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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드 레이더, 중국 잘 못 봐…"지구는 둥글다"

[취재파일] 사드 레이더, 중국 잘 못 봐…"지구는 둥글다"
지난 2012년 4월 13일 해군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은 서해 바다에서 평북 철산군 동창리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7시 39분 세종대왕함 레이더에 동창리에서 떠오르는 발사체가 잡혔습니다. 북한 장거리 로켓 은하 3호입니다. 발사 54초 만입니다. 같은 해 12월 12일에도 세종대왕함은 북한의 은하 3호 로켓을 발사 50여초만에 탐지했습니다.

탐지거리가 1,000km에 달하는 SPY-1이라는 첨단 레이더를 장착한 해군 최고의 ‘눈’ 세종대왕함이 만사 제쳐두고 동창리만 보고 있었는데 왜 은하 로켓을 발사하자마자가 아니라 발사한 지 50초 이상 지나서야 잡았을까요? 정답은 지구는 둥글고 레이더의 전파는 직진하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둥글어서 세종대왕함의 SPY-1이 내보낸 레이더 전파는 동창리의 지면이 아니라 동창리의 고도 10km 정도 상공을 지나게 됩니다. 은하 3호가 SPY-1에 잡힌 것은 발사되고 10km 정도 상승한 뒤입니다.

논란이 식을 줄 모르는 미국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사드(THAAD)의 레이더 AN/TPY-2도 마찬가집니다. AN/TPY-2의 전파는 직진하고 지구는 둥급니다. 탐지거리가 2,000km라는 전진배치 모드(Forward-Based Mode)의 AN/TPY-2도 중국의 땅은 탐지할 수 없습니다. 고도 수십km에서 수백km 하늘만 바라볼 뿐.

어찌보면 미국이 자기네 땅을 들여다 볼까봐 중국이 화낼 일도, 우리나라가 사드 레이더로 중국을 압박할 일도 없습니다. 전진배치 모드 대신 탐지거리가 1,000km 미만인 종말 모드(Terminal Mode)의 AN/TPY-2를 한반도에 들여오면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주장도 애초부터 말장난이라는 얘깁니다.

● 끊이지 않는 오해와 논란
미 육군 교범 중 사드 레이더의 모드별 역할
한반도와 중국의 거리가 서해와 동창리의 거리보다 훨씬 멀기 때문에 한반도에 배치될 AN/TPY-2의 전파는 중국의 땅이 아니라 고도 수십km에서 수백km 중국의 하늘을 지날 것입니다. 그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레이더 전파를 지구 표면을 따라 휘어지게 보내는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 한 알 수가 없습니다. AN/TPY-2의 유효 탐지거리는 전진 배치 모드든 종말 모드든 수백 km에 불과합니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군이 탐지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은 종말 모드의 AN/TPY-2를 들여왔다가 슬쩍 전진배치 모드로 전환해 중국을 염탐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유례가 있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그럴 일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전진배치 모드도 중국이 잘 안보이니까요. 게다가 종말 모드를 전진배치 모드로 전환하는 순간, 한반도의 사드 미사일은 ‘눈’을 잃고 무력화됩니다.

주한미군이 전진배치 모드와 종말 모드 둘 다 가져올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하지만 한반도와는 안 맞는 전술입니다. 미국은 전진배치 모드를 적국과 가능한 가까운 곳에(예를 들어 일본 같은 곳에), 종말 모드는 본국에 사드 미사일과 함께 묶어 두고 적국 미사일의 상승, 종말 즉 하강 단계를 낱낱이 보면서 요격할 준비를 합니다. 

한반도에서는 종말 모드의 AN/TPY-2만 중부지방에 배치해도 북한 미사일 기지가 대충 탐지거리 안에 들어옵니다. 종말 모드로도 북한 미사일의 상승, 하강 단계를 다 볼 수 있습니다. 전진배치 모드의 AN/TPY-2는 가동할 일 자체가 안 생깁니다.

굳이 AN/TPY-2를 한반도에서 전진배치 모드로 운용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한반도의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 MD 편입을 의미합니다. 고도 수십km에서 수백km 상공에서 중국의 미사일이 솟아오르는 것을 탐지해서 본국의 요격 미사일과 연결된 레이더로 ‘토스’하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상상 못할 후폭풍을 가져올 수 있는 가정입니다. 미국 MD에 편입된 일본에는 전진배치용 AN/TPY-2가 배치돼 미국의 ‘눈’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이외 국가 중에서 제일 먼저 사드를 돈 주고 도입하는 중동의 UAE도 종말 모드의 AN/TPY-2만 구입합니다. UAE가 전진 배치 모드를 안 사는 것은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주변국의 반발이 거세서도 아닙니다. 전진 배치 모드는 필요가 없으니까 구매하지 않는 것입니다.

● AN/TPY-2 탐지거리 논란 왜 생겼나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거론될 때마다 레이더 AN/TPY-2의 탐지거리 논란이 뒤따랐습니다. 지겨울 법도 한데, 이제는 알만도 한데 작년이나 올해나 똑같습니다. 이 정도 되면 탐지거리를 꺼내드는 쪽의 저의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탐지거리가 제법 긴 모드와 상대적으로 짧은 모드를 보여주면서 긴 탐지거리의 모드를 가져오려는 듯 하다가 중국을 ‘배려’해 짧은 탐지거리의 모드를 가져오는 시나리오입니다. 탐지거리 긴 전진배치용 AN/TPY-2에는 사격통제 시스템이 없어서 사드 요격 미사일을 바로 발사할 수도 없고, 사드 요격 미사일은 반드시 탐지거리 짧은 종말 모드와 연결돼야 하는데도 그런 시나리오가 가동됐습니다. 게다가 주한미군은 어차피 종말 모드를 갖고 들어옵니다.

국내 정치용 같습니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반대하는 쪽의 주요 논리가 “중국을 과도하게 자극하면 우리나라가 힘들어진다”입니다. 탐지거리 긴 전진배치용 AN/TPY-2를 거론하는 것은 중국과 관계없는 종말 모드로 들여올테니 그럴 일 없다고 사드 반대론자들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하는 교묘한 화술이라는 분석입니다. 원래부터가 종말 모드가 들어올 운명인데도 말이죠.

그럼 중국은? 사실 중국 정부는 사드가 한반도에 들어오면 어떤 점이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습니다. 중국이 이러저러해서 불편할 것이라는 주장은 거의가 우리나라에서 나온 것입니다. 중국도 이제 입장을 좀 소상하게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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