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위안부가 아니고 사형장입니다"

[취재파일] "위안부가 아니고 사형장입니다"
● "위안부가 아니고 사형장입니다”

체감온도 영하 17도의 한파가 들이닥친 날, 서울의 한 법원 앞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 세 분이 모습을 드려냈습니다. 목도리와 털모자로 온몸을 꽁꽁 둘러맸지만 추운 날씨 탓에 거동이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할머니들이 힘든 걸음을 한 것은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재판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인 박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재판이 끝난 뒤, 지팡이에 의지해 힘겹게 자리에 앉은 이옥선 할머니가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위안부라고 부르는 것이 싫다.” “위안부가 아니고 사형장입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지만 할머니가 하고 싶었던 말을 추측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간 것은 사형장에 끌려간 죄수와 다르지 않다.” 뒤이어 할머니들은 박 교수를 향해 울분을 토했습니다.

● 세상 빛을 본 '제국의 위안부'…논란의 서막 열려

박유하 교수는 1957년생으로 일본 게이오 대학을 졸업했고, 와세다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전공과목은 일본 문학이었습니다. 지난 1993년 귀국한 박 교수는 2년 뒤 세종대학교 교수에 임용됩니다. 그리고 2013년 8월 ‘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합니다.

출간 후 1년이 채 안 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9명은 박 교수를 고소했습니다.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도 냈습니다. 위안부에 대해 ‘정신적 위안자’, ‘자발적 매춘’ 등으로 표현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자신의 SNS에 “잘못한 것이 없는데 사과하는 것은 옳지도 않거니와, 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는 하지 않을 생각”이라는 글로 입장을 대신했습니다.

법원은 할머니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지난해 2월, 책 내용 가운데 34곳을 “삭제하지 않고 출판해서는 안 된다”라는 결정이 내려진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삭제된 대목 몇 부분만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의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위안부를 유괴하고 강제연행 한 것은 공적으로 일본군이 아니었다”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과 함께 전쟁에 이기고자 그들을 보살피고 사기를 진작한 이들이기도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
● “잘못은 했지만, 정말 잘못했을까?”

<제국의 위안부>를 읽어봤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3분의 1 정도인 100페이지를 보다 덮었습니다.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위안부에 대한 책임을 일본보다는 당시 시대상과 조선에 지나치게 미루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못은 했지만, 정말 그렇게나 잘못했을까?”라는 변명이 들려왔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적나라한 비판을 하기에는 책 속에 숨겨 있는 방어장치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충격적이고 논란이 될 문장 뒤에는 어김없이 일종의 해명이 담겨 있습니다. 어린 아이를 달래는 느낌이랄까요? 몇 문장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위안부 중에는 ‘흰 쌀밥’, ‘가부장사회’ 탈출을 원하는 사람도 많아 ‘자발적’으로 갔다고 생각할 수 있다”라는 문장에 뒤 이어 “하지만 설사 자발적으로 희망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위안부의 고통은 일본 창기의 고통과 다르지 않다.”

다르지 않다면 같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완전 같지는 않지만 아주 조금 다르다는 것일까요? 위안부를 실제로 ‘강간’한 것은 일본군이지만 공식적으로 납치, 유괴에 가담한 것은 ‘조선인’이라든가 위안부들이 군인과 휴일의 ‘평화로운(?)’ 한때를 보냈다는 내용도 눈에 뜁니다.

박 교수는 여전히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기자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히기도 했죠. 물론 박 교수의 말대로 뉘앙스와 해석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극소수에 불과했겠지만 자발적으로 동원됐다든가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은 위안부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국이 위안부>를 읽어보면 시대적 책임과 당시 식민지 조선의 과오를 ‘침소봉대’ 한 것 아닌가라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그렇다면 위안부 할머니들의 느낌은 더할 것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학문의 자유’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할머니들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학문의 자유' vs '왜곡'…논란은 진행 중
 
검찰은 지난해 11월 박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할머니들이 제기한 민사 소송에 이어 형사 소송이 시작됐습니다. 개인적인 손해 배상 외에 국가가 직접 박 교수를 처벌할 지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형사 재판은 피고인의 '고의성'이 인정돼야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형사 재판에서 '명예훼손'이라는 범죄와 '학문의 자유'라는 가치가 부딪칠 때 어느 쪽이 더 중요하지 판단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결국 박 교수의 책이 학문적 자유의 영역을 넘어서는지, 넘어선다면 국가가 개입해 형사 처벌을 하는 것이 옳은 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입니다.

## 박유하 교수가 ‘무료’로 책을 배포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