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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3.3㎡당 4천만 원 아파트 시대의 이면…주거빈곤 아동 129만 명

[취재파일] 3.3㎡당 4천만 원 아파트 시대의 이면…주거빈곤 아동 129만 명
전남 보성의 한 작은 마을에는 30가구가 산다. 이 가운데 19살 이하 학령기 아동은 딱 5명, 그 가운데 3명은 소연이 남매이다. 소연이네는 이 마을에서도 가장 오래된 집에 살고 있다. 50년도 더 된 낡은 농가 주택이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변변한 집도 없고, 전월세 비용도 없어, 무상임차만 전전하던 소연이네가 이 집에서 살게 된 지는 2년 정도가 되었다. 이 역시 무상임차주택이다.

소연이네 집에는 방 두 개, 부엌이 있다. 다 합쳐봐야 33제곱미터도 되지 않는다. 소연이네 가족은 연탄불이 들어오는 방에서만 생활한다. 소연이와 15살 난 언니, 부모님은 이 방에서 함께 잔다. 연탄을 때지만 바닥은 차갑다. 겨울에는 방 안에서도 점퍼를 벗을 수 없다. 얇은 종이를 바른 벽과 문에서 바람이 숭숭 새어 들어오기 때문이다. 사춘기 오빠는 연탄불조차 들어오지 않는 방 하나를 쓰고 있다. 전기장판을 깔아놨지만, 잘 틀지는 않는다. 점퍼를 입고, 두툼한 담요를 덮고 지낸다. 두 방 모두 창문 하나 없어 한낮에도 어둡지만 전등도 켜지 않고 지낸다. 전기요금이 걱정되어서 이다.

욕실이 없기에, 마당 수돗가에서 씻는다. 겨울에는 주전자에 물을 데워와 그 물로 씻는다. 간신히 세수만 할 뿐이다. 목욕은 꿈도 꿀 수 없다. 바람이 찰 때에는 물이 아무리 따뜻해도 물기가 닿는 족족 살이 어는 느낌이다. 겨울도 겨울이지만 여름도 문제이다.

2차 성징에 접어든 사춘기 남매들은 수돗가에서 씻는 게 영 부끄럽기만 하다. 혹시나 마을 사람들이 볼까 걱정스럽다. 그래서 대문을 달아놨는데, 그마저도 잔뜩 녹이 슬고 부서질 듯한 슬레이트를 이어붙인 것이어서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화장실에 가는 것이다. 소연이네 화장실은 마당 끝에 있다. 나무 발판을 올려놓은 재래식이다. 벽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데다, 화장실 문도 없어 용변을 볼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누가 볼까, 발이 빠질까 신경이 곤두선다. 정화조 비용도 만만치 않아 자주 비워내지도 못해 항상 냄새도 진동한다.

양친 부모도 있는데, 소연이네는 왜 이런 집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소연이 아버지는 일용직으로 일을 하다 허리가 다친 뒤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때 기초생활 수급을 받기도 했는데 2008년부터는 그마저도 끊겼다. 아버지가 주변의 꾐에 빠져 차량 등록 명의를 빌려주었는데, 그게 '재산'으로 잡혔기 때문이다. 엄마도 오른쪽 팔이 성치 않다. 장애인 등록이 되어야 복지 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는데, 장애 판단을 받기 위해 검사할 비용이 없어 신청조차 못하고 있다. 그나마 소연이네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군청에서 자활근로 일자리를 마련해 준 덕분에 간신히 다섯 식구 생계를 꾸리고 있다.

소연이에게 물었다. “어떤 집에서 살고 싶니?” 소연이는 “좋은 집”이라고 답했다. “어떤 집이 좋은 집인데?” 물었더니, 소연이는 “공부할 책상이 있는 집이요...” 란다. 넓은 집, 깨끗한 집도 아니다. 그저 책상이 있는 집, 단 하나, 소박한 바람이다.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방에서 엎드려 숙제도 하고, 시험공부도 하고 있단다. 그렇다면 언니, 오빠와 각각 공부방 하나씩 갖고 싶은 건지 궁금했다. 그건 아니란다. 그냥 책상만 있으면 된단다.

국내 주택법 상 최저주거기준이란 게 있다. 최소한 어느 정도 수준에서 살아야 한다는 기준이다. 소연이네처럼 5인 가구를 보면, 46제곱미터 크기의 집에, 방 3개, 상하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부엌, 수세식 화장실이나 욕실이 있어야 한다. 청결, 위생이 갖추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소연이네는 이런 기준에도 훨씬 못 미치고 있는 것이다.초등학교 초등학생한국도시연구소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2013년 연구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집에 살고 있는 아동은 129만 명에 달한다. 물론 정부에서는 공공임대주택, 주거급여 등으로 주거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아이들이 주거 빈곤 상태에 놓인 아이들이 많다는 건, 아이들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이 아직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주요 선진국의 주거 정책의 첫째 요건은 ‘아이 중심’이다. 집은 아이들의 건강과 성장에 직접적으로 연결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미래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체중 1kg당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많이 숨쉬고, 더 많은 물을 마시며, 더 많은 음식을 먹기에 외부 환경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아이가 살기에 부적절하다 싶으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핀란드에서는 아동 복지에 중요한 영향은 미칠 경우, 정부가 주거를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영국의 주택법으로 ‘임신부’와 ‘학령기에 있는 19세 미만 아동’이 있는 가정이 주거 정책의 우선 대상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저소득층이나 소년소녀가장, 한부모 가정 등에 주거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부모가 있는 가정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실질적인 양육 능력보다 양친이 있는지, 서류상의 재산은 얼마나 되는지가 복지 정책의 기준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 유엔 권리협약을 비준했다. 이 협약은 아동의 주거권을 규정하고 있다. 이 권리는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의무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아동의 주거’와 관련한 법이 없다. 아직 관심도, 노력도 부족한 것이다. 

서울의 한 지역의 아파트 평당 가격은 4천만 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새 아파트, 학군 좋은 동네, 꼭 이런 곳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춥고, 좁고, 비위생적인 환경만 아닌 곳에서 아이들이 자랐으면 한다. 건강하게 자랄 수 있고, 밝게 웃을 수 있는 집이면 충분하다. 모든 아이들이 이런 당연한 '권리'를 누리기를 바란다.  

*많은 분들이 방문하게 되실 경우 좋은 의도와 달리 가족들의 생활에도 지장이 있을 수 있고 주소 실명 등 개인정보가 유출되었을 때 여러가지 우려되는 부분도 있어서 직접 방문이나 후원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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