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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1살 피겨신동 우승 직후 국가대표 제외

[취재파일] 11살 피겨신동 우승 직후 국가대표 제외
국내 빙상계가 오랫동안 애타게 찾던 ‘제2의 김연아’가 드디어 나타났습니다. 어제(10일) 서울 목동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제70회 한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만 11세 7개월’의 초등학교 5학년생인 유영 선수가 총점 183.75점으로 최다빈, 박소연 등 쟁쟁한 국가대표 선배들을 모조리 제치고 깜짝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유영은 이 우승으로 김연아가 2003년 이 대회에서 작성한 역대 최연소 우승 기록(만 12세 6개월)을 갈아치우는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또 국내 선수 가운데 김연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점수를 작성했습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클린 연기를 펼치며 61.09점으로 1위에 올랐던 유영은 프리스케이팅에서도 122.66점을 따내면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10일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제70회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시니어 프리스케이팅에서 1위를 차지한 유영이 김연아와 악수하고 있다.
신데렐라처럼 떠오른 11살 피겨 신동은 이날 시상자로 나선 ‘피겨 여왕’ 김연아로부터 축하의 악수를 받아 더욱 인상적인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유영은 김연아의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우승을 TV로 지켜본 뒤 “나도 저렇게 되겠다”며 피겨를 시작한 이른바 ‘김연아 키즈’입니다.

국내 피겨계에 돌풍을 일으키며 챔피언에 오른 유영은 자신의 우상인 김연아까지 직접 만나고 함께 기념 촬영을 해 두 배의 감격을 누렸지만, 그 환희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시상식이 끝나고 유영이 시상대에서 내려오는 순간이 바로 국가대표에서 제외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황당한 사태는 이미 6개월 전부터 예고됐습니다. 

유영은 지난해 5월에 한국 스포츠 모든 종목을 통틀어 최연소 국가대표가 됐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개월 뒤인 지난해 7월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 국가대표를 선발할 때 13세가 되지 않는 선수는 뽑지 않도록 규정을 바꿔버린 것입니다. 즉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만 13세가 되지 않는 선수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게 됐습니다. (2015년 7월28일 취재파일: 초등학생 피겨 신동 울린 대한빙상연맹 참조) 새 규정의 적용 시점은 2016년 1월 1일입니다.

대한빙상연맹은 “어린 선수들의 지나친 경쟁과 부상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13세가 되지 않으면 각종 주니어 대회에 출전할 수 없으니 차라리 대회에 나갈 수 있는 13세 이상의 선수를 선발하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빙상연맹은 국가대표 선발 시점마저 올해 1월부터 ‘종합선수권 대회 종료 후 즉시’로 변경했습니다. 바뀐 규정에 따라 어제 대회가 끝난 뒤 곧바로 8명의 여자 국가대표 선수가 새로 선발됐습니다. 하지만 종합선수권 1위를 차지한 유영은 나이 제한에 걸려 제외됐습니다. 그러니까 우승을 차지한 날이 공교롭게도 가슴에 붙이고 있던 태극마크를 떼야 하는 날이 된 것입니다.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규정 때문에 대표팀을 떠나게 된 11살 피겨신동의 앞날은 막막하기만 합니다.  
10일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6'에서 유영(문원초)이 여자싱글 시니어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펼치고 있다.
유영 선수의 어머니는 SBS와의 통화에서 “앞으로 어디에서 훈련해야 할지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며 답답한 심정을 나타냈습니다. 유영 선수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훈련 장소입니다. 국가대표 전용 시설인 태릉빙상장에서는 마음껏 스케이트를 지칠 수 있지만 다른 빙상장에서는 일반 이용객이 너무 많아 점프를 제대로 할 수 없고 다른 사람과 충돌할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스피드도 낼 수 없습니다. 태릉선수촌 의과학팀의 전문적인 치료도 받기 어렵습니다.  

이번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1∼5위에 오른 선수 가운데 초등학생이 무려 3명이나 됩니다. 지금 세계 여자 피겨를 휩쓸고 있는 러시아 선수들도 10-11세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육성된 재목들입니다. 13세 미만의 선수가 시니어 국제대회는 물론 주니어 국제대회까지 출전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국제 규정입니다.

하지만 어린 유망주를 한국 국가대표로 발탁해 집중 육성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방안입니다. 빙상연맹은 지난해 7월 “만약 경기력이 우수한 주니어 미만의 선수가 국가대표 선발 점수를 획득할 경우 별도의 육성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공문을 통해 밝혔지만  이 약속이 빠른 시일내에 지켜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제2의 김연아’로 평가되는 유영 같은 '피겨 신동'을 정말 김연아처럼 키울 수 있기 위해서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구체적인 대책 수립과 함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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