말 주의를 하기 바란다. 그래서 이번처럼 심한 적은 처음입니다.

Q. 그리고 91년도에 그때 외교관을 하시다가 망명하셨는데 북한으로 봐서는 되게 그런 우리 외교관의 망명이 뼈아팠을 텐데 그 당시 상황을 간단히 설명을 해주시죠.

91년도에 제가 왔는데 제가 온 이후에 김정일이 내가 없는 살림에서도 달러를 주면서 외교관들을 극진히 보살폈는데 도망쳤다니 말이 되느냐. 엄히 처벌하라 그래서 가족들이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어머니는 수용소 들어가셔서 8개월 만에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후에 들었고요.

제가 1953년 7월 27일 휴전 이후에 한국에 온 첫 번째 외교관입니다. 북한 외교부가 생겨서 외교 여권을 가지고 외교관으로 온 거는 처음이거든요. 그러니까 북한으로서는 굉장히 김정일이 당시에 화를 많이 냈고 그리고 많이 그때 소란스러웠다 그럽니다. 외교부가. 평양에 소문이 다 퍼지고.

Q. 평소 경찰 경호 받는 탈북하신 분들은 한 어느 정도나 됩니까?

제가 알건데 한 5,6명 정도로 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그리고 인원수에 따라서 차이는 있는데 어쨌든 이번처럼 그렇게 확 드러난 경우는 제가 처음 보는 경우고 한 5,6명 정도가 지금 경찰이 경호를 수명이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Q.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대로 탈북하신 분들 많고 우리 고위 인사들이죠. 김관진, 윤병세 외교장관, 홍용표, 한민구 장관들도 거론이 되고 있는데요?

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명시가 돼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름이 정찰총국에서 어디에 가는 지령에 제 이름도 있었고 한국 정부 요인들도 있었고 그것을 어느 시점까지 어떻게 하라.

그래서 구체적인 지시가 내려와서 그래서 경찰도 또 더 나아가서 국정원도 바짝 긴장을 하고 있는 거고 이게 무슨 의미인가 하면 북한이 1월 달에 핵실험을 했지 않습니까, 2월 달에 미사일을 쐈고 그리고 5월 달에 당대회를 합니다.

7차 당대회. 36년 만에 당대회를 하는데 북한으로서는 어떤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을 하는가 하면 지난 해 10월 달에 7차 당대회를 올해 5월 달에 한다고 발표할 때 이 사람들이 뭔가 큰 거를 준비하고 있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이 핵실험이었고 미사일이었고 이제 3,4월 달에 우리도 어떤 정치 일정도 북한도 5월 달에 큰 정치 일정이 있고 또 군사훈련도 있고 이러니까 북한으로서는 지금 즉 말하자면 긴장도를 올려야 되는 상황이거든요.

근데 우리도 지금 상당히 긴장도가 올라가 있는 상황 아닙니까, 미국에서 대통령이 세컨더리 보이콧 했죠. 일본 독자 제재 한다 그랬죠. 중국도 제가 봐서는 처음부터 제가 방송에 나와서 이야기를 하지만 정책을 결정하는 게 느리다 중국 사람들이. 그런데 일단 결정을 하면 그 사람들 집행을 한다. 그것이 유엔안보리 결의로 나올 거고 훈련하고 전략 자산들이 들어오고 하니까 저 사람들로서는 당장은 전면전은 저는 제로라고 생각합니다.

전면전 가능성은. 북한도 바보는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미군과 붙어 싸운다는 생각은 못할 거고 국지전 가능성도 후방테러 가능성보다는 훨씬 낮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러니까 그 어떤 상징적인 인물을 암살을 하든가. 그건 몇 명이 내려와서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리고 흔적을 찾지 못하면 심증은 있지만 확증은 없을 때 과연 어떻게 우리가 보복을 하겠느냐.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그 어떤 테러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물건을 놓고 갔는데 빠져 나오는 경우에 그것이 폭발이 일어났을 때 엄청난 패닉이 조성되고 이건 휴전선에 포가 쏴지고 이런 것하고 전혀 다른 상황이거든요.

그러니까 완전히 패러다임이 바뀌는 상황을 걱정을 하는 거고 김정은으로서는 어떤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가 하면 1월 핵실험, 2월 미사일 발사, 3월 4월 달 어떤 후방테러나 사이버 테러 같은 것을 해서 급 긴장된 분위기를 끌고 가서 자기가 몰려오는 전쟁의 먹구름을 자기가 다 몰아내고 7차 당대회를 성공적으로 열었다.

그러면서 68년도 푸에블로 사건 생각 나시죠. 푸에블로 사건 이후에 김일성이 내가 그때 전쟁을 막았다. 그래가지고 김일성의 지위가 올라가면서 후계 체제가 굳어지는 거거든요. 김정일. 아마 똑같은 그림을 그릴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Q. 북한 내에도 여러 조직이 있는데 이번에 암살 지령을 내렸다는 정찰총국은 어떤 곳입니까?

정찰총국은 이전에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정찰국이었는데 김정은이 올라오면서 대남 여러 부서들을 흡수를 해서 청찰총국으로 키웠는데 정찰총국은 말 그대로 우리 군에 대한 정찰이 주요 목적이었는데 지금 주요 목적인 정찰에 대한 것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파괴하고 공작입니다. 김영철이 파괴 공작 전문가거든요.

저 사람이. 저 사람이 대남비서로 왔다는 거는 너한테 어떤 임무를 줬다는 명백한 증거로도 볼 수 있는 거고 저에 대한 살해 직접적인 암살 위협도 결국은 그렇게 해서 나온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 정찰총국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관하에 특수부대까지 가지고 있고요. 전투원들을.

그리고 간첩들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이 사람들은 정찰, 테러, 공작, 파괴, 요인 암살 이것을 종합으로 다루는 부서라고 볼 수 있는 거죠.

Q. 그러면 암살 요인들이나 테러분자 같은 거는 평소에 엄청난 훈련을 하겠네요?  

엄청난 뭐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다니면서 뛰어 내리고 하는 그런 훈련까지 할 정도로 정찰국 요원들이 그렇게 센 요원들이거든요.

Q. 아까 말씀하신 대로 지난해 김양건 교통사고 사망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거기서 김영철로 바뀌면서 그런 부분은 확실히 강화가 된 거네요?

그렇죠. 원래 김양건이라고 하는 사람은 외교관입니다. 당 국제사업부에서 근무했고 저도 이전에 외교부 있을 때 직접 봤던 사람인데 상당히 합리적이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인데 이 사람은 김영철이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 극좌분자이고 태생이 중국에서 태어나서 태생적으로 극좌분자입니다. 원래 좀 뒤가 조금 구린 사람들이 좀 심하게 나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저 사람은 하면 큰일을 할 사람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그리고 셔먼 전 미 국무차관인가요. 어떻게 보면 김정은을 두고 김정일보다 더 잔혹하다, 이런 식으로 얘기했는데 그러면 참 어떻게 보면 그런 말들이 이런 김정은 체제의 북한과는 이런 협상이나 말이 안 통한다는 말인가요? 어떻습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합리적인 행위자라고 볼 수가 없는 것이 자기 고모부를 그러니까 집안의 어른인 김경희 자기 고모가 살아있고 김일성의 딸이 살아있는데도 그 남편을 죽일 때 벌써 아 저 사람은 정상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이 가능했고 지금 인민무력부장을 2명씩이나 인민무력부장하고 총참모장을 지금 처형을 한 거거든요.

저런 것을 보면 김정일에 비해서는 조금 더 잔혹하고 조금 더 비합리적이라고 판단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이런 김관진 장관이든가 홍용표 장관이든가 저 같은 사람이든가 이런 암살 이름을 찍어서 한다는 것도 김정일이 했을 때는 그렇게까지는 안 했거든요. 사실은.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보면 김정은이 김정일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이런 판단을 하는 거죠.

Q.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북한이 북핵을 절대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 같고 부원장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이런 연구들을 많이 하겠지만 이럴 때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대북정책 어떻게 보시는지요?

지금 저는 한 마디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는 우리가 계속 인내하면서 이제까지 온 거 아닙니까, 청와대를 습격해도 그랬고 포를 쏴대도 그랬고 핵실험을 해놓고 조금 더 달라지겠지 달라지겠지 했는데 안 달라지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하는 정책은 일단은 따르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이런 상황이 지금 우리가 보건데 위기상황이거든요. 이런 때에 국민들이 좀 더 다니면서도 주위를 좀 살펴보시고 좀 특별한 행동을 하는 이상한 사람이 없는지 특별한 짐을 거기다 놓고 가는 사람이 없는지 그런 것을 잘 살피는 그런 지혜 같은 것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을 합니다.

Q. 지금 24시간 8명이 경호를 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경호를 받으실까요?

저는 이것이 최소한 당대회가 진행될 때까지 이 상황이 가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Q. 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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