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은 이 우승으로 김연아가 2003년 이 대회에서 작성한 역대 최연소 우승 기록(만 12세 6개월)을 갈아치우는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또 국내 선수 가운데 김연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점수를 작성했습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클린 연기를 펼치며 61.09점으로 1위에 올랐던 유영은 프리스케이팅에서도 122.66점을 따내면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국내 피겨계에 돌풍을 일으키며 챔피언에 오른 유영은 자신의 우상인 김연아까지 직접 만나고 함께 기념 촬영을 해 두 배의 감격을 누렸지만, 그 환희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시상식이 끝나고 유영이 시상대에서 내려오는 순간이 바로 국가대표에서 제외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황당한 사태는 이미 6개월 전부터 예고됐습니다.
유영은 지난해 5월에 한국 스포츠 모든 종목을 통틀어 최연소 국가대표가 됐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개월 뒤인 지난해 7월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 국가대표를 선발할 때 13세가 되지 않는 선수는 뽑지 않도록 규정을 바꿔버린 것입니다. 즉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만 13세가 되지 않는 선수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게 됐습니다. (2015년 7월28일 취재파일: 초등학생 피겨 신동 울린 대한빙상연맹 참조) 새 규정의 적용 시점은 2016년 1월 1일입니다.
대한빙상연맹은 “어린 선수들의 지나친 경쟁과 부상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13세가 되지 않으면 각종 주니어 대회에 출전할 수 없으니 차라리 대회에 나갈 수 있는 13세 이상의 선수를 선발하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빙상연맹은 국가대표 선발 시점마저 올해 1월부터 ‘종합선수권 대회 종료 후 즉시’로 변경했습니다. 바뀐 규정에 따라 어제 대회가 끝난 뒤 곧바로 8명의 여자 국가대표 선수가 새로 선발됐습니다. 하지만 종합선수권 1위를 차지한 유영은 나이 제한에 걸려 제외됐습니다. 그러니까 우승을 차지한 날이 공교롭게도 가슴에 붙이고 있던 태극마크를 떼야 하는 날이 된 것입니다.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규정 때문에 대표팀을 떠나게 된 11살 피겨신동의 앞날은 막막하기만 합니다.
이번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1∼5위에 오른 선수 가운데 초등학생이 무려 3명이나 됩니다. 지금 세계 여자 피겨를 휩쓸고 있는 러시아 선수들도 10-11세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육성된 재목들입니다. 13세 미만의 선수가 시니어 국제대회는 물론 주니어 국제대회까지 출전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국제 규정입니다.
하지만 어린 유망주를 한국 국가대표로 발탁해 집중 육성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방안입니다. 빙상연맹은 지난해 7월 “만약 경기력이 우수한 주니어 미만의 선수가 국가대표 선발 점수를 획득할 경우 별도의 육성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공문을 통해 밝혔지만 이 약속이 빠른 시일내에 지켜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제2의 김연아’로 평가되는 유영 같은 '피겨 신동'을 정말 김연아처럼 키울 수 있기 위해서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구체적인 대책 수립과 함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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