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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평창 조직위 살린 56살 공학도

[취재파일] 평창 조직위 살린 56살 공학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키 활강과 슈퍼대회전 종목이 열리는 강원도 정선 알파인 경기장이 오는 22일 오전 11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양호 평창 조직위원장, 최문순 강원도지사 등 주요 인사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장에서 개장식을 갖습니다.

모레(20일) 국제스키연맹(FIS)의 최종 실사가 남아 있지만 FIS가 요구한 조건이 이미 모두 충족돼 이변이 없는 한 다음달 6일부터 7일까지 이틀 동안 첫 테스트 이벤트로 치러지는 스키 월드컵의 정상 개최가 극적으로 가능해졌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대회를 치르게 된 평창 조직위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 준비 부족으로 스키 월드컵 자체가 무산될 위기를 맞았기 때문입니다. 정선 알파인 경기장은 대한민국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제대로 개최할 수 있는지 여부를 가리는 시금석으로 평가돼 왔습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구닐라 린드베리 평창 동계올림픽 조정위원장 등 세계 스포츠계 주요 인사들은 지난 3년 동안 줄기차게 첫 테스트 이벤트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대회가 무산됐다면 국제적 망신은 물론 평창 동계올림픽 전체 이미지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에 지어진 알파인 경기장은 환경 훼손 논란으로 착공 자체가 너무 늦었고, 이후에도 법정 소송과 행정 절차에 묶여 공사 진척이 지지부진했습니다. 장 프랑코 카스퍼 국제스키연맹 회장이 2015년 2월 초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정선 알파인 월드컵의 정상 개최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정작 평창 조직위는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선 가리왕산 부지가 연약 지반이어서 곤돌라 타워 설치가 쉽지 않다는 점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지반이 연약하면 보강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리고 비용이 훨씬 더 들기 때문입니다.

부랴부랴 석 달 전인 지난해 10월 초부터는 휴일 없는 야간 공사에 돌입했습니다. 국내외 언론에서 정상 개최에 대한 우려가 나왔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평창 조직위는 “설마 못하겠느냐?”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10월부터 11월까지 무려 22일이나 비가 내려 공사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상하리만치 포근할 날씨가 계속되면서 한마디로 비상이 걸렸습니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물론 황교안 국무총리까지 현안 보고를 받을 만큼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대의 곤돌라 제조업체인 도펠마이어사가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서 건설되고 있었던 타워 프레임의 일부 결함을 지적하면서 사실상 재시공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재시공을 하게 되면 당연히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스키 월드컵은 물 건너 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평창 조직위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특히 국토교통부 제2차관 출신으로 지난해 11월 초 새로 부임한 여형구 사무총장(만 56세)은 조직위 업무를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최대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던지 여 총장은 한양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공학도 출신으로 동 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기술 관료(Technocrat)였습니다. 철도와 항공 등 교통 분야 전문가인 여 총장은 자신의 경험을 활용해 최단 기간 내에 정선 스키장의 현황과 문제점을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공학에 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도펠마이어사와 협상에 나섰습니다. 재시공을 하지 않고도 새로운 공법으로 보강 공사를 하면 스키 월드컵을 치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국내에서 있었던 유사 사례를 총 동원하면서 도펠마이어사의 이해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있던 도펠마이어사 직원들은 선뜻 기존 입장을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여형구 사무총장은 마지막 수단으로 도펠마이어사 최고 CEO를 직접 만나 담판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때마침 조양호 조직위원장이 국제회의 참석차 스위스에 있었습니다. 조양호 위원장은 여형구 총장의 권유로 스위스에서 도펠마이어사 본사가 있는 오스트리아로 이동해 수뇌 회담을 벌였고, 마침내 평창 조직위의 뜻을 관철시켰습니다
.

이때가 12월 초순이었습니다. 이즈음부터 수은주가 내려가면서 인공 눈을 만드는 제설(製雪) 작업도 순조로워졌습니다. 총 110대의 제설기에서 일제히 눈을 뿌리며 한 달 만에 국제스키연맹(FIS)이 요구한 평균 1.2m의 눈을 슬로프에 쌓을 수 있었습니다. 조직위가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FIS는 선수가 대회 도중 부상할 경우에 대비해 비상용 헬리콥터 2대를 준비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평창 조직위 측은 “응급차를 현장에 배치하겠다”고 했지만 FIS는 “헬리콥터 없으면 월드컵은 없다”(No helicopter, No worldcup)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평창 조직위 실무를 총 책임지고 있는 여형구 총장은 현재 소방 헬리콥터 1대와 의무 헬리콥터 1대를 마련하기 위해 소방본부와 군부대 등을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협조를 구하고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평창 동계올림픽 23개 테스트 이벤트 가운데 첫 번째인 알파인 스키 월드컵은 가까스로 치러질 전망입니다. 2014년 5월 착공한 지 1년 8개월 만에 공정률 60%를 넘기면서 슬로프와 곤돌라 등 대회를 개최할 필수 시설을 구비한 것입니다.

평창 조직위 직원들 사이에서는 “여헝구 사무총장이 부임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스포츠 문외한이니 ‘낙하산 인사’가 아니냐"는 말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최대 난관이었던 곤돌라 문제를 전문 지식을 이용해 해결한 것은 그의 공로임에 틀림없다”며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절체절명의 위기는 넘겼지만 여기서 반드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평창 조직위가 이렇게 ‘초치기 공사’를 하면서 이렇게 수많은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습니다. 정선 알파인 스키장 건설은 이미 4년 전에 결정된 사항입니다. 시간적으로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드러났던 난맥상은 조직위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거나, 너무 늦게 대처했거나, 국제 정보에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지구촌 축제인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정부, 조직위, 강원도 세 주체는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대회 개막까지 남은 2년 동안 모든 과제를 미리 미리 계획하고 돌발 사태에 신속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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