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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동차 점검 중 기둥에 쾅? 아파트 흔들? 은폐 의혹?

[취재파일] 전동차 점검 중 기둥에 쾅? 아파트 흔들? 은폐 의혹?
12월 28일 저녁 6시, 서울시청 출입기자들에게 문자가 날라왔다. 

"서울메트로 크리스마스에 대형사고 발생... 아파트 지탱하는 기둥이 파손되었으나 단순사고로 은폐·축소 시도.."

우형찬 서울시 의원이 사고 사실을 폭로(?)하는 내용이었다. 자세한 내용을 담은 자신의 블로그 링크도 함께 보내왔다. (▶블로그 보러가기) "12월 25일 11시 서울메트로 신정차량기지에서 전동차가 건축 구조물을 들이받았다. 구조물은 차량기지 위에 위치한 아파트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기둥이 파손되어 아파트가 '중대한' 위험에 처했는데, 서울메트로는 '단순 사고'로 처리하였다. 이는 주민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로, 대형 사고를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시도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서울메트로 신정기지는 1993년 완공되었다. 지하철 2호선 차량의 주차장 겸 검수장이다. 신정기지 바로 위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고건 서울 시장 당시 서민층의 주거 확보를 위하여 마련한 영구 임대아파트이다. 신정기지 위에 인공대지를 만들어 1995년 그 위에 아파트를 세웠다. 현재 모두 3천 가구에 6,500명이 넘는 주민이 살고 있다.

대단지 아파트 아래에 있는 기둥이 부서지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는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서 공사장 주변 주택 균열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던가. 멀쩡하던 집이 쩍쩍 갈라져 나가는 바람에 공사장 일대 주민 132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서민들의 주거와 관련해 이와 같은 일이 연이어 벌어지는 건 안전 관리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일인지 서울메트로에 취재를 요청했고, 우 의원이 문제를 제기한 다음 날 신정 차량기지를 찾았다.
 사고가 발생한 건 크리스마스였던 12월 25일 오전 11시 3분 쯤이었다. 야간 운행을 마친 2호선 전동차를 검수원이 검수고 안으로 이동하는 과정이었다. 사흘에 한 번씩 소모품 등의 상태를 점검하는 '일상검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검수원은 열차운행 정보기록장치를 확인한 뒤 역전기를 전진 위치에서 중립 위치를 옮기려 하였다. 위로 올라가 있는 레버를 중간 위치로 당겨야 했다. 그런데, 바로 왼쪽에 있는 동력운전 제어기를 당기고 말았다. 자동차로 따지면 액셀러레이터를 움직인 것이다. 이 바람에 차량이 움직여 기둥을 들이받은 것이다.
추돌 과정에서 열차는 차막이벽(자동차를 주차할 때 벽이나 뒤에 주차한 차와 부딪히지 않게 해주는 받침대 역할을 하는 벽)을 들이받은 뒤 12m를 나가다 멈추었다. 이 때 내력 기둥(아파트가 서 있는 인공대지를 받쳐주는 지지대) 사이에 있는 기둥(전차의 전선을 붙잡아 주는 역할)을 박았다. 이 사고로 차막이벽과 기둥이 부서지고, 천장에 있던 온수 배관이 부서졌다. 물론 열차의 유리도 다 깨졌다. 다행히 검수원은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 상으로도 그렇고, 긴급 복구를 벌인 현재 상황으로도 '큰 사고'처럼 보인다. 기둥은 아예 들어냈고, 배관은 끊겨 있기 때문이엇다. 하지만 서울메트로 측은 '안전 상 문제는 없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우선 부서진 기둥은 아파트를 지지하는 '내력 기둥'이 아니라 전동차의 전선을 잡아 주는 '보조 기둥'이기 때문이다.

기지 내에 내력 기둥은 4.5미터 간격으로 3,000여 개 설치되어 아파트 아래 대지를 떠받들고 있다. 서울메트로 측은 '보조 기둥'은 사실상 건물을 지지하는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부서지더라도 안전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사고 당일 긴급 점검도 벌였다고 한다. 토목구조기술사를 불러 긴급 점검을 실시한 결과, '안전에 1차적인 영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있었다.
서울메트로는 이번 사고에 대해 흔히 발생하는 사고는 아니지만,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전차가 선로를 이탈해 건물을 받쳐주는 내력 기둥을 박았다면 '심각한 사안'이었겠지만, 전차선 지지 기둥을 박은 것이라 '내부 사고'로 처리한 것이라 한다.

철도안전법시행령에 따르면, 열차가 충돌이나 탈선·화재 발생으로 운행 중단 혹은 3명 이상의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국토교통부장관에게 즉시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건은 외부 보고건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내부 보고는 제대로 이루어졌고, 사고 발생 2시간 뒤인 1시 반쯤 운영본부장이 주관한 현장대책 회의도 열었다고 한다. 아파트에 영향을 미치는 사고가 아니었기에, 아파트 주민이나 구청 측에는 따로 통보하지 않은 것이라 해명했다. 

검수원은 왜 이런 실수를 한 것일까.

서울메트로 측은 "운전하면서 기어를 중립에 놓을 것을 주행(D)나 후진(R)으로 놓는 실수와 마찬가지"라고 비유하였다. 그야말로 '단순 실수'라는 것이다. 자동차 기어야 하나의 스틱으로 움직이니까 그럴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잘 모르는 기자가 보기에도 동력운전 제어기와 역전기는 크기 차이도 있고, 손잡이 모양도 전혀 달라 착각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혹시 검수원이 '초보'는 아니었을까. 당시 검수원은 95년 입사자로, 해당 업무는 2007년부터 해 온 10년 가까운 경력을 가진 직원이었다. 초보들의 흔한 실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로 누적 상태에서 근무를 하다 발생한 것인가.

신정기지 검수원들은 4조로 나뉘어 2교대를 한다. 일근(오전 9시~오후 6시)과 야근(저녁 6시~다음날 오전 9시)을 번갈아 하는데, 사고를 낸 검수원은 일근 중이었다. 과로로 인한 실수로도 볼 수 없다. 서울메트로측은 일단 29일 오후 담당자와 책임부서장을 불러 조사를 시작한다고 했다. 조사를 거친 뒤 징계위를 거쳐 해당 직원의 징계 여부도 결정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무엇보다 서울메트로 측의 해명대로 정말 안전에 이상은 없는 것일까. 기지 위에 위치한 아파트 주민들을 만나보았다. 10여 명의 주민들은 '추돌 사고'가 생긴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다. '꽝' 하는 소리라던지, 진동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이웃들이 사고에 대해 말하는 것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기지 위에 아파트가 있어서 불안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이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데"라고 장담한다. 한 중년 아주머니는 "가끔 불안하기는 하지만, 이것저것 다 따지면 어떻게 사느냐"고 반문한다. "그냥 서울메트로와 시에서 알아서 안전에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고 한 마디 덧붙였다.

서울메트로는 이번 주 내에 정말 안전 점검을 실시하고, 복구 작업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안전 문제에 대한 규명을 철저히 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주민들이 불안해 한다면 언제든 현장을 공개하고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그만큼 자신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취재진에게 상황 설명을 하겠다며 20명 넘게 우르르 몰려나온 서울메트로 측 인사의 한 마디는 실망스러웠다. "전문가들이 보면, 웃을 수도 있는 작은 사고이지요." 천만 시민이 타고 다니는 지하철인데 '웃을 수 있는 사고'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서울메트로는 지난 12월 22일, 전동차의 작은 부품까지 철저히 관리해 '안정성'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새로운 안전 대책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직원 한 명 한 명 서울 시민의 발이 되고 있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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