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절망에서 절규로…존폐 기로에 선 개성공단 기업들

[취재파일] 절망에서 절규로…존폐 기로에 선 개성공단 기업들
"지금 막 독일에서 돌아왔습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개성공단 전면 가동 중단 발표 다음날인 11일, 공단에서 의류공장을 운영하는 A사장의 목소리에는 황당함과 절망감이 가득했습니다. A사장은 유럽 바이어들을 만나 수십억 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논의하고 들어오는 길이었습니다. 2013년 공단 폐쇄 이후 거래처 단절과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던 차에 겨우 뚫은 활로였습니다. 하지만, 희망은 정부 발표로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공장에서 제품과 원단을 가져와 기존 계약 건이라도 처리하려 했지만 북한의 자산동결 조치로 이마저도 불가능해졌습니다.

“회사가 가지고 있는 건 개성공장 밖에 없습니다. 공장에 100억원 넘게 돈을 들여서 물류 시스템까지 갖춰놓느라 남한에는 제대로 된 창고도 없습니다. 그 동안 만든 수많은 완제품과 원부자재들이 고스란히 공장에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비단 이 업체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이번 사태로 개성공단 입주기업 가운데 적지 않은 업체가 존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직원들은 실직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개성공단기업협회에서 만난 한 공단 의류업체 직원은 체념한 듯 말했습니다.

"사장님이 회사 정리한대요. 공장이나 원단 다 개성에 있는데 어쩔 수 없겠죠. 저 포함해 직원이 11명인데, 각자 살 길을 찾아 봐야죠."
 
●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 아닙니까?"
 
지난 12일 개성공단 입주기업 비상총회에서, 기업인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가 성급하고 무책임한 처사였다고 성토했습니다. 총회에서 만난 한 부품 생산업체 대표는 “기업들의 피해를 생각했으면, 설 연휴에, 이처럼 느닷없이 중단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발표하기 전에 며칠 아니 하루 이틀이라도 준비할 시간을 주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까?”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기업인들은 또 정부가 모든 책임이 북한에 있다고 말하지만, 먼저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한 것은 우리 정부라는 입장입니다.
 
이런 기업인들의 절규는 이번 사태가 2013년과는 다르다는 점 때문에 더욱 절박합니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당시엔 공단 재가동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1~2년 동안 공단 재가동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면서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까"라고 정부를 질타했습니다. 기업인들은 ‘지원이 아니라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돈을 싸게 빌려주고, 세금 납부를 연장해주는 대책은 미봉책이고, 투자액과 손실에 대한 보상이 없다면 사업을 접는 것뿐만 아니라 빚더미에 앉게 된다는 겁니다.
● "벌 만큼 벌었다고요? 다 예상한 것 아니냐고요?"
 
현재 개성공단에 입주한 124개 입주업체 가운데, 개성공단에만 사업장을 가지고 운영하는 업체는 약 80개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2008~2009년에 입주한 업체들입니다. 이들 업체들은 수십억 원에서 백억 원 넘게 공단 건물과 시설에 투자를 했습니다. 값싼 노동력이란 강점이 있었기 때문에 적지 않은 투자를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값싼 인건비가 다 마진으로 가는 건 아니었다고 합니다.

공단 의류업체의 한 사장은 “생산원가가 낮아지는 만큼 납품가도 낮아집니다. 또 베트남 등 해외에서 생산되는 제품들 가격도 낮기 때문에 납품가를 높게 할 수 없습니다”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지난 2013년 160여일간의 가동 중단은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납품을 하지 못하면서 4~5년 쌓아온 거래처 가운데 상당수가 단절됐습니다. 이런 일이 또 생기는 것 아니냐며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죠.”
 
이런 사태가 터졌을 때를 대비한 경협보험이 없습니다. 투자금액의 90%까지 보상 받습니다. 하지만, 영업손실은 보전해 주지 않고 한도도 70억 원으로 제한돼 있습니다. 게다가 124개 입주업체 40%, 48개 업체가 경협보험에 들지 못했습니다. 앞서 얘기한 A 사장도 경협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보험을 들었지만 지난 2013년 공단 폐쇄로 사업이 어려워 지면서, 당시 받은 보험금을 아직 상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A 사장은 “상환하지 못한 보험금, 대출금 모두 합치면 빚이 수십억 원입니다. 이제 좀 갚나 싶었는데…”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기업인들은 ‘진출할 때부터 감안했던 일 아니냐’,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노린 것 아니냐’라는 말에 억울해 했습니다. 지난 2013년 가동 중단 사태가 해결되면서, 남북 정부는 당시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합의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공단이 조성되면서 정부의 정책을 믿고 터를 잡았고, 가동 중단 사태를 겪었으면서도 정부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개성공단 사업을 접었을 것입니다”이라는 게 기업인들의 설명이었습니다.
 
‘지원’을 하겠다는 정부와 ‘보상’이 필요하다는 업체들의 간극은 커 보입니다. 기업들은 최후의 수단이지만 정부를 상대로 소송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소송에서 업체들이 승소한 적은 없습니다. 고도의 정치군사적 판단이라는 이유에섭니다. 업체에게 불리한 상황입니다. 업체들도 대북제재의 필요성과 북한이 내린 자산동결 조치의 비상식성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우리 정부가 먼저 내린 것이고,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급한 결정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재가동의 기약 또한 없습니다. 지난 2013년과 같은 지원으로 끝날 일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오늘 정부는 ‘개성공단 지원을 위한 민관합동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전면 중단 조치를 내릴 때처럼 정작 입주기업들은 참석 대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업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피해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찾아야 합니다. 이후 이 피해에 대해 북한에 엄중하게 책임과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