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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처음’이 그 ‘처음’이 아니다?…탄저균 발표의 불편함

[취재파일] ‘처음’이 그 ‘처음’이 아니다?…탄저균 발표의 불편함
지난 4월 미군이 '살아있는 탄저균'을 오산 기지로 잘못 배송했다는 의혹에 대해 한미 합동 조사단이 지난 17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은 애초 미군 발표 이후 사용된 ‘살아있는 탄저균’이라는 표현을 수위가 한층 낮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탄저균’이라는 표현으로 수정한 상태다.

기자들에게 배포되는 보도자료, 설명자료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홍보하고 싶은 내용을 눈에 잘 띄게 앞세우는 방식이 하나고, 비난받을 소지가 있거나 논란이 예상되는 내용은 슬쩍 간단히 넣거나, 혹은 누락하는 방식이 하나다.

우선, 2장짜리 보도자료를 보면 이렇다. 제목은 ‘탄저균 배달사고 관련 한미 합동 실무단 운영결과 발표’다. 다섯 개의 문장으로 구성돼 있다. 실무단 발표문이 첨부돼 있긴 하지만, 2장짜리 보도자료 자체에는 오산기지 오배송 이전에 탄저균 반입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적혀 있지 않다. 자료 내 굵게 표시된 문장을 그대로 옮긴다.

“韓·美 합동실무단은 점증하는 북한의 생물무기 위협과 대·내외적인 생물테러 위협에 대비하여 생물감시 및 탐지 등 방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韓·美간 공동노력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한국민과 주한미군의 건강과 안전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엄중히 인식하였다.”

보도자료에 첨부표시 된 '한미 공동 발표문'에는 논란이 된 오산기지 사건 이전 탄저균 반입 사실이 포함됐다. 하지만, 전체 10페이지 가운데 7페이지에서 한 문장으로 언급됐다. 다음의 내용이다.
 - 한·미 합동실무단은 현장 기술평가를 통해 주한미군이 탐지·식별 훈련을 위해 올해 탄저균 검사용 샘플과 함께 페스트균 검사용 샘플을 반입한 사실과, 과거에도 2009년부터 2014년까지 15차례 탄저균 검사용 사균 샘플을 반입하여 장비 시험 및 사용자 훈련을 실시한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The ROK-U.S. JWG confirmed that USFK imported inactivated Bacillus anthracis test samples as well as inactivated Yersinia pestis samples for detection and identification training, and also confirmed the anthrax test samples entered 15 times from 2009 to 2014 for the purpose of equipment testing and proficiency training.)

페스트균 검사용 샘플이 들어왔다는 점과 과거 15차례 탄저균 사균 샘플을 반입했다는 것은 이번 조사로 처음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자세히 다뤄지지 않았다. 기자들의 질문과 여론의 관심이 예상되는 대목이었음에도 발표문 중후반쯤, 한 문장으로 처리된 게 끝이다.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고 한미 당국이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한문장만으로 알 수 없는 것은 또 있다. 지난 5월 주한미군이 보도자료를 통해 탄저균 반입-시험한 것이 ‘처음’이라고 밝힌 이유 역시 깜깜이다.

기자들에게 배포된 사전 자료도 있다. 여기에는 그나마 ‘추가 확인 사항’이라는 제목이 달려있다. 하지만, 사전자료의 골자는, 패스트균 배달 사고를 조사해보니 미군이 자체조사에서 밝혔듯 고의가 아니었고, 절차를 준수해 문제없이 처리됐다는 것이다. 우리측에 통보하지 않은 것은 관련 절차가 없었기 때문이니 앞으로 고칠 것이고 이는 굉장히 이례적인 조치라는 것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알리고 싶은 정보와 궁금해하는 정보, 굉장히 비대칭적이다. 몇가지 표현들을 옮긴다.

- 주한미군은 활성화된 탄저균 및 페스트균을 반입할 의도가 없었음
- SOFA상에는 사균화된 검사용 샘플 반입 시 통보하는 절차가 없음
- 반입된 샘플은 관련 규정에 따라 포장, 표기, 배송, 운송 및 취급
- 샘플은 생물안전수칙에 의해 안전하게 사용된 것을 확인
- 샘플 제독 및 폐기 과정은 안전관리기준을 준수
폐기물은 공인된 전문 의료 폐기업체에 의뢰하여 소각 처리
- 활성화된 샘플을 취급할 수 없는 수준으로 평가
- 노출 우려자는 총 22명으로 한국인은 없었음
- 어떠한 감염 증상도 보이지 않았음
- 의학적인 기준을 준수
- 극소량의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탄저균 포자가 한국으로 배송되어 발생
- 주한미군은 샘플의 반입, 취급 및 처리과정에서 관련 규정과 절차를 준수
- 안전하게 제독 및 폐기한 것으로 평가
- 안전 절차를 강화한 전례없는 조치


VS

- 주한미군은 '09년부터 14년'까지 총 15차례 사균화된 탄저균 검사용 샘플을 반입
 분석·식별장비 성능 시험과 교육훈련에 사용하고 폐기 완료
안전과 기준에 대한 언급은 수차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5월에는 탄저균 반입이 ‘처음’이었다고 주한미군이 밝혔는지 확인할 수 없다.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 실무단 관계자는 오산기지에서 시행한 ‘주피터 프로그램(JUPITR, 미 차세대 생물감시 시스템)에 의한 반입이 처음이었다는 취지라고 '대리'해서 해명했다.

그때 얘기한 ’처음‘이 우리들이 생각한 그 ’처음‘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오독의 여지가 충분히 있는 표현을 그대로 둔 이유는 여전히 미스테리다. 결과적으로 미측이 제공하고 싶은 정보는 충분히 제공했지만, 우리 국민이 제공받아야할, 혹은 궁금해 할 정보에 대해선 충분히 제공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는 생균이건, 사균이건 샘플 반입을 할때는 우리 군 당국에 알리겠다고 한다. 한미 양국이 고치기로 서명한 소파 운영절차는 아래 내용과 같다.

- 주한미군이 검사용 샘플 반입 시 우리 정부에 발송·수신기관, 샘플 종류·용도·양, 운송방법 등을 통보
- 일방의 요청이 있을 시 빠른 시일 내에 공동평가 실시
- 관세청이 물품 검사를 희망하는 경우 주한미군 관세조사국과 협조하여 합동 검사 실시


이례적인 조치라고는 하지만, ‘통보’일 뿐 ‘허가’나 ‘승인’이 아니어서 일각에서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 군 관계자는 “소파 부속문서의 성격이다. 일종의 신사 협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양국이 신뢰를 바탕으로 이를 지키겠다는 것이다”라면서 “이를 어긴 사실이 알려진다면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어길 경우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우리 당국이 즉각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딱히 규정된 바 없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신사협정이 이행될 것이라고 보려면, 혹은 믿으려면 양국간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신뢰는 투명성에 바탕해야 한다. 그러나 한쪽이 제공하고 싶은 정보만 충분히 알리고, 다른 한쪽에서 제공받아야 하는 정보는 숨기는 듯한 지금의 모습은, 그 투명성을 증명하기에 부족해보인다. 합동 실무단의 ‘탄저균 배송사고’ 발표 과정에는 그런 불편함이 숨어 있다.   

▶ 탄저균 15번 더 반입…페스트균도 들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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