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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종인은 새누리당의 '시디 신 포도'

[취재파일] 김종인은 새누리당의 '시디 신 포도'
새누리당이 간만에 화력을 쏟아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3일 영입한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 대상이었습니다. 당 지도부인 최고위원부터 대변인, 주요 당직자까지 나서 김 위원장을 성토했습니다.

발언 수위도 상당했습니다. "선거 때마다 자신의 입지를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마치 자신만이 최고 전문가인 듯 처신했다" (신의진 대변인) "이당 저당 이집 저집 다 돌아다니면서 역대 정권에서 부귀영화를 누렸는데,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노근 의원) "정체성을 전혀 달리한 인사를 특별한 설명도 없이 제1야당이 중요한 직책으로 영입하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혼란스럽게 한다" (이인제 최고위원) 뭔가 같은 맥락의 이야기 같은데, 이장우 대변인이 못을 박았습니다.

"역대 정권마다 정부 요직에 올랐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참모, 안철수 의원의 정치 멘토, 이번에는 문재인 대표의 선거 총책까지…야권의 '회전문식 돌려막기쇼'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행보야말로 구태정치의 전형"이라고 논평했습니다.
 

 
이 대변인의 말에서 새누리당의 속내를 엿볼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경제 참모를 지냈던 사람이 어떻게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의 선거대책위원장으로 가느냐는거죠. 성토 배경을 좀더 들여다 볼까요. 2012년 9월5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대선기구 임명장 수여식을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했는데 그중 한 명은 요즘 험지 출마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안대희 전 대법관, 당시는 정치쇄신특위위원장이고, 다른 한 명은 바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입니다. 박 후보는 "과거보다 미래, 분열보다는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며 두 사람에게 마이크를 넘겼습니다. 안 위원장과 김 위원장은 각각 정치개혁과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영입된 인물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통합을 위한 대선공약을 만들어 대선 승리를 이끌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던 김 위원장은 두달 뒤인 11월16일,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발표된 공약에는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 ▷중요 경제범죄자의 국민참여재판 회부 ▷재벌총수 등 임원진 급여 공개 등 김 위원장이 강조해온 내용이 빠졌습니다. 영입 1년 만에 김 위원장이 박 대통령과 사실상 결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경제 전문가로 서강대 교수 출신인 김 위원장은 지난 1981년 11대 총선에서 민정당 전국구(지금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는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입니다. 이후 12대 민정당, 14대 민자당, 17대에는 민주당 등 모두 비례대표로만 4선을 지냈습니다. 진보와 보수 양측에서 모두 쓰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복지와 분배를 중요시하고 87년 직선제 헌법 개정 때 경제민주화 조항의 입안을 주도했습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토지공개념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경제민주화의 아이콘 같은 인물입니다.

김 위원장의 이력과 새누리당과의 인연을 생각하면 그의 야당행은 아쉬울 법도 합니다. 친박계 김재원 의원은 14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새누리당이 김 위원장을 품지 못해 안타깝다"고 밝혔습니다. 김 의원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김 위원장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던 인물입니다.

김 의원은 "당이 김 위원장의 정치력이나 혜안을 제대로 품지 못하고 다시 더불어민주당으로 가도록 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의원은 또 지금 새누리당이 상향식 공천을 추진하면서 영입을 통한 인재 충원은 다소 포기해야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론조사를 통한 경선으로 총선 후보를 뽑는 제도이기 때문에 누구를 모셔와서 자리를 줄 수 없는 구조라는 겁니다.

김무성 대표도 14일 기자들과 만나 "인물을 가지고 쇼를 벌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는 말로 김 위원장에 대한 미련이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김 대표는 "야당은 당의 반이 떨어져 나가는 다급한 상황에서 외부에서 수혈을 하는 것이고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안정적인 현상 운영이 되고 있다"며 "오직 국민에게 당의 정책을 가지고 호소할 생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인재 충원 구조와 당이 처한 상황의 차이라고 하지만 새누리당이 이렇게까지 김 위원장을 공격하는 건 그만큼 충격을 느꼈다는 이야깁니다. 경제민주화와 대통령의 경제 멘토였다는 상품성이 야당에 탑재될 때 총선에 미칠 파괴력이 걱정된다는 목소리도 당내에서 들립니다. 당을 찾아온 인물의 면면에서 새누리당이 야당에 비해 밀린다는 평가도 공세 수위를 높이는데 한 몫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상품없이도 총선을 치르겠다는 여당의 현실에서 김종인 위원장은 이솝우화의 여우가 말했던 '포도'처럼 시디 신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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