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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별 중의 별'이 된 전문 싸움꾼

NHL 올스타전 MVP 존 스캇의 뒷 이야기

[취재파일] '별 중의 별'이 된 전문 싸움꾼

▲ 올스타전에서 스캇이 골을 넣는 장면

2015-2016 북미 아이스하키리그 NHL 올스타전에서 이른바 전문 싸움꾼(Enforcer, 인포서) 선수인 존 스캇이 MVP에 뽑혔습니다. NHL 통산 285경기에서 5골밖에 넣지 못한 스캇이 최고 기량의 선수들만 나서는 올스타전에 출전한다는 사실 자체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스캇은 별들의 잔치에서 2골을 몰아치며 당당히 축제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인포서(Enforcer)는 신체 접촉이 허용되는 NHL 경기에서 동료 선수가 거친 파울을 당했을 때 복수를 위해,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글러브를 벗고 상대 팀 선수와 주먹 다툼을 펼치는 팀의 ‘대표 주먹’입니다.)
● 농담처럼 시작한 올스타 팬 투표 1위

스콧의 올스타전 출전은 한 ‘팟캐스트’ 진행자의 농담에 가까운 제안에서 시작됐습니다. 미국 야후 스포츠의 아이스하키 전문 기자 그렉 와이신스키가 자신이 진행하던 ‘팟캐스트’에서 올스타전에 색다른 선수들 출전시켜 보자며 전문 싸움꾼 존 스캇에게 투표하자고 말했는데, 이 내용이 SNS를 타고 급속히 퍼지면서 스캇은 최고 스타 패트릭 케인과 야로미르 야거 등을 제치고 올스타 팬 투표 1위에 뽑혔습니다.

● 싸움꾼의 올스타전 출전은 못 본다!

올스타 팬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NHL 사무국과 스캇의 소속구단 애리조나 코요테스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최고의 선수들만 나서는 올스타전에 주먹질이 주 업무(?)인 선수가 출전한다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NHL 사무국과 구단은 내심 스캇이 스스로 올스타전 출전을 포기하겠다고 밝히기를 바랐지만 스캇은 올스타전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결국 소속팀은 스캇을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하는 꼼수를 부렸습니다. (인포서는 팀 성적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시즌 도중 트레이드하지 않습니다.)

코요테스 단장의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몬트리올 캐네디언스로 팀을 옮긴 스콧은 트레이드 직후 NHL 하부리그인 아메리칸 하키 리그(AHL)로 보내졌습니다. NHL '서부 콘퍼런스 퍼시픽 디비전' 올스타로 뽑힌 스캇이 한 순간에 콘퍼런스와 디비전도 다른 팀(캐네디언스는 '동부 콘퍼런스 애틀란틱 디비전')의 2부 리그 선수가 돼 올스타전 출전이 불가능해져 버린 겁니다.

스캇이 올스타전에 출전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자, 팬들은 분노했습니다. NHL 사무국과 쿄요테스 구단에 항의 메일을 보내고, 온라인상으로 “파트 타임 NHL 리거를 올스타전의 일부(part)가 되게 하자”며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이렇게 팬들이 단체 행동까지 불사하자 NHL 사무국도 얼른 백기를 들었습니다. “원래 AHL 선수는 NHL 올스타전에 출전할 수 없지만, 상황의 특수성과 스캇이 올스타전에서 뛰고 싶어하는 열의”를 고려해 스캇의 출전을 허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인포서’로서 자부심…그리고 두 딸 (올스타전을 포기할 수 없던 이유)

신장 2m 3cm에 몸무게 118kg의 스캇은 덩치만 크고 느리다는 평가를 받으며 힘겹게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미시간 공대에서 수비수로 뛸 때까지도 NHL 진출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원정 경기를 다니며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전공 서적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대학교에서 공학 학위까지 받았지만, 아이스하키에 대한 미련을 접지는 못했습니다.

스캇이 평범한 직장인이 되기를 원했던 당시 약혼자이자 지금의 아내에게 “일단 3년만 아이스하키를 계속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한 뒤 NHL 2부 리그인 AHL 휴스턴 애어로스에 입단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자신이 상대 팀의 거친 선수들을 제압하면 동료들이 안심하고 경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스캇은 커다란 덩치와 힘을 앞세워 수비수에서 인포서로 성공적으로 변신했고, 약혼자에게 약속한 프로 생활 3년 차(2008-2009시즌)에 꿈에 그리던 NHL 무대를 밟습니다.

비록 스케이팅 실력이나 스틱 핸들링은 리그 정상급 선수들에 비해 떨어지지만, 동료들을 보호하고 팀에 파이팅을 불어넣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8시즌 연속 세계 최고 무대를 누볐습니다.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예쁜 두 딸까지 얻은 스캇은 올스타전 팬 투표 1위를 차지한 뒤 딸들을 위해서라도 올스타전에 나서기로 결심합니다. 자신의 가장 큰 팬인 두 딸이 보는 앞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겨루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작정한 겁니다.



▲ 올스타전이 끝난 뒤 스캇을 향해 MVP를 연호하는 관중과 동료들

● 인생 최고의 순간

우여곡절 끝에 올스타전에 나선 스캇은 인생 최고의 경기를 펼칩니다. 처음으로 한 경기에 2골을 터뜨리며 서부 콘퍼런스 퍼시픽 디비전의 우승을 이끌었고, 최고 스타 패트릭 케인과 주먹질을 하는 장면을 연출하며 팬들에게 볼거리도 선사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MVP 발표에 앞서 경기장을 메운 팬들은 한목소리로 스캇을 연호했습니다. 스캇보다 수십 배나 몸값이 비싼 동료들은 스캇을 목말 태우고 환호했습니다.

궂은일을 도맡으면서도 단 한 번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34살의 노장은 두 딸이 보는 앞에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았습니다. (스캇은 동료들과 함께 100만 달러의 우승 상금을, MVP 부상으로는  SUV 차량을 받았고, 스캇의 헬멧은 이제 명예의 전당에 전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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