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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커지는 컵 줄어드는 물'…선거권과 투표율

확대되는 선거권…줄어드는 투표율

- 20대 총선에서 투표를 할 수 있는 나이와 최소 탄생년도는?
<답> (만) 19세, 1997년

이 정도까지 답하는 건 쉽다. 그렇다면 1997년에 태어난 사람부터 전부 선거권을 가질까?
<답> ?


이 문제에선 고개를 갸웃 거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답은 <아니요>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이번 20대 총선은 2016년 4월 13일 실시되기 때문에, 선거권은 1997년 4월 13일까지 태어난 19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 가진다. 1997년 4월 14일부터 태어난 국민은 안타깝게도 선거권이 없다. 통상 18세가 고등학교 3학년, 졸업 후 19세 대학 입학을 가정하면, 일부 신입생은 올 해 선거 당일 투표소로 갈 수 있지만, 나머지 신입생은 투표하고 싶은 열정을 고스란히 도서관에서 해소해야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왜 19세부터 선거권을 가지는지 궁금증이 생길 텐데, 그 전에 우리 선거에서 선거 가능연령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부터 알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거이자 제헌국회인 1대 총선(1948)부터 선거 가능 연령이 19세는 아니었다. 두 살 더 많은 21세부터 투표가 가능했다. 이후 선거권은 시대가 지나면서 점차 확대됐고, 그 기본적 배경은 참정권의 확대가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참정권의 대표적인 선거권은 원칙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부여돼야 한다는 점에서 선거 연령을 확대한 것이다.

특히 선거 연령이 확대될수록 산술적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시민의 숫자가 늘어나고, 덩달아 투표율도 제고할 수 있다는 기대가 크게 작용했다. ‘선거는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라는 전제 속에 1대 총선에서 21세 이상이던 선거 가능 연령은 5대 총선(1960)에서 20세로, 그리고 48년이 지난 2008년 18대 총선에서 지금의 19세로 낮아졌다. 당연히 투표 참여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 그럴까?


상식적으로 컵이 커지면 들어가는 물의 양도 커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선거인수가 늘어나면 실제 투표에 참여하는 시민의 숫자도, 투표율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SBS데이터저널리즘팀은 이런 예측이 맞는지, 이런 기대를 가져도 되는지, 과연 상식이 통했는지, 선거인 수에 따른 역대 총선 투표율과 실제 투표수를 분석해봤다.

# '선거연령' 낮춰도 회복 못 하는 ‘투표율’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1대 총선(1948) 당시 1천9백만 명이던 인구는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5천만 명을 넘어섰다. 1대 총선 선거 가능 연령은 21세 이상으로, 전체 인구 중 선거인은 40.9%에 불과했다. 그리고 19대 총선에선 인구수 증가와 선거 가능 연령 확대로 전체 인구 중 선거인 비율은 79%까지 올라갔다. 국민 10명 중 4명에게만 있던 선거권이 60여 년이 지나서 국민 10명 중 8명이 가지게 된 것이다. 보통선거 원칙에 부합하는 변화였다. 그러나 선거권을 가진 시민의 발걸음이 모두 투표소로 가지는 않았다. 선거권의 확대가 투표율의 증대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분석결과만 놓고 보면, 약간의 오르내림은 있지만 시민의 실제 정치참여도, 즉 투표율은 대체로 하락했다. 역대 총선 중 가장 높은 투표율은 선거권이 가장 협소하고, 인구수는 물론 선거인수도 가장 적었던 1대 총선(95.5%)이었다. 반면, 선거 가능 연령이 19세로 처음 확대된 18대 총선은 역대 최저 투표율인 46.1%를 기록했다. 이런 분석결과를 보면 선거권 확대로 예상되던 투표율 제고는 ‘기대’였을 뿐이었다.

광복 직후 4번의 총선이 치러질 동안 투표율은 90%를 넘을 정도로 시민의 선거 참여가 높았다. 선거권 확대를 위해 21세에서 20세로 선거 연령을 낮췄고, 덕분에 처음으로 국민 중 절반 이상(53%)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5대 총선(1960)에서도 투표율은 84%를 기록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높은 정치참여는 지속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을 거치는 동안 인구수와 선거인수는 꾸준히 늘어났지만 투표율은 70%대로 떨어졌고, 80%대를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다 12대 총선(1985)에서 다시 투표율 84%를 기록했다. 25년 만에 80%대로 회복한 것으로, 당시 선거는 김영삼 김대중 등 정치활동이 금지됐던 이른바 엘리트 정치인 등 재야인사들이 다시 복귀한 ‘해방기’였다. 또 인구수가 4천만 명을 넘어선 뒤 치러진 첫 선거였다

하지만, 일시적 회복에 불과했다. 12대 총선(1985) 이후 투표율은 70%대에서 60%대까지 점차 하락하더니 15대 총선에선 처음으로 50%대로 떨어졌고, 18대에선 46%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인구가 늘어나면서 선거인수도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도리어 투표율은 물론 실제 투표수, 즉 선거권을 가진 시민(선거인수) 중 실제 투표를 한 시민의 숫자까지 떨어졌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12대 총선(1985) 당시 인구수는 4천30만 명, 선거인수는 2천3백90만 명, 실제 투표수는 2천20만 표, 13대 총선(1988) 당시 인구수는 4천1백50만 명, 선거인수는 2천6백만 명으로 12대 총선보다 선거인수가 2백만 명 늘어났지만, 실제 투표수는 1천9백만 표로  백만 표나 줄었다. 1대 총선부터 12대 총선까지 비록 투표율이 떨어져도, 선거인수의 상승으로 ‘실제 투표수’는 점진적으로나마 늘어났지만, 13대 총선에선 투표율은 물론, 실제 투표수인 ‘절댓값’마저 줄어든 것이다. 한 마디로 ‘투표’라는 방식으로 직접 정치에 참여한 시민의 절대 수치까지 낮아졌다는 말이다.

15대→16대 총선, 17대→18대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18대 총선(2008)은 19세까지 선거권이 확대되면서 치러진 첫 총선으로 선거인수가 17대보다 2백20만 명이나 늘었지만, 실제 투표수는 410만 명이나 줄어든 1740만 표에 그쳤다. 선거권의 확대가 투표율의 확대, 실제 투표권을 행사하는 시민들의 확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1대 총선과 비교해보면 더욱 선명해진다. 2012년 19대 총선에선 전체 국민 중 79%가 선거권을 가지는 등 1대 총선(40%)보다 선거권은 2배 가까이 확대됐지만, 투표율은 1대 총선(95%)에 비해 절반 수준인 54%로 떨어졌다. 19대 총선의 선거인수는 4천만 명으로 1대 총선(780만명)에 비해 5배 이상 늘었지만, 실제 투표수는 1대 총선(740만 표)에 비해 3배에 못 미치는 2천1백만 표에 그쳤다. 인구수 증가와 동시에 선거 가능 연령도 낮아지면서 선거권이 비약적으로 확대되더라도 투표율 제고로 이어질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또 선거인수 증가에도 불구하고 ‘실제 투표수’, 즉 시민의 선거 참여 절댓값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것도 분석 결과로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선거권 확대’가 ‘시민의 투표 참여 확대’라는 상식이 우리 선거 현실에선 통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각종 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이 하락하고 시민의 선거 참여가 낮아지면서 일각에선 투표율 제고에 대해 “백약이 무효”라는 말도 한다. 이런 점에서 제도 개선이 아닌 정치 현실을 개선해야만 투표율을 제고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조화순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는 “선거권을 가진 시민들이 투표를 하지 않은 건 정치의 효능감이 떨어지게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내가 한 표를 행사하더라도, 현실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선거에 대한 기대가 낮아졌다는 뜻이다. 조 교수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정치를 ‘그들만의 리그’로 생각하면서 투표율도 떨어지고 있다”며 “내가 행사한 한 표가 정치에 반영되고, 정치를 통해 사회가 개선되는 정치의 효능감이 높아질 때 비로소 투표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안혜민(인턴)
디자인: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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