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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선 알파인 스키장 보존이 정답"

[취재파일] "정선 알파인 스키장 보존이 정답"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첫 번째 테스트로 큰 관심을 모았던 2016 아우디 국제스키연맹(FIS) 스키 월드컵이 지난 7일 끝났습니다.

일부 대회 운영상의 문제점이 노출됐지만 두 달 전만 해도 준비 부족으로 무산 위기까지 갔던 상황을 감안하면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자칫 국제적 망신을 살까 마음을 졸이던 평창 조직위원회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앞으로 남은 27개 테스트 이벤트에 더욱 자신감을 갖는 모습입니다.   

이번 대회는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에 위치한 알파인 경기장에서 열렸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스키의 꽃인 활강과 슈퍼대회전이 열리는 장소입니다. 잘 알다시피 이 경기장은 착공이 원래 예정보다 많이 늦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휴일 없이 24시간 야간 초치기 공사까지 강행한 끝에야 가까스로 이번 대회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착공이 크게 지연된 이유는 환경 훼손 논란이었습니다. 시간은 자꾸 가는 데 환경 단체의 극심한 반발로 인해 첫 삽을 쉽게 뜨지 못한 것입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평창 조직위원회와 강원도는 고민 끝에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몇 가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통상 올림픽에서는 남녀 코스가 별도로 건설되는데 이를 포기하고 이례적으로 단일 코스에서 남녀 경기를 모두 치르기로 한 것입니다. 가리왕산 중봉에 고목과 희귀식물이 있는 점을 고려해 중봉 건설을 취소하고 하봉에만 코스를 만든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생태계 우수 지역을 복원하기로 약속한 점입니다. 이런 조치가 있은 뒤인 2014년 5월에야 정선 알파인 경기장은 겨우 착공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자 환경 훼손 논란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정선 스키장의 사후 활용 방안 문제도 큰 쟁점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테스트 이벤트를 참관하기 위해 방한한 장 프랑코 카스퍼 국제스키연맹(FIS) 회장이 지난 6일 “정선 스키장이 보존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말았습니다.

카스퍼 회장은 “코스가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100% 확신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아시아에 더 많은 다운힐 코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한국과 중국에 다운힐 코스가 생긴다면 일본과 함께 3개 나라에서 월드컵 시리즈를 개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카스퍼 회장은 “경기장 유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한국 사람들은 현명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을 것”이라며 경기장 유지를 낙관했습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이탈리아 선수 크리스토프 이너호퍼 역시 “올림픽이 끝난 뒤 자연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 경기장으로 인해 한국에 더 많은 스키 선수들이 나올 수 있고 스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카스퍼 회장과 이너호퍼 선수의 말을 들으면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1년 전 평창조직위의 고위관계자 A씨로부터 들은 내용과 거의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 관계자의 핵심 주장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평창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생태계 우수 지역을 복원한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실제로 지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생태계 우수 지역 복원이란 한마디로 정선 스키장의 일부 지역을 복원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정선 스키장은 사실상 국제 대회를 치를 수 없게 된다. 국제 대회를 치를 수 없는 코스이기 때문에 기량 향상을 위한 연습용으로도 사용하기가 마땅치 않다. 결론은 2가지이다.

스키장으로 그대로 보존하든지 아니면 원래 상태로 완전히 복원하는 것이다. 완전 복원은 스키장 완전 철거를 의미한다. 만약 완전 복원을 선택할 경우 몇 천억 원이 들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그 돈을 누가 낼 것인가? 평창조직위와 강원도는 능력상 불가능하다. 결국 정부, 즉 국민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내 개인 의견을 말하면 대한민국의 위상을 생각할 때 이제 이만한 스키장을 하나 갖고 있는 것도 무방하다고 본다. 이런 스키장이 있어야 우리도 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에서 메달에 도전할 수 있다. 또 동계올림픽 유산이란 측면에서도 철거보다는 보존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조양호 평창 조직위원장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경기장 설계 시점에서 환경단체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그래서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본 설계부터 많은 변경이 있었다. 올림픽이 끝나면 자연환경을 복원하기로 약속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정부, 환경단체와 합의한 부분을 이행할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평창 조직위원회의 공식 입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 때까지 여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만약 평창 조직위원회가 카스퍼 회장의 의견에 조금이라도 동조할 경우 국내 환경 단체의 반발이 다시 재연되면서 올림픽 개막도 하기 전에 엄청난 파문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선 알파인 경기장은 사후 활용 방안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대표적인 경기장입니다. 그만큼 결정이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스키장을 그대로 보존하자니 자연환경 파괴와 약속 위반 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스키장을 철거하고 완전 복원할 경우 천문학적인 예산이 부담입니다. 그렇다고 일부 복원을 선택할 경우 돈은 돈대로 들고 정선 스키장도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는 최악의 한 수가 됩니다.

최선의 방안이 없다면 차선이라도 찾아야 하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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